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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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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256회 작성일13-06-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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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원을 받았는가?(7)

작성자:C. H. 매킨토쉬

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지금 "회심"이라는 제목의 실제적인 면을 깊이 상고함에 이르렀다.

데살로니가전서 1:9에는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는 말씀도 있다.
이 말씀은 진실로 회심한 모든 진실한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깊은 흥미를 준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 우리의 전 생애는 회심의 순간부터 생이 끝날 때까지 진실된 영과 진실된 열심과 진실된 지적 봉사로 특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우리의 특권이며, 때문에 신성한 의무가 있다고 말로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의 문제도 아니며, 어떤 생활 수준의 문제도 아니며, 또는 어떻게 우리가 부름을 받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회심되었을 때 꼭 한가지 실천할 일을 부여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처음 부름을 받았을 때의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직접 가르침인 말씀에 위배되는 일을 찾는다면 그 즉시 우리는 그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말이다. 충실한 종의 그 첫 단계는 어떠한 위선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바로 이 기준에서 시험을 거쳐야 한다.
기독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아야만 한다. 즉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포기되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생애에서 우리 자신의 부름을 하나님의 명예와 연결할 수 없다면 비록 우리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우리의 목적으로 한다 할지라도, 또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자로 발견되기를 바란다 할지라도 단연코 그 부름은 포기되어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열어 주시기를 바래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자. 하나님은 믿음의 심령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우리의 할 일은 심령에 목표를 갖고 하나님께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앞에 평탄한 길을 열어 주신다. 처음에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 길은 좁고 험난하고 외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위해 기다리는 것뿐이다. 단 한시라도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 반대되는 어떤 것과도 연관되어서는 안된다. 온순한 양심과 성실한 눈과 헌신적 마음은 많은 문제를 안정시킬 것이요,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고, 많은 장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본성이 움직이도록 허락만 된다면 많은 당혹함 속에서도 잘 인도해 주실 것이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마 6:22)

우리 심령의 목표가 진실하게 그리스도께 있고, 진실하게 그분의 이름과 주장에 있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긴다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귀한 계시의 보고를 활짝 열어 생명의 빛을 흠뻑 부으면서 납득시키실 것이다. 그러함으로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태양 광선처럼 명쾌한 길을 보게 되고, 확고한 걸음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순간이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회심되었다는 귀한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생명의 열매는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우리가 회심하지 못했을 시절에는 우상을 섬겼고, 여러 가지 정욕과 오락에만 심취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속죄된 온전한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부름 받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이켰고,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안식과 만족을 찾은 것이다. 이 세상의 시간 속에서나 또는 영원한 곳에서도 피조물을 바랄 필요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얻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새 생명의 소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모든 보물을 저장해 두셨다. 믿음으로 우리의 심령에 그리스도가 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며, 사랑 안에 뿌리박고, 사랑 안에 기초를 두어 성도들과 함께 그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알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지혜를 전해 주시며, 그분으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우리 안에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충만하고, 만족하고, 강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김에 온 영과 혼과 육을 바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견고하며, 요동치 않고 항상 주님의 일에 만족하게 쓰임 받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다른 할 일이 없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로 실천될 수 없는 어떤 일이라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말이 놀랍게도 모든 문제를 단순하게 한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즐거운 권리이다.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부름과 정반대 되는 세속적 부름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때때로 듣곤 한다. 그것이 참 공덕인지 아닌지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된다. 바울은 천막을 만들면서도 한편 교회를 세웠다. 그는 양편(천막 만드는 일과 교회를 세우는 일) 모두로 주 예수님을 섬겼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은 거룩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말이 마음에 진실로 간직된다면, 이 말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일상생활의 가장 단순한 일에도 주님 자신과 연관을 맺게 한다. 그럴 때 주님은 그런 방법으로 우리의 일에 가담하시어 거룩한 위엄을 부여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심을 가져 주신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에서 방해 거리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그 일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한 실제상의 지혜와 은혜를 찾아 주님을 시중드는 일로 바꾸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주님의 거룩한 이름은 우리의 가장 작은 실생활에서도 영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한 문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해진 행동반경의 범주를 넘어 어떤 신비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부를 예로 들어보자. 어떻게 그녀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그녀는 심방도 못하고 대화도 나눌 수 없다. 그녀의 행동 범위는 집주인의 그늘에 있어야 하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집주인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만일 그녀가 이 집, 저 집을 심방만 한다면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며, 실제로 하나님의 정해진 일을 거부하는 격이 된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들어보자.

"종들로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9-10)

우리는 여기서 종이 복종과 겸손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교훈을 자신의 믿음 정도에 따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복음 전도인이 거룩하고 고귀한 자신의 사명에 따라 세계를 두루 다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을 보자.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말고, 그리스도의 종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 6:5-8)

이 얼마나 사랑스런 모습인가! 이 얼마나 멋진 종의 모습인가! "두려워하고 떨며"라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오늘날 어디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어디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거룩한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성한 눈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디에 자원하는 섬김의 마음이 있겠는가?

슬프게도 오늘날 고집과 교만한 마음과 자고와 자기 기쁨과 자기 유익만을 위하는 자만을 보게 된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주님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며,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일인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름 받은 자 같이 우리를 다듬어 갈 모든 감각에 절실히 눈뜰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의 말씀은 모든 진실한 기독도들에게는 가장 흔한 가정 일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려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은혜의 신호등이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대부분의 기독도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 마음에 있는 실제적인 진리의 말씀을 드러내기 위해서 가정부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영광을 낮추시어 우리의 매일의 가정 생활에서의 맡겨진 조그마한 일과도 연결하신다는 사실을 은혜로 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것은 마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우리의 모든 작은 일에도 하나님은 위엄과 유익과 원기를 주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7)

여기에 모든 문제의 귀중한 비밀이 담겨 있다. 급료를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주님을 섬기기 위한 일이다. 이는 하늘의 보상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주님을 바라보는 자세이다.

오, 이 모든 것이 보다 충실하게 깨달아지고, 우리 가운데서 보다 드러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만 됐더라면 전 기독도 생활에 영적 고상함이 있었으리라! 그렇게만 됐더라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좋은 해답을 주었으리라! 모든 사람에게는 비웃음과 흠잡기가 얼마나 맥없는 비난인가! 기독교인들의 영적 고상함이 수만 명의 지식인들의 논리보다 훨씬 낫다. 열심 있고, 헌신적이며, 거룩하고, 즐거운 자기 희생의 기독교인들의 생활보다 더 강렬한 표현은 없으리라. 그리고 이런 생활은 4면이 벽으로 둘러 쌓여 있는 좁은 부엌에서 생활하는 진실한 기독도 가정부에 의해서도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진실한 기독자의 실생활은 회의주의자나 불신자들에게 가장 올바른 가능성 있는 해답을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막고 기독교인들을 법 아래로 집어넣으려는 자칭 법통들에게는 가장 만족스런 해답을 준다. 하나님의 사역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도전적일 때, 우리는 단순하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말로 설교해야 하겠는가?" 회심하지 못한 사람은 "악한 일"과 "죽은 행실" 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골 1:21, 히 6:1)

"육신에 있는 자들(회심하지 못한 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그들이 어떤 그럴듯한 방법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설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방법은 오직 사람들의 눈에 티끌만 더할 뿐이요, 사람들의 마음 눈을 감기게 할 뿐이요, 사람들의 심령을 속일 뿐이요, 손에 거짓 가르침을 들고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뿐이다.

하나님께 향한 참 회심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이다. 무엇이 회심자로 하여금 그렇게 될 수 있게 할까? 그는 생명을 얻기 위해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새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은 하나님의 값없는 영원한 선물인 것이다.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는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는 부름을 받았단 말인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언제? 어디서?
그 해답은 어떤 방법으로도 가능하며, 항상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곳에서도 되는 일이다. 회심한 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만일 그가 다른 어떤 것을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진짜가 아닐 것이요, 은혜의 주님에 대해서는 불신자일 것이다. 주님은 섬기는 일을 위해 부르시기 이전에 먼저 그에게 새 생명을 주었고, 은혜를 주었고, 능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섬기는 일만이 허락되는 것이다.

그렇다 기독교인는 섬기기 위해서 부름을 받는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기독교인에게는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거룩하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도록 드릴 권리가 주어졌다. 이것이 합당한 예배다.(롬 12:1) 이런 모습이야말로 모든 의문점을 해소시킨다. 그런 모습이 모든 어려움을 제거한다. 그런 모습이 모든 대적을 잠잠케 한다. 그런 모습이 모든 것을 제자리에 안정시킨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어느 곳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신약 성경에 보여진 기독 신앙은 믿는 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열매인 것이다. 그것은 기독도의 매일의 생활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가 재생되는 것이다. 기독도가 만지는 모든 것,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 그가 말하는 모든 말, 그가 살아가는 전 생활이 주일 아침부터 다음 토요일 저녁까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는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의 영에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바램은 성도들의 생활이 보다 훌륭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주님의 사랑하는 성도들이 어디서든지 성령님의 감동 속에서 보다 열성적이고, 철저하고, 온 마음이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자세가 되어 주님에 대한 귀한 섬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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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H. 매킨토쉬 C.H.M의 약칭으로 알려진 C. H. 매킨토쉬는 금세기 최고의 강해서인 "모세오경"(생명의말씀사 간)의 저자이며 그의 대표적인 저술은 "Miscellaneous Writings"로 묶여 발행되었다. 또한 그는 성경교사로, 복음전도자로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으며 매거진 "Things New and Old"의 발행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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