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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할 자 없는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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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046회 작성일13-06-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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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1)

작성자:J. H. 브룩스
1. 구원할 자 없는 죄인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에서 구속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늘 보게 되는 몇 가지 용어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는 것인데 이는 그 용어의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무가치하고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친절을 말합니다.
의라는 말은 올바른 규칙을 지키는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화목이라는 말은 죄에 대한 형벌을 면하고, 하나님의 호의를 보장받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을 말합니다.
칭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을 율법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하고 선언하는 것으로서 정죄 받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고 받아들여져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대우받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간단히 말하면, 증거를 믿는 것으로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 한 말에 대해 믿는다면 당신은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해 믿음을 가진 것이며, 그가 말한 것에도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가장 단순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후에 보게 될 것이지만 구원하는 믿음이 포함하고 있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증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을 우리의 구속자로서 의지하고 주님께서 죄인들과 맺은 은혜로운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알아보아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는데, 간단히 하기 위해 그것을 증명하지는 않겠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당신이 거룩하고,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당신에게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양심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도덕한 영혼은 창조자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신뢰할 만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당신이 구원에 대해 어느 정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불안합니까?

당신이 죽음, 심판, 영원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마음에 불안함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전능자를 생각하고 또 당신의 운명을 선고를 받기 위해 그분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 왜 불안하고 평안하지 않은 것일까요? 당신은 왜 그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딛 2:13) 기쁘게 기다리지 못하고 그 분의 오심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걸까요? 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의 염려는 죄책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단지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아무 문제없이 지내는 수많은 죄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밤에 기도하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면 일어나서 자기 일을 하며, 계속해서 방탕한 생활과 부도덕한 생활을 태연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악인에게 분노하시는"(시 7:11) 하나님 진노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 10:4).
그러므로 당신이 당신의 영혼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단지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내면에서 죄에 대해 깨닫게 하시므로 자신의 죄를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확신을 주시지 않는다면 당신은 전적으로 당신의 영혼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분의 능력이 당신으로 하여금 구원을 갈망하게 할 뿐 아니라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게 하도록 도우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당신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 죄책감이라는 것을 보여 드렸기 때문에 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이해할 수 없는 악, 저주, 혹은 그 본질을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보는 그러한 저주로 인한 악폐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며, 아주 단순한 말로 죄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하).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롬 7:7).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

앞에서 인용한 글에 의하면, 결국 사도 바울은 율법의 본질과 한도를 이해하기 전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만족과 평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자비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이르매' 즉, 그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자 자신이 죄 아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악함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죽었다는 것 즉, 사형선고를 받았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과 망하였다는 느꼈기 때문에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진정한 본성과 상태를 알기 원한다면 당신 주위의 죄악된 사람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율법의 모든 계명을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항상 지켜왔다면 당신은 죄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 율법을 준행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죄인입니다. 그것도 아주 큰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위대한 율법을 어기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거역하여 반역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죄인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범죄이며 두려운 정죄가 뒤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라고 선고함으로 타락한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우리의 본성이 부패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호랑이나 표범에 대해서 그 본성이 잔인하며 포악하다고 말하고, 양이나 비둘기에 대해서는 본성이 순하고 겁이 많다고 말하는 것처럼 성경은 사람에 대해서 본성이 죄악 되기에 진노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시편 기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해 말하면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6)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7:18 에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절들을 인용하는 목적은 단지 당신에게 본성이 부패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신이 그 진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러운 샘에서 더러운 물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제적인 죄들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다는 것에 주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러한 실제적인 죄들에 대해 죄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기 위해서,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죄는 불법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하는 목적은 당신이 어느 정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는 것처럼 자신을 보고, 당신에게 당신의 참된 상태를 보여줌으로 당신이 진실로 구세주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행동과 우리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규정입니다. 우리는 그 규정이 무엇을 요구하는 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6-40).
이제 당신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완전히 순종해야 하는 계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그들의 유익을 구하고, 마치 우리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것처럼 그들의 행복을 구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입니다. 율법은 옳은 것만 요구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영광스런 창조주시며 운행자이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을 가장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너무도 옳은 것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준행할 수 있다면 많은 시련과 슬픔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실로 행복한 세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고"(롬 7:12),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기" 때문에 율법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거룩하고, 정의롭고, 선하며, 완전한 삶의 규칙이 쉽게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가 정당하고 선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따라야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의 지고한 의로움에 대한 표현으로, 이성적이고 책임감 있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뜻입니다. 율법은 신성(神性)을 반영하고 있기에 이 신성이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온 마음과 뜻과 힘과 생각을 다해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율법의 요구는 중단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율법을...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유일하신 구세주를 거절해서 버림을 받게 된다 할지라도 유대인의 의식에 관한 율법과 같은 일시적인 의무들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의 통치에 근거한 율법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은 사람의 본분이요 의무입니다.
그러나 율법에 관해 성경에서 배워야할 또 한가지는 율법은 "신령하다"(롬 7:14)는 것입니다. 율법은 마음으로부터의 순종을 요구하는데 율법은 그 마음의 비밀스런 생각과 그 모든 욕구와 계획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의 계명에 외적으로 순종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고"(전 12:14),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십"(삼상 16:7)니다.
따라서 순전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율법은 행위에 대해 아주 적합한 것처럼 마음에 대해서도 적합합니다.
율법의 두 가지 계명을 나머지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두 계명은 많은 사람들이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는 여섯 번째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일 3:15)라고 말씀함으로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도 이 계명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당신의 이웃을 미워했다면 비록 당신이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당신은 살인자입니다.
그 다음은 일곱 번째 계명으로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는 말씀으로, 어떤 사람이 '기독교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경건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 계명을 어겼다고 말한다면 깜짝 놀라 어리둥절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 이 계명의 정확한 의미와 범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그러므로 당신이 적어도 이 점에서는 흠이 없다고 내세울지라도 만일 정욕이 당신의 마음에 있었다고 한다면, 비록 당신이 불결한 말 한마디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죄인입니다. 율법의 다른 모든 계명들이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에까지 확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인 순종으로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계 2:23)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잠언 21:2에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율법과 관련하여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형벌'입니다. 율법의 거룩한 계명들을 불순종하면 형벌이 따릅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0).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1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에는 형벌이 따르고, 이 형벌은 사망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의 형벌로서 "사망"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보여주는 많은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성경에 친숙하다면 사망이라는 말이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는 이 무서운 형벌을 죄의 형벌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 하시되 ...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롬 2:6-9).
"환난 받는 자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살후 1:7-10).
"저들은 영벌에 들어가리라"(마 25:46).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얼마나 중한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의로운 진노를 나타내시는 것일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이러한 형벌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계명들을 어김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벌이 없으면 율법이 존속되고 실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계명을 어겼을 때 형벌이 따르지 않는다면, 충고나 권면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하는 삶의 규범으로서의 율법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미 정해진 우리 신체에 대한 법칙을 어긴다면 분명히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불 속에 넣고도 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 마리 양이 뛰어 놀다가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면 밑에 있는 바위에 부딪쳐서 부러지고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어떤 아이가 무심코 놔둔 독약을 마신다면 반드시 괴로운 고통을 당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육체나 건강에 관련된 법칙을 무시하면 슬픈 결과가 온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런 슬픈 결과가 오는 것일까요? 우리의 인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피조물인 인간이 고통 당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주 무한히 자비하신 분이실 지라도 그분이 제정하신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그에 응당한 형벌을 면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법칙에 있어서도 그것에 불순종하면 어떤 경우에는 특별한 형태의 정신이상을 나타내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보거나, 그들의 비명이나 괴기한 웃음소리를 듣는다면,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신"(애 3:33) 하나님께서 그들의 비참함을 당장 그치게 해주셔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에 관한 법칙들을 유지하시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므로 그분의 법에 순종할 적절한 조치가 있을 때까지 그 무서운 형벌을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말해 온 도덕법 역시 형벌이 있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와 모든 인간들의 관심,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의 전 우주의 질서를 위해서는 육체적 정신적 기질에 순응하기 보다 이 위대한 법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이유를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을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쓸모 없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 곧, 현생의 죽음, 영적인 죽음, 그리고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룩하고 변경할 수 없는 율법 즉,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 율법을 범하는 것에 대한 형벌입니다.

당신은 율법의 계명들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저는 이 질문에 당신이 양심적으로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언을 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진실로 확실한 하나님 말씀의 선언을 들어보십시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이러한 것들은 성경이 일반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증거가 진실하다면 우리의 본성이 부패되었으며, 온 인류가 타락했고, 우리 각 개인은 죄를 지었고, 각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계명들을 어김으로 그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친구여! 당신의 진정한 모습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들을 어겼다면 당신은 율법의 형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결론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발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그 무시무시하고 끝이 없는 형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점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롬 10:5)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도가 기록한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롬 3:2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이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계명이 율법에 속해 있기에 그 모든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하나의 조항이라도 어기면 우리는 유죄가 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하는 동시에 또한 우리를 무죄라고 선언하고 의롭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불합리하고 자기 모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에 완전히 순종할 때 영생을 약속하시지만, 하나라도 불순종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자! 이제까지 당신이 불순종했기에 유죄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형벌이 가해지지 않으면 율법이 쓸모가 없게 되고 하나님의 통치는 무너지게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대한 확신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자신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 혹은 당신 자신의 어떤 선한 행위로 이 의로운 형벌을 모면해 보려는 시도가 어리석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고(합 1:13)",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십니다"(민 23:19). 문제는 당신이 "벌써 심판을 받았다"(요 3:18)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잠시 동안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당신의 미래의 순종이 과거의 무수한 범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순종은 당신이 항상 행해야 하는 당신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당신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죄를 극복하려고 매우 신실하게 분투해온 사람들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롬 7: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련한 죄인인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신 자신을 의롭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죄 아래 팔렸으므로"(롬 7:14)" 전적으로 무력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악 되고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당신 자신에게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제 잠시 우리가 이야기해온 것들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첫 번째, 당신이 하나님, 죽음, 심판, 그리고 영원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어느 정도 불안과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두 번째, 이런 불안한 마음은 죄책감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것은 성령님의 은혜로운 사역의 결과라는 점을 보았습니다.
세 번째, 죄는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지 못하거나 어기는 행위로 죄인의 유일하신 구주를 거절할 때 특별히 더 가중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네 번째,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율법은 변경할 수 없고, 신령한 것이기에 이를 어겼을 때는 무서운 형벌이 따른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섯 번째, 당신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 율법의 계명을 불순종했으므로 그 율법의 형벌을 받아야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로 인한 이 무서운 결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지혜로 어떤 계획을 고안해 낼 수 있을까요?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룰지라"(겔 22:14).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약 1:17) 그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아주 중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위로부터 오는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곧 지옥에 들어갈 것입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막 9:48) 곳입니다.
이렇게 말한 것들을 듣고 당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위험한 상태에 있는지 조금씩 조금씩 확신하게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여! 병든 사람이 의사가 처방해 주는 치료를 받으려면 자신이 병든 것을 알고 느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이 당신도 율법 앞에서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히 10:31)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느낌을 동일하게 느껴야 한다거나 당신이 극도로 그런 느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흉악한 죄인이며 자신을 구원하기에는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고, 구원받기 위해 당신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 혹은 종교적인 수행에 의지하면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만일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고요하고 단정한 마음으로 단번에 의지하실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주를 두려워"(고후 5:11) 하도록 이끌릴 것이며 만일 필요하다면 절망의 나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복음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가 말한 것처럼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며 유일한 길로 당신을 이끌어 가려고 애써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책에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리스도가 계시될 때 당신이 주님께서 복음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주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신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냉랭하고 무감동하게 보일지라도 그 내용은 사랑으로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시 103:13), "당신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당신을 불쌍히 여기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을 감동시켜 은혜로 당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빛 가운데 성도의 기업에 참여하게 할 수 있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경건한 저자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 해왔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율법의 본질과 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타락을 깨우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되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들은 결국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1-24)"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죄인을 위해 구주께서 하신 일을 알아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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