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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하는 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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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95회 작성일13-06-2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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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용서받지 못하는 죄란 무엇이길래 그렇게 많은 의견들이 피력되고 있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동 가운데 빠져 걱정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사실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범했거나 또는 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를 받은 사람들이 다름 아닌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종파 중에서도 가장 철저한 "바리새인들"이었으며, 성경 문헌에 전문가였던 "서기관들"이었습니다(막 3:22)!
 
이 놀랄만한 사실은 어떠한 것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해당되지 않는지를 즉시 가르쳐 줍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죄란 주색잡기나 살인 등 어떤 한가지 특정 죄악, 불순(不純), 또는 범죄도 아니며, 오랜 "허랑방탕"과 폭력의 생활도 아닙니다.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 혹은 모든 사람들은 십계명에 관하여 말할 때 부자 청년 관원이 우리 주 예수님께 했던 말과 똑같이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막 10:20).
 
도덕에 관한한 그들 각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백합화처럼 흠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거나 거의 짓고 있다고 경고하신 대상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사항은 그 용서받지 목하는 죄가 분명히 어떤 형태의 성령에 대한 범죄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아마 주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삼위일체 중의 한 분으로서 육신을 입고 오신 제2위(位)가 되신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성령도 삼위일체 중의 한 위(位)가 되신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영향력으로서 인간들에게 역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신(唯一神) 사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은 신약성경이 점차로 전개되어 감에 따라 우리에게 분명히 계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 자신은 성령의 개체성(個體性)을 알고 계셨으며, 현재의 우리가 충분한 계시에 비추어 그분의 말씀을 생각해 볼 때에 그분이 성령의 개체성을 분명히 암시하셨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성령의 개체성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 주님의 엄숙한 말씀이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강화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한 위(位)되심을 모르고서도 성령에 대하여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지을 수도 있음을 지적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다름아닌 성령을 "훼방하는"(모독하는) 죄라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의 말씀의 초점이었습니다.
 
31절을 다시 주목해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그렇다면 훼방(모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중상하거나 모욕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옛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모욕했습니까? 그 종교적 위선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 12:24).
 
따라서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 훼방죄란 은혜롭고 거룩한 성령의 활동을 마귀에게서 난 것으로 모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役事)를 사단의 역사(役事)라고 말하는 것이 성령 훼방죄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문맥을 감안하여 볼 때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그 성령 훼방죄가 왜 무서운 성격을 띠고 있었는지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성령 훼방죄를 용서받을 수 없도록 만드는 요소는 바로 이성적으로 알면서도 고의적이고 결정적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의 사악한 성령 훼방죄가 단순히 무지 탓이었다면 그것은 즉시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사도 바울이 성령 훼방죄를 지은 것은 무지 탓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와 그 제자들에 대한 그의 악감은 대단히 심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용서를 받았던 것은 그가 알지 못하고 행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하지만 우리 주님에게 그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관하여 경고받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무지탓으로 성령을 훼방한 것이 아니었으며, 문맥은 이것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행하시던 그 자애로운 기적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즉시 감지되었으며, 그러기에 그들은 자동적으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외쳤던 것입니다(마 12:23). 그들은 주님에 의해 행해지는 기적들이,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대로 여호와의 성령이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해 행하시리라고 하신 것과 같은 것임을 금새 알아보았습니다.
 
그것은 보통의 지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감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논리적으로도 명백하게 실증되는 문제였습니다.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마 12:26).
 
이 말씀은 연역적인 논증이었습니다.
 
"또 내가 바살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혹은 제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마 12:27).
 
이 말씀은 대인논증(논자(論者)의 주의, 성격, 지위, 직업 등을 이용하여 그 이론을 논난하며 또한 변호하는 법-역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주님의 결론을 논리적으로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 :28).
 
그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役事)를 마귀 탓으로 돌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훼방(모독)이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살면서 가르치셨고, 기적을 행하셨고,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고, 성령을 부어 주셨기에,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복되신 성부 및 성령과 영원토록 동등하시다는 사실이 실증되고 선포되었기에 그분의 사역을 마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옛날의 바리새인들이 성령을 훼방(모독)한 것과 똑같이 현재도 하나님을 명백히 훼방(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役事)이든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든지 간에 그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역사(役事)인줄 알면서도 그것을 마귀에게서 난 것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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