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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죄는 왜 용서받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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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52회 작성일13-06-2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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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 성령 훼방죄가 용서받지 못할까요?
 
그 첫번째 이유는 이 죄가, 나중에 회개하고 돌이킨 어떤 죄가 아니라 요지부동한 마음 자세에 기인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심지어 이 죄는 탕자가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며" 오랫동안 탐닉했던 그런 종류의 죄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죄는 이성적으로 완고하게 성령을 거역하는 죄라기보다 저질적인 욕망에 굴복하는 죄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극도의 패역한 일을 저지르고, 자기 생애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지만 나중에는 이것을 통회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9∼11절을 펴서 읽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
 
감사하옵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가장 타락한 탕아들에게도 베풀어질 수 있으며, 또 실제로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종류의 범죄는 마태복음 12장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르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범죄는 육신의 연약이나 영적인 무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참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려는 확고한 마음 자세요,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겠다고 결심하고, 알면서도 고의로 영혼의 문을 닫아버렸으므로 용서의 사랑의 광채가 통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용서를 미리 배제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왜 그런 종류의 죄가 용서를 미리 배제할까요? 탕자가 나중에 자신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회개했으며, 다른 수많은 사람들도 나중에 자기 죄를 실제로 회개했듯이 그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 자세를 나중에 회개할 수 없었을까요?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만일 그 바리새인들이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지점에까지 실제로 도달했다면 그들의 죄는 용서를 미리 배제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가 회개를 미리 배제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점에서 분명하면서도 신중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결코 용서받지 못할 만큼 죄를 지었다든지 혹은 안지었다든지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요점을 더욱 분명하고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들이 그런 죄를 지었다고 잠시 가정합시다. 이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 하나님의 참 빛을 고의적으로 완고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는 결국 회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말살되어 버릴 정도로 완고한 상태에 돌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은 회개를 배제하는 까닭에 용서도 배제하는 죄의 상태가 곧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누구든 이러한 지점에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완고한 거절의 과정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으며, 이것이 결국 그 사람의 주인이 되면 회개의 가능성을 말살시켜 버리고 맙니다. 인간은 회개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잘 아는 어떤 목회자로부터 저는 무서운 임종 장면을 지켜보았던 경험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죽어가던 그 사람은 죽음을 물리치려고 몸부림치면서 불쌍한 손을 무익하게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는 죽음과 그 너머의 두려움으로 인해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발광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지만 완전히 숨이 끊어지기 전에 발작적으로 다음과 같이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합니다.
 
"나는 죽기 전에 회개한다고 말했는데 회개가 되지 않아!
 
회개가 되지 않아! 나는 도무지 회개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사람은 회개의 가능성이 말살되어 버린 그 시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회개가 없으면 더이상 용서도 없는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용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행위의 죄도 아니며, 심지어는 오랫동안 계속되는 죄악도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묘사한대로, 하나님과 그 진리에 대하여 악한 마음으로 거부해 온 과정을 통해 형성된 마음의 상태입니다.
 
죄 많은 인간들을 위해 우리 주님이 대속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하고 더러운 죄라도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오랫동안 계속된 죄악들도 통회하기만 한다면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가능성이 말살된 상태의 영혼은 용서받을 수 없으며, 이것은 마치 의사가 암을 용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용서받지 못하는 죄란 하나님의 성령과 그 역사(役事)를 의식적으로 오랫동안 거부해 온 과정을 통해 형성된 요지부동의 마음 상태입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죄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마음속에 실제적으로 깨닫게 해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모든 경건한 덕목들을 생성시키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무서운 사실은 사람이 이와 같은 것들을 알면서도 미워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과정이 시작되고 이것은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종말을 맞이하여 결코 용서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때 그 사람 속을 비추었던 빛은 어두움으로 변할 수 있으며,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습니까!" 이 지점에 실제로 도달한 사람은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는 빛을 미워하는 일을 영원토록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은 귀신처럼 "믿고 떨기는" 하지만(약 2: 19) 회개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의 정점에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과거의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 전체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씀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이런 지점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은혜가 더 이상 베풀어진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밀랍을 녹이는 태양은 동시에 진흙을 응고시킵니다. "버려두라" - 이것은 실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용서가 있을 수 없는 것은 회개의 가능성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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