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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거듭나야 하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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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12회 작성일13-06-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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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거듭나야 하겠다"(3)

작성자:알프레드 P. 깁스
2. 사람이 왜 거듭나야 하는지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 5절).

(1) "하나님 나라"의 의미
우리가 이미 "육(flesh)"이라고 하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본 것처럼, 이제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조금의 의혹도 없이, 로마서 14장 17절의 말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혹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나라)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혹은 영적인 나라)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개의 나라 혹은 두 가지 영역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보이는 물질적인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입니다. 우리가 만일 첫 번째 영역을 "인간 나라"로, 두 번째 영역을 "하나님 나라"로 부른다면 그 의미가 분명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두 나라 사이의 특징적인 면을 우리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2) 두 나라, 혹은 두 영역의 실제성
인간 나라는 우리 모두가 육체적인 출생을 통해서 들어온 영역입니다. 출생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영을 소유하게 되었고, 인간에 의해 지배되고, 특징 지워지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우리는 살 수 있고, 행동하며, 이 물질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 존재 가치를 가지며, 다른 사람들과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출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감각기관,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을 점차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인 능력을 통해서, 이 인간 나라에서 사는데 필요한 지혜와 경험과 교훈을 획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간 나라를 보고, 들어가고, 그리고 그곳에서 사는 일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게 되는데, 그것은 곧 우리가 육체적으로 출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후에 인간의 혼과 영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생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 인간 나라에서 "살고, 행동하고, 자기 존재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문제가 모든 독자에게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을 돌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인간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육체적인 출생에 의해 되어졌듯이, 마찬가지로 이 영적인 하나님 나라도 영적인 출생을 통해서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출생이 바로 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인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 조리에 맞지 않거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제를 다루시면서 니고데모에게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실로 "기이한 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출생이 한 사람을 사람에게 속한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께 속하고 영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진 영역, 혹은 나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출생시에 육체의 생명과 인간의 본성을 받았는데, 이것은 이 땅의 영역에서 살기에 적합한 것이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새로운 출생, 곧 거듭남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생명을 받게 되고, 거듭남을 통해서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영적인 영역에서 살기에 적합하게 하는 것이며,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생명과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본성을 받은 것이 출생에 의해 되어졌듯이, 마찬가지로 이 영적인 생명과 그에 상응하는 신의 성품을 받는 것은 바로 "거듭남"으로 불리는 새로운 출생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3) 새로운 출생의 영역
여러분은 성경에서 "거듭(again)"이라는 구절에 대해 난외주에서 "위에서(above)"라는 단어로 바뀐 것과 이 "위에서"라는 단어가 더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단어는 거듭남이 횟수의 문제가 아니라, 영역과 특성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수천 번 거듭날지라도 거듭날 때마다 옛 죄악된 본성의 영역에서 다시 난다면 여전히 옛 본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것은 성경적인 거듭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듭남은 위에서 나는 것도 아니요, 천국의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음의 예화는 자주 인용되는 것인데,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자연계에는 네 가지 영역이 있으며,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 그리고 인간세계로 나누어지는데, 각 영역은 주어진 질서를 따라 상위와 하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예화에는 항상 풍유와 비유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 예화를 통해서는 많은 비약을 할 순 없다고 봅니다. 이 예화는 단지 각 영역마다 가지고 있는 원칙이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위 영역만이 그 아래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제어하며, 하위 영역은 상위 영역 속으로 흡수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계는 그 뿌리를 땅이나, 광물계에 내려 그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흡수하여 그 흡수한 것을 더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킵니다. 동물계를 살펴보면,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먹은 식물을 소화 흡수함으로써 동물의 영역으로 변형시켜 살과 뼈와 피를 만들어 줍니다. 이제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로 동물계로부터 물질을 섭취하고, 동일한 소화 흡수과정을 통해 인간 영역으로 변형시킵니다. 따라서 각 경우마다 변형의 영역은 더 높은 상위 영역인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 다섯 번째 영역을 더해서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 나라라고 부른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동일한 원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거듭남이 필요한데, 바로 이 거듭남의 영역이 '위에서(혹은 위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출생은 아래에서, 즉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출생은 하나님께로서, 또한 '위로부터' 이루어져야만 신자가 천국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거듭남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서, 그리고 위에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님은 위에서 오셨다가, 다시 위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로 돌아가셨으며, 언젠가 다시 오셔서 위로부터 거듭난 모든 사람들을 위에 계신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골 3:2)아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독교의 초보적이고 근본적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에 대한 이유는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하나님의 성령님의 사역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 비춤으로써 복음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독자께서 이러한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의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그 심령에 비취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는 이 거듭남이 진정 무엇이며, 또한 그것을 실제로 경험할 때까지 쉼이나 평안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4) 거듭남의 필요와 거듭남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간단한 도형
이 두 가지 영역의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상상으로 간단한 도형을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개의 원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로 연접해서 그립니다. 왼쪽 원에 "인간 영역", 혹은 "육신"이라고 써넣습니다. 그리고 오른 원에는 "하나님 나라", 혹은 "영"이라고 써넣습니다. 여기에 전적으로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일정한 간격에 의해 분리된 두 개의 영역(혹은 원)이 있습니다. 각 영역, 혹은 나라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육신", 혹은 "인간 나라"의 영역에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영", 혹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에 살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먼저, "여기 육신의 영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는가?"하고 질문해 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육체적인 출생에 의해서 그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영역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사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하면서 산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입고, 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싸우며, 세상의 쾌락을 즐기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기계를 발명하기도 하고,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거나 읽고, 종교적이 되거나, 혹은 무신론자가 되기도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기도 하고, 혹은 비도덕적인 삶을 살기도 하며, 학식있는 사람이 되거나, 혹은 배우지 못한 채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세 번째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이것은 인간의 모든 가식과 교만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 육신의 영역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자신에 속한 것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영역에서 빠져나와 "영"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출생이 필요하며, 출생은 아무 사람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에 전적으로 소망이 없으며, 완전히 무력한 존재입니다.

이제 또 다른 영역인 "영의 영역"도 위에서 했던 처음 두 가지 질문을 해봄으로써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영'의 영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는가?"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영적인 출생을 통해서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사는가?"입니다. 우리는 영의 영역에 사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입니다(벧후 1:4).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갈 3:26) 된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이 그들 속에 내주하시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며 인도하는 대상이 되는 사람들입니다(엡 1:13, 고전 3:16, 요 16:13). 그들은 주 예수님을 사랑하며, 이제는 주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의 구주로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요일 4:19, 요 1:1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자주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자신들의 믿음과 순종을 위한 최고의 권위가 된 사람들입니다(벧전 2:2, 행 20:32).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을 추구하며, 자신들이 참으로 거듭난 사람들임을 삶을 통해서 간증하는 사람들입니다(마 5:16, 벧전 3:15).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은 기쁘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추구하며, 자신들의 동료·친구들을 구주 예수님께로 인도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막 16:15). 동시에 그들은 온전한 삶을 살고 있노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불완전함에 대해 늘 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고후 4:5)을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두 개의 원 사이에 길고 굵은 선을 수직으로 그려보도록 합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간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해줍니다. 따라서 이 두 나라는 서로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모든 인간은 이 선에 의해서 두 영역의 어느 한편에 속한 것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육에 속한 것"과 "영에 속한 것"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영역은 나름대로 독특하고 특별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롬 8:5). 각 영역은 각자의 원칙과 미각과 욕구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이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 나라, 즉 육신의 영역으로 난 사람이 하나님 나라, 혹은 영의 영역으로 들어가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신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연필을 가지고, 왼쪽 원의 중심에서 시작해서 오른쪽 원의 중심에 이르도록 선을 긋되, 수평적으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영역에 사는 사람이 "영"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두 선이 십자가를 그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영역에서 사는 잃어버린바 되고, 범죄하고, 무기력한 죄인이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해 이루신 일을 믿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육신"의 영역에서 "영"의 영역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 8장 8, 9절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매우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그리스도인인)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이 즉각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믿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역을 신뢰하며, 그리스도를 자기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거하시며, 그에게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본성을 주시고, 그 사람을 "육신"의 영역, 혹은 "인간 나라"에서 "영"의 영역, 혹은 "하나님 나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엡 1:13을 보시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거듭남(born again)"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의도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이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은 그 사람을 "하나님 나라", 혹은 "성령 안에서"라고 하는 새로운 영역에서 사는 존재로 보십니다. 그 영역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위로부터 거듭나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를 보거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출생, 즉 거듭남은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알프레드 P. 깁스. 성경교사로서 많은 가르침을 전해 주었으며 대표적인 저술로는 <설교자와 그의 설교>, <그리스도인의 최상의 의무 예배>, <주님의 만찬>, 등 그외 다수가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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