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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63회 작성일13-06-2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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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 어떻게 영생을 얻었다(구원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까요?
 
요한일서 5장 13절의 말씀을 먼저 조금 바꾸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기쁜 느낌(감정)을 준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위 글과 아래 기록된 본문을 대조시켜서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유월절 밤, 곧 애굽에 재앙을 쏟으시던 그 밤에 수 천의 이스라엘 장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생명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출애굽기 12장 참조) 그들 중 두 가정만 찾아가서 그들과 이 야기를 나눠 봅시다.
 
우리가 방문했던 첫째 집에서는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집 장남이 우리에게 귀띰을 해 줍니다. "죽음의 천사가 과연 우리 집을 그냥 넘어 갈지 아니면, 우리 집에도 찾아올지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 순간이기에 우리는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요행히도 죽음의 천사가 우리 집을 지나쳐 가버리고 이 밤이 밝아 온다면야 제가 안심할 수 있지만, 그 때까지 장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옆집 친구는 확신한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외람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이 지루한 밤이 지나봐야 알 일이지요".
"그렇지만, 당신들이 믿고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 지 않았던가요?"

"물론 가르쳐 주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에서 말씀하신 대로 점도 흠도 없는 1년된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랐답니다. 그렇지만 누가 알아요? 만에 하나라도 재앙을 만나게 된다면 어쩌겠어요?"
이제 우리는 그가 말하던 친구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들은 첫째 집의 침울하고 불안한 분위기와는 딴판이었습니다. 그들은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서서 구운 어린양의 고기를 먹으면서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아니 어찌된 일이요. 죽음의 천사가 다니고 있는 이 밤에 모두들 이처럼 즐거워하고 계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이제 날이 밝아오고 여호와께서 떠나라고 명령만 하신다면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종살이에서 풀려나게 되고 육신적 고역과 채찍에서 벗어나게 될 텐데."
"그렇지만 이 밤이 가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오늘 밤이야말로 애굽 전국을 휩쓰는 심판의 밤이 아닙니까?"
"물론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 큰 아이는 아주 안전하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신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뿌렸거든요."
"그렇지만 ... 바로 옆집 사람도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하던데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그 피를 볼 때 넘어가리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해 주셨기에 안심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리가 없지 않아요?"
 
이제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두 집중에서 어느 집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뻐하고 있는 두번째 집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두 집 모두 안전합니다. 그들이 집안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던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뿌려진 피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실로 당신이 구원을 확신하려고 하신다면, 하루에도 수 십, 수 백 번도 더 변하는 감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만고불변의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한복음 6:47).

뿌려진 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흘려주신 보혈 외에는 우리를 멸망의 심판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수 없으며,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 외에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다른 어떠한 것이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한 농부가 농토를 빌리려고 물색하던 차에 자기 집 근처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농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지주에게 부탁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왜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지주에게서는 아무런 회답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웃 사람이 찾아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마 저 농장은 지주가 당신에게 사용하도록 허락해 줄 것 같아요. 작년 크리tm마스 때만 해도 당신에게 선물을 푸짐하게 보내왔고, 지난 번 그분이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당신을 보고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인사해 주지 않았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농부의 마음은 희망에 부풀어 올랐고 뛸듯이 기뻤습니다.
그 다음날 이 농부는 다른 이웃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이웃사람이 말했습니다.
"아직도 농장 사용 승락을 못하셨다지요? 실은 지주와 친한 사람이 그 농장을 부탁했다는데 요즈음 그 사람은 문턱이 닳도록 지주의 집을 드나든다던데요. 모르긴해도 금년에 당신이 그 농장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요?"
이 야기를 듣는 순간 농부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 것만 같아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한 때 희망으로 부풀었던 가승이 이제는 절망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불안한 가운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우체부가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지주에게서 온 편지였기에 얼른 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몇 줄을 읽어 내려가는 농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쳤습니다. 농부는 환호성을 올리며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이젠 됐어! 이제는 안심해도 돼. 이 편지를 보라구! 이제는 누가 뭐래도 상관이 없어.
지주의 말 한 마디면 대법원 판결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수많은 영혼들이 가련하게도 이 농부와 같이 불안해하며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부질없는 생각으로 당황하고 초조해 하는 것입니다 의혹과 초조를 물리치고 확신가운데서 기쁨을 누리게 되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과연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신자에게 멸망을 경고하신 말씀이든, 성도들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시는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만고불변하는 확실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고, 시편 119편 89절에는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고 말씀하셨으며, 민수기 23장 19절에는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고 계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열쇠입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 외에는 어떤 이론이나 핑계나 주장이라도 쓸 데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그렇지만 제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확증할 수가 있어야지요"라고 반문하실런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도 당신에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올바르신 분,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고 의지하십니까?"올바른 믿음이란 얼마나 잘 믿고 있는가 하는 분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연 믿을 만한 분을 믿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지하며, 어떤 사람은 옷깃만을 만져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단순하고 위대한 믿음으로 의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 중에 어느 누가 보다 안전하거나 불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한가지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우리가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고 얼마나 열심으로 믿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은 쓸모 없는 죄인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공로로만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사실을 말씀에 따라 신뢰하는 그것이 곧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 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한복음 6:47) .
 
당신이 선행이나 종교적인 의식을 잘 지켰다거나 경건해졌다는 느낌이나,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려서부터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다는 것으로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그릇된 확신을 갖고 계실지라도 마침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연약하기 짝이 없을지라도 이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이상 말씀드린 것들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 확실히 믿으신다 해도 착각이요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17)고 증거하셨습니다. 실로 나 자신은 전혀 믿을 수 없을지라도 주님만은 믿고 의지하기에 마땅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울상이 되어 "저는 확실히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구원받았느냐고 물어 올 때에는 딱 질색이거든요. 내 말이 거짓말이 될까봐 걱정이 돼서 아예 침묵을 지켜 버리곤 해요"라고 말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다음 이야기를 잘 들어보십시오.
목장을 경영하는 어떤 사람이 몇 마리의 양을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아빠, 몇 마리나 사오셨는지요?"하고 묻는 딸에게 "열 마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이웃 사람이 "아빠가 양을 몇 마리 사오셨니?"하고 물었을 때 "글쎄요. 아빠가 말씀해 주셨지만 거짓말이 될까봐 말씀드리고 싶지 않은데요"라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이야말로 아빠를 거짓말장이로 취급해 버리는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아직 당신은 이 비유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한복음 6:47)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긴 하지만 거짓말이 될까봐 두려워 구원받았다고 말하기를 꺼린다고 한다면 아버지를 거짓말장이 취급을 했던 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를 거짓말장이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믿어 보려고 무던히 노력을 해 왔지만 모두가 허사였어요. 나 자신을 들여다 볼수록 확신은 고사하고 내가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내가 믿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을까요?"

친구여! 장신이 믿으려고 무던히 노력해 왔다는 말을 듣고 보니, 당신은 믿음을 얻기 위해서 방향을 잘못 잡으셨고 길을 잘못 택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당신이 집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데 이운 사람이 찾아와서 역장이 철도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합시다. 그런데 지금 찾아와 일러준 그 사람은 인근에 소문이 자자할 만큼 거짓말장이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말을 믿으실 리가 만무하지요?
어리석게도 제가 "왜 믿을 수 없느냐?"고 반문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처지인 걸요. 누가 그런 사기꾼의 말을 믿어 줍니까?"라고 대답하시겠지요.
이로 보건대 당신의 기분이나 감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해 준 사람의 됨됨이를 보아서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역장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장이의 뜬소문으로 단정하고 있는 참인데 친구가 찾아와서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다녀간 사람은 다정한 친구였습니다. 그가 가버린 후에 "글쎄 내가 어려서부터 알고 있는 처지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는 한두번 밖에는 거짓말한 적이 없었지. 그렇다면 믿어 줄만도 한데"라고 중얼거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당신의 기분이나 감정은 전혀 상관없이 낄게 말해준 사람의 됨됨이를 보아서 판단을 내리 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막역한 친구가 찾아와서 동일한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자네 말이라면 여부가 있겠나? 딱하게도 역장이 교통사고에 회생을 당했군"하고 말했다 칩시다. "당신은 어떻게 그 친구의 말을 고스란히 믿을 수가 있으십니까?"하고 묻는다면 "그야 그 친구와의 사이에는 흉금을 털어놓고 지내는 터인데 피차 이제껏 거짓말을 한다거나 속인 일이 없거든요"라고 대답하시겠지요. 결국 당신은 사고 현장을 보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음속에 그럴듯하게 보여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의심치 않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 어찌 못믿을 것으로 여기십니까?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십니다"(로마서 3:4).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셨음이라"(요한일서 5:9,10).

아브라함은 사람의 증거보다 믿을만한 하나님의 증거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증거를 믿음으로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습니다(로마서 4:3).
 
언젠가 구원의 확신을 갈망하는 한 부인이 전도인에게 찾아와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도무지 믿어지질 않으니 어쩌면 좋죠?"하고 호소했습니다. 그때 상담을 하고 있던 전도인은 조용하고도 슬기롭게 반문했습니다. "그래요? 아주머니께서 믿을 수 없다는 그 분이 누구시지요?" 그때에야 비로서 이 부인은 자신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 나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님과 십자가의 공로를 바라보고 믿는 대신, 그리고 이에 대하여 증거해 주시는 성경말씀을 의지하는 대신, 자꾸만 자기 자신이 무언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기 속에서 증거를 찾고자 했던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면 그림자는 등지게 되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심령에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늘나라에 계신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볼 수는 없습니다.
오직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볼 때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완성해 주신 구속사역을 통하여 이미 나를 영원토록 안전하게 해주셨으며,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은 주님을 믿는 자에게 영원토록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통하여 완성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주신 구원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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