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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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422회 작성일13-06-21 01:25본문
J. N. 다비 / 여성모 역
요4:1-26
우리가 묵상하고자하는 요한복음 속에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그 결과에 관하여 말해주는 세 장이 있습니다. 그 첫번째 장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요한복음 3 장입니다. 이 요한복음 3 장은 성령께서 그의 소생케하는 역사하심 가운데 성령의 능력 과 이 성령역사의 결과를 제시하고 있읍니다. 즉 죽은 영혼들을 드러내어 거듭나게 합니다.
그 두번째 장은 요한복음 7 장이며 이장은 성령의 내주하심이 갖는 내적 결과를 보여줍니다. 즉 여기서는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생수의 강" 으로 묘사하고 있읍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요7:38) 이말씀에 이어서 그 다음 절에 "이는 믿는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7:39) 라고 하십니다. 그 세번째장은 지금 우리가 묵상하기를 원하는 요한복음 4 장이며 이장에서 성령은 명백히 "생수" 그리고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 이라 일컬어지고 있읍니다. 이제부터 다루고자 하는 우리의 본 주제로 돌아가 성령을 주의깊게 묵상해 보고 또 이 성령이 어떻게 일컬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 유익하리라 봅니다. 즉 무엇이 성령의 역사이며 또 믿는자로서 우리 자신들 속에서 성령 즉 솟아나는 샘물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보자는 말입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을 발견하게 된다면 자연 우리는 믿지않는 자들이 성령을 어떻게 거부하는지도 보여주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모든 선한 것의 원천이시며 또 우리에게 이모든 선한 것들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희생제물과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축복을 우리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그분의 희생과 중재 없이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 한것입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죄있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자가 될 수 있는 유일 무이한 길입니다. 바로 이길 즉 이통로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에게 그 어떠한 축복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우리의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영원히 단절되어 있읍니다. 그분을 통해서만이 가장 친밀한 교제가 회복됩니다. 우리는 죄와 연합함으로 교제를 상실합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육신과 세상과 사탄에게 열매를 허락함으로 하나님의 존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교제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런 상태의 교제가 어떻게 보존이 가능하겠읍니까? 이런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신 사역과 부활하심에 의하여 주의 백성들을 취하여 저들의 이전의 지위에서 완전히 구별된 상태로 옮겨 놓으시고 저들을 아버지와 교제케하시며 주님의 사역에 관한한 하나님과 방해 받지 않는 친교를 하게 하십니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 그리고 교통하는데 중간자 역할을 하시는 분임을 저들이 알게되는 것입니다.
즉 주의 백성들은 믿음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예수님의 사람으로 있다는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하나님과 자유로우며 제한받지 않는 사귐을 갖게 됩니다. 믿음으로 저들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받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존전으로 다시 불려온 것입니다. 이제 저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던 자들이란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읍니다. 즉 저들이 거룩한 길에서 떨어져 나와 방황함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으로 부터 배척받은바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일은 자업자득 입니다. 그리고나서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하나로 됨으로서 하나님과 가장 완전한 결합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갖게되며 이런 하나님과의 연합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 백성들은 실제로 배우게 되는 겁니다. 주의 백성들은 죄의 이동(떠남)과 의의 이동(들어옴)이 동시에 자신들을 이와같은 상태로 오게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게 되신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21) 주님 안에서 우리의 완전한 몸 즉 교회가 한몸으로 모임이 하나님의 의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완전무결한 아들임을 보게되며 우리도(여기서 우리라 할때 믿는자를 두고 말하는 것 입니다) 주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된 의가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하늘로 부터 보내주셔서 자기 백성의 영혼을 그의 줄거움에 참여케한 이성령에 의하여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본래의 저들 자신과 본래의 저들 자신의 상태를 바라 보게함으로써 주님께서는 본래의 저들 자신들로 부터 저들을 끌어 내어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이끌어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일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계시는 동안 약속하신 그 약속인 것입니다: "보혜사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세상을 깨닫게 하시리라."(요16:8)
우리가 펼치고 있는 요한복음 4 장이 이말과 완전히 일치하여 그 자체를 잘 드러내고 있는데 즉 하나님의 지혜의 가장 놀라운 것들과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으로 충만한 장으로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요4:1) 바리새 인들이 듣고 질투하여 웅성거렸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모든이들과 함께 평화를 따르도록 하기 위하여 유다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 하시어야 되었읍니다; 그의 영원전부터 계획된 권고하심 속에 이를 위해 꼭 있어야 했던 일이었으며 한 불쌍한 죄인을 만나는 일까지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긴 여행길을 가고 계셨읍니다. 매우 지쳐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다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 우물가에 앉았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그 힘든 사역을 하시는 동안 이 세상사역은 실로 주님에게 너무나 많은 피로를 가져다 주는 일이었읍니다. 완전한 영원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그의 안식을 떠나 오셨읍니다. 즉 주님은 그의 영광의집 그리고 그 복된집을 떠나 죄악된 이 세상에 오셔서 참으로 지쳐 계셨읍니다.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온통 예수님을 낯설고 피곤케하여 지치도록 하는것 들 뿐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죄, 증오, 배은, 악의, 그리고 적대행위와 수고와 같은 것들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것들을 가만히 생각만해도 지쳐 버리는 분이지만 사랑을 증거 하는데에는 결코 피곤해 하는 일이 없는 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저들 제자들도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먹을 것" 이었던 것입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몹시 지치게 하고 성가시게 하여 내몰리듯 빠져 나왔을 때에도 사랑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기도하러 "따로 빈들에" 나가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에는 육체를 편안하게 하는 그런 이기적인 사랑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자기 행위를 아주 특별한 것으로 기록 하고자하는 어떤 이기심도 존재하지 않읍니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사랑의 모습 그자체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땅에 계신 단 하나의 목적에 사로잡혀 계셨으며 아무것도 예수님의 나아가시는 길을 돌려 놓을 수는 없읍니다.
요한복음 4 장에 관련된 상황으로부터 볼 수 있는 이 주제 즉 한 영혼을 구원하시겠다는 이 주제로 인하여 예수님의 전 영혼이 얼마나 충만하게 가득차 있는지를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주님은 사마리아로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기서 예수님께서는 무슨일을 하셨읍니까? 다만 예수님은 홀로 한 수치스러운 죄인과 함께 우물가에 앉아서 영원에 관한 이 위대한 의문을 해결 하기 위하여 그녀에게 그녀자신을 바라보게 하셨으며 또 여인 자신을 알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바로 이와 똑같은 사역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게로 우리 모든 영혼들을 불러 모으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다만 예수님 홀로 저들과 함께 앉아서 저들로 하여금 저들 자신의 마음 깊숙한 데로 인도 하시며 그리고나서 저들이 주예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동시에 저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저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그 선물들을 요청하도록 인도 하십니다. 이 불쌍하고 죄많은 여인의 경우에서 주님께서 이 여인을 인도하신 그 복된 길을 바라 보게됩니다. 이 여인의 마음은 세상에 속한 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 것인지 알지도 못한채로 우물가로 나온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이 여인에게 물 한모금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단지 찬물 한모금 만을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주님께서는 이세상에 속한것 중에서 가장 보잘것 없으며 가장 값어치가 없는 선물 인 찬물 한모금을 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자신을 얼마나 낮추시는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유태인들 사이에는 사마리아인 들과 어떤 사귐이나 대화를 하는것 조차도 타락한 밑바닥 인생으로 취급 받고 있었습니다. 어떤 호의를 받기 위해 사마리아인에게 신세를 지는 일 조차도 유대인들에게는 견딜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여기 우리앞에 사마리아인의 마을 안에서도 그 행실이 가장 타락한 사람중에 한사람인 한 여인으로부터 물 한모금을 달다고 부탁하는 영광의 주님이 계십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주님에게는, 이 여인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유대인들이 여지껏 가장 심한 경멸감을 갖고 보고 취급해 온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대하여 이러한 부탁이 한 유대인으로부터 과연 행하여 질수 있는 일인가하고 의아해 할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이 되어진 일을 한번 묵상해 봅시다. 이 불쌍하고 버림받은 여인 즉 이 죄많은 사마리아 여인을 주님께서 만난 그 마음과 생각을 잘 묵상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갖고있는 편견이나 유대인들이 그들 이웃을 이렇게 취급하는데 있어서의 정당성 여부와 같은 논쟁에 빠져들지 않으셨읍니다. 주님의 마음은 오직 하나의 주제에만 가 있었읍니다-그녀를 구원 하는것- 그렇기때문에 주님은 그녀을 구원하는 일 외에는 어떠한 것도 필요로 하지 않았읍니다. 그녀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달라 하는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자 바로 여기에 위대한 진리가 존재합니다 즉 이 진리를 무시한다면 이세상은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위대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물 한 모금 달라고 하는 우리 주 예수님 바로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이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아직도 저들을 권면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하시면서 물 한 모금 달라고 부탁하는 그분을 알지 못합니다-"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5:20) 주님께서는 아직도 저들에게 그 크신 온유와 사랑으로 저들 자신을 주님께 드리라고 권면하십니다. 즉 물 한 모금의 호의를 부탁하는 주님의 이러한 인격으로 아직도 권면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세상이 알지 못하는 분명한 점은 이것이니, 자신을 낮추시어 죄인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나아오기를 부탁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을, 즉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 영광의 주님이란 점을, 다시말하면 이렇게 행하시는 분이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바로 이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부탁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저들이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것없이는 저들이 도저히 하나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갈수 없다고하는 이것, 바로 이선물을 주님으로부터 저들이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하는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요4:10)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궁금하게 되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선물이란 말인가? 바로 생수입니다. 샘물, 즉 솟아나는 샘, 다시말하면 영생토록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꼭 두 가지가 있읍니다. 첫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그것은 '성령을 주심' 이며 둘째로는 그렇다면 '그것을 주시는 분이 누구냐' 하는 것인데-그분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저들이 후자인 그리스도를 알았더라면 <역자 주:당연히 저들은 그리스도를 믿게되고, "너히가 기도할때에 무었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는 말씀과 같이> 저들은 전자 즉 성령을 구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주의 선물들을 구하도록 하는것은 우리와 관계있는 그분에 대하여 아는 지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이 성령이라는 선물(이 성령을 주시는 자는 물론 예수님 입니다)은 믿는자 안에서는 하나의 샘-즉 항상 살아있는 생수-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항상 가득 고여 있으나 쉽게 말라 없어지는 웅덩이의 고인 물이 아니라 말라붙지 않는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믿는자에게 주어지는 즉 믿는자에게 들어 오셔서 영원히 살아 머물며 결코 고갈되지 않는 샘이 믿는 자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것은 믿는자에게 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즉 "나의 주는 물은 그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는 약속의 말씀말입니다.
이제 이 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첫째로는 이 물을 주시는 자를 아는 지식안에 존재합니다. 이 지식이 없다면 그기에는 완전한 무지, 미개, 어리석음과 완벽한 몰이해 그리고 이선물의 가치나 값을 인식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력함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이 우물가의 여인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여인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의 마음으로는 진리를 이해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세속적인 생각이 진리를 완전히 왜곡 하여 이진리를 다른 통로로 방향을 돌려 놓게 하는 것입니다. "주여" 여자가 가로되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4:11) 그리고 여기서 이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보게 되는데 즉, 세상, 직무, 추구하는일과 세상에 속한 일들입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은 보다 더 고상한 어떤 생각도 떠 올릴수가 없었읍니다. 또한 그녀는 말하는 분이 누구인지도 또 그녀의 주의를 끌기위해 그분께서 이 여인에게 제공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 무었인지도 알수 없었읍니다. 이와같이 이 세상은 참으로 눈이 멀었으며, 이세상은 그리스도에 관한 일로 부터시작하여 시대의 유행을 쫓는 일이나 감각적인일을 추구하도록 잘못 인도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런 유행이나 감각적인 일을 사용하여 영혼을 그리스도로부터 떼어 놓는데 유용한 양손의 도구로 활용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이 된다고 한들 그리고 진리가 단지 물동이로 둔갑하여 추락한들 그게 사탄에게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오직 사탄이 상관하는 일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부터 우리들 마음을 완전히 떠나 있게 하는것 입니다.
사탄은 그가 사용하는 도구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읍니다. 그는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만 하면 됩니다. 즉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영적인 것을 아는 지식으로 부터 우리 마음이 떠나도록 하기만하면 사탄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 수단이란 쾌락일수도, 오락이나, 이득이나 명성이나 가족일이나 합법적인 직장에서의 일 일수도 있읍니다. 하여튼 어떤것이 되었든 사탄이 선택한 수단이 저들 영혼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택하는 일 만큼은 하지 못하도록 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게 사탄이 바라는 전부입니다. 물동이는 저들을 눈멀게 하는데는 구중궁궐이 우리 눈을 멀게하는 만큼이나 잘 사탄의 목적하는바를 위해 충실히 봉사를 다 합니다. 이는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니님의 형상 이니라" (고후4:4) 한 말씀과 같은 것 입니다.
친구여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읍니다. 이와같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위대한 구원을 바라 보는것을 방해하는 일 즉 여러분 자신을 그분 에게 내어 드리고 그분으로부터 이 생수를 얻는 일을 방해하고 있는 일은 여러분에게는 없읍니까? 있다고 하드라도 그것은 여러분에게 유해하지 않는 것 일수도 있읍니다 -그것은 그자체의 모양으로는 순수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말은 즉 그것 자체로는 오히려 칭찬 받을 만한 일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즉 그 순수하게보이는 그것이 여러분과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를 갈라 놓을만한 충분한 무게를 갖고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지는 않읍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낯선 자가 되어 있지는 않읍니까? 그러면 이번에는 여러분자신이 그분의 위대한 선물에 대하여 낯선 자가 되어 있지는 않읍니까? 심지어 오늘도 그일이 무슨일 이 되었든 간에 - 가족의 일이든지 또는 합법적인 직장에서의 일이든지- 여러분을 붙잡고있는 일이 여러분에게 있읍니까? 유해하지 않는 일이라도 우리의 영적인 일을 방해하기에 충분한 무게를 지니고 있을찐 저, 아마도 물동이 보다 더 해롭고 덜 순수한 것이라 할 것같으면, 지금껏 우리의 경험으로 볼테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영적으로 분별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의 영혼을 죽음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무게를 여러분에게 더해주고 있는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우리가 이 문제를 계속해서 다루고 있음으로 이 여인의 경우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한번 살펴 보도록 합시다. 이 여인의 마음은 우물가로 나온 그녀의 목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읍니다- 합법적이고 필요한 목적이었읍니다. 그래서 이 여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행하고 계신 일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마음도 없었읍니다. 이 여인은 그때 그녀가 당장에 해야했던 일에 관계된것 말고는 그리스도께서 행하고 계신 일에서는 그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읍니다. 이 여인은 주님의 마음으로 부터 이 여인을 향하여 공개적으로 드러 내 보이신 사랑과 자비로움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생명의 주이자 ,영광의 주님께서 여행중에 있음으로 인하여 우물가에서 몹시 지쳐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은 이 여인에 대한 화목을 이루는 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와같이 이여인을 화목케 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 주님의 자비로운 영혼을 보지 못하였읍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여인은 그녀의 '물동이' 에 관하여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 다시말하면 이 여인의 판단으로는 그녀의 당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 물동이가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이 생수보다 더 크고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여인은 아직도 그녀 자신의 세속적인 일련의 생각을 추구 하는일을 멈추지 아니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본문 말씀 가운데 다음의 대화에 생생히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요4:12)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물을 먹는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
이제 이정도까지 되어진 일을 볼때 우리 독자 여러분이나 본인이라면 진리 그 자체이신 우리 주님의 양 입술로 부터 하신 이와같이 권능에찬 진리의 말씀이 이 여인을 그녀의 우매한 꿈 가운데서 깨어 나도록 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뿐아니라 이여인의 육에 속한 본성이 분별해 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우리 주님의 진리 말씀가운데 있다는 사실도 충분할 정도로 이 여인에게 넉넉히 보여 주셨으리라고 생각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여인의 경우에는 아직도 아니올시다 입니다. 즉 이 여인은 진리 가운데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으며 이어서 "주여 이런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14:15) 라고 한 대답에 잘 나타나 있읍니다. 세상에 속한 마음은 세상에 속한 일에만 관심을 갖읍니다. 그리고 모든것을 이러한 세상에 속한 매개체를 통하여서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속한 마음은 느낌이라든가 생각과 같은 그자신이 스스로 쳐놓은, 조그마한 울타리속에 같혀 버려서 그 울타리 밖에 있는 그이상의 그 어떤것도 보거나 느낄수가 없게 됩니다. 그 곳 즉 그 작은 울타리 안에서 모든 즐거움을 구하며 그곳에서 살며 그곳에서 세상에 속한 생각을 계속하다가 결국 그곳에서 죽어 없어지게 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라는 말씀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읍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본적이 없으니 저들이 당연히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있다 하드라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며 영적으로야 분별 할수 있는 성령 즉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함께 나누어 가질수 있는 것인데 저들은 이런 믿음을 갖고있지 않음으로 성령즉 하나님의 선물을 나누어 갖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하나님과 천국에 관하여 저들이 현재 처해있는 상태 즉 하나님과 천국으로부터 내어 쫓겨져 있는 상태를 알지못합니다. 즉 저들은 새생명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위하여 마땅히 통과하여야 하는 그 출입구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성령이 저들 마음가운데 들어오는 일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였음으로 저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며 세상에 속한자 이며 결국 저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게됩니다. 이 죄많는 사마리아 여인의 그 모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하시든 것과는 그 방법을 달리하여 보여 주시기는 할 지라도 우리 주님은 아직도 주님의 사랑의 역사를 계속하시는 것 입니다. 이제 마침내 주님께서 이 여인을 다루시는 방법을 바꾸십니다. 사랑의 주이신 우리 주님의 인내하심은 주의 백성들의 고집스러우며 말 듣지 않음으로 인하여 결코 지치는 일이 없읍니다. 우리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느끼는 느낌으로 판단해 보면 구주 예수님께서 이런 한심한 정도의 우매한 상태에 있는 이 여인을 벌써 떠나 가버렸을 것이며 이 여인을 이미 포기를 해버리고도 남음이있다고 우리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 주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눈 멀었다고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이 갖는 인내함이란 결코 다함이 없읍니다. 왜냐하며 이런 인내심은 영원히 고갈 되지 않는 전능자이신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말은 곧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 (요일 4:8,16) 하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지혜안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한 방법을 취하시는데 그렇다 하드라도 그 목적은 역시 지금까지와 행하셨던 것과 똑 같은것인 데 그것은 바로 사랑 입니다. 그분은 권면도 해 보았고 또 간청도 해 보았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도무지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4:16) 즉 '내가 네게 주겠노라고 한 모든것을 네가 받지 않았다라는 사실에 대해 네자신이 그 증인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나는 너로 하여금 너자신과 너자신의 멸망된 상태와 너가 완전히 비참하게 되어있는 너의 이 모습에 대하여 네자신이 네 자신을 바라보는 분명한 관점을 갖도록해야 되겠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단 한절의 힘 있는 말씀속에서 이 여인의 부정한 작은세계가 그녀의 마음에 밝히 드러나게 된것입니다. 주님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그녀가 무엇을 하고 사는 여인 인지를 분명히 알도록 하신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주님께서는 주님 당신께서 무엇하는 분인지를 아는 지식에 이르도록 허락 하신 것입니다. 여자가 가로되 "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4:19) 이 여인이 그전에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이분으로 인하여 그녀의 마음속과 그녀의 삶의 비밀들이 여지없이 들추어졌던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의 양심에 있는 현을 두들겨 그 양심을 일깨워 놓으신 것입니다.-드디어 그양심의 현이 진동을 한것입니다. 이 여인이 그전에는 실제로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즉 그녀가 죄인이었다는 이 사실을 이 우물가에서 만난 낯선 나그네 한분으로부터 확인 받게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이 아주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것들을 들추어 내셨고 그녀 스스로 그녀 자신을 속이고 있는것도 또한 그녀에게서 드러나게 하심으로 결국 그녀로하여금 주님께서는 그녀 마음속에 감추어진 깊은 것이라도 다 통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것입니다. 이와같은 종류의 죄에 관하여 본인이 직접 인정하는 경우는 대개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은 연후에나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능력을 받아 집으로와서 죄인들의 영혼앞으로 나아갈때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어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고전14:24,25) 함과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 입니다. 우리 양심속에 감추어진 모든 밀실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우리주님 그리고 우리 마음의 비밀을 다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양손에 한번 들어가면 밀어 제치거나 씨름을 한다고 해도 도저히 빠져 나갈수 없는 우리주님, 이러한 우리주님의 임재하심가운데 우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분명한 이해에 도달 하기전까지 주님께서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심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즉 우리는 판단을 받읍니다. 책망을 듣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앞에서 더이상 할말을 일어버린채로 벙어리가 되버립니다. 다시말하면 우리는 그분의 권능을 느끼며 더이상 견딜수없는 상태에서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나의 행한 모든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요4:29) 결국 이렇게 부러짖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비록 허락된 축복에 대하여 분명히 아는것이 없는 중이라 하드라도 영혼들이 자기들과 관계가 있는 주님의 권능을 보고 느끼도록 영혼들은 불려 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심령을 찾으시며 그리하여 우리의 죄를 찾아 드러내시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닥아 오실 때에는 우리가 주님을 상대로하여 감추는일은 헛된 일이라는 사실도 우리로하여금 보고 느끼도록 하심으로 우리 영혼들을 불러 모우신다는 말입니다.
이 여인의 마음은 이제 그녀의 물동이에서 완전히 떠나 있읍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읍니다. 하나님만이 마땅히 받으셔야 하는 예배 즉 신령한 예배에 관하여도 이곳에서 그녀에게 행하신 대답 말씀을 통하여 많은 신령한 묵상들이 여기서 이야기 될수도 있겠읍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완전한 가르침이 여기에 모두다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시 이 문제는 접어두고, 우리 주님과 이 사마리아여인의 대화에서 얻을수 있는 복된 목적을 먼저 생각해 보기로 하겠읍니다. 이 여인은 드디어 이분을 아는것이 영원한 생명이 된다고하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아는지식에 거의 접근해 가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구속의 주가 그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게 될 그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이 여인을 몸소 인도하심으로 이 여인 스스로 말하도록 하셨읍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요4:25,26)
형제여 이제 지금까지의 지나온 내용 가운데서 이 사마리아 여인이 우리 주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되는 각 단계를 다시 밟아 보도록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께서는 이여인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그 길을 통해 얼마나 완전무결한 축복과 자비를 받게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 여인은 수치스러움 중에 있는 죄인이었으며 이 놀라운 축복들에 대하여 우둔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주님의 자비로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한마디의 화를 내시는 일도 없읍니다 또 단 한마디의 책망도 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주님의 양 입술로부터 조용히 흘러 나오는 말로 속삭이듯 말씀을 하실 뿐 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님은 이 여인의 죄를 그녀에게서 기억 나도록 하셨읍니다. -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4:17)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이 여인으로 하여금 우리 주님이 메시야임을 드러내는것을 바라도록 인도 하십니다. 그리고나서는 최고로 이여인의 마음을 끌게하여 그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한 방법을 택하여 주님 자신을 이 여인에게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시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의 마음의 벽으로부터 당장 탈출하여 즉각 예수님을 찾아 내고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드러내시고자 하는데도 이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있는 그러한 사람은 우리 가운데 한사람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본래의 상태를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바쁜형편에 있기때문에 다시말하면 우리가 돌봐주지않으면 안되는 일들 해야할 일 약속된 일 그리고 이세상의 쾌락된 일들 이런 일들에 너무 많이 사로잡혀 있기때문에,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의 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 손에 붖잡고 있는 물동이에 너무 많이 사로 잡혀 있기때문에 우물가에 앉아 계시는 영광의 주님을 보고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모셔 보세요 그러면 심지어 현재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자인 이세상이라 하드라도 그자신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방법으로 이 여인이 자비로운 우리 주님 앞으로 불려 나아 오게 되었는지요! 어떠한 형태의 질책도, 거슬리게 하시는 일도, 불친절한 말 한마디도 없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저 이 여인의 심령을 활짝 열었읍니다 그 다음에는 그 심령으로 하여금 우리 주님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만들어 내시었읍니다. 그리고 나서는 큰소리로 힘있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다." (요4:26) 여기서 비로소 이 여인은 자기 영혼이 찾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였읍니다. 주님이 오시리라 하는 어느정도의 어떤 있을 수 있는 소망은 이 여인도 갖고 있을수가 있겠읍니다. 그러나 찬물 한모금을 간청하시는 분으로 나타낼 정도로 겸손과 사랑이 충만한 그런 자비로운 주님을 직접 뵈올줄을 이 여인이 어떻게 기대 할 수가 있었겠읍니까? 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어떤 영혼이든지 그 영혼이 주님에게 무었이든 구하기 이전에 자기자신을 먼저 드러내 보여 주시는 전형적인 우리 주님의 방법이자 우리 주님의 태도이신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입장에서는 우리는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에게 구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방식의 교제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자신의 무가치함 가운데서 완전한 온유 완전한 사랑 완전한 겸손 가운데 계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심령을 다 꿰뚤어 알고 계심으로 우리 주님의 권능의 위대하심의 어떠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나서 분명한 음성으로 "내가 그로라" (요4:26) 고 하시며 마침내 주님 자신을 친히 우리에게 나타 내시는 그 복된 순간으로 우리를 인도 하십니다.
이때 죄인은 친절을 베푸시기위해 그 친절에 대하여 기꺼이 빚진자 되기를 마다 하시지 않으시는 자비하신 우리 주님을 바라 보옵게 되오며 바로 이 복된 순간에 이런 자비하신 우리 주님으로부터 구할수 있는 담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죄인이 구하는 그 순간 이 죄인은 주님께서 크고 힘찬 목 소리로 이렇게 말씀 하시는것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희에게 대하여 아무런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아니하노라 지금 당장 너희에게 무슨 책망을 할려고도 하고 있지도 않았노라 그리고 오히려 이 중요한 것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을 간청하노니 너히가 이런 나의 간곡한 부탁에 응하여 이것을 구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너희가 내게 구할 최상의 선물 즉 하나님의 선물을 너희에게 주겠노라.'
그렇다면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것이 있는데 -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입니다. 여기에서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압니다. "네가 만일...하는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그는 샘물즉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너희에게 주었으리라. 이와같이 주님께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와 동일하게 행하시고 계십니다. 말하자면 우리 영혼이 우리에게 허락된 이 복된 초대에 응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신의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전진하며 우리 영혼들로 하여금 길을 잃어버린 채 타락되어 있는 그 자신의 실제 처해있는 현재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말은 즉 하나님의 얼굴앞에서 우리 영혼들은 죄없는 모습으로 서 있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먼저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4:19) 라고 고백을 한 직후에 마을로 돌아와서는 "그는 나의 행한 모든일을 내게 말하였노라" (요4:29) 라고 행한 이 여인의 말은 바로 우리 주님께서 한 영혼에 대하여 역사 하심으로 그 영혼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을 바로 그때 한 심령의 깊은 데로부터 느낀 체험가운데 쏟아져 나올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 전에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에라면 우리는 우리에게 지금 말씀을 하고계시는 이 분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을 터인데 이와같이 이전에라면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우쳐 알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단 우리주님을 알게되고 나면 우리는 주님에게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미 주시기로 작정하였던 그 복된 선물을 마침내 우리에게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우리는 낮선자요 이국인이요 적 되었던자로서의 이전의 우리의 지위에서 끌려 나오게되어 새로운 지위로의 연합, 즉 이제 더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천국에 속한 한부분-다시말하면 그리스도의 한부분-으로 연합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이 일에 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주어지게 됩니다. 즉 성령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 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동일한 지위에다 올려 놓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 다음에 이어져 따라 오는것은 무엇입니까? 여기 본문 말씀에서는 그다음에 나온 성령 역사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요4:28) 입니다 그리고 이여인은 자기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그녀가 만난 모든사람들에게 자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보라고 간청하며 복음을 전파 하였읍니다. 이런 결과는 한 영혼에게서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난 다음에라야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전에 육신에 속한 마음이 그 모든 관심을 집중 시켰던일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여인은 물을 길러 왔읍니다. 이일이야말로 이 여인이 당시에 그녀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 원하였던 전부였던 것입니다. 이 여인의 온 마음은 바로 그 한가지 일에 열중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않아 이 여인은 우물과 물과 물동이에 관해서 더이상 생각지 않게 되었읍니다. 이 연인의 마음은 또하나의 새로운 관심의 대상에 온 마음을 집중하였으며 이제는 이 새로운 대상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자신을 이 여인의 영혼에 드러내 보이셨읍니다. 즉 메시야의 영광이 바로 그녀 자신의 지금의 삶의 목표이자 인생전체의 목적이 되버린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제 주님을 압니다. 소문으로 아는게 아니라 주님께서 개인적인 관계로 이 여인에게 주님 자신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나서는 이여인은 즉각적으로 우리주님을 다른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한 영혼에게 일어날 수있는 일생 일대의 사건으로서 완전 무결한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즉 모든것들이 이제는 각자에게 합당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제자리에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모든것이 무질서요 혼돈이던 곳에 이제 질서가 들어선 것을 우리는 봅니다. 우리는 그분 자신이 생명이자 또한 우리의 생명이신 우리 주님을 보러 나아 갑니다. 말하자면 모든 최종결정권을 우리에게 기꺼이 맡겨놓으시며 이렇게 우리에게 직접 간구하고 계시는 우리 주님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을 보러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간청 하시고 그 결정권을 우리에게 일임 하실때 이런 일이 실제로 우리의 두눈으로 목격 되어진곳, 그곳에서의 혁명은 완전무결한 혁명입니다: 즉 이런 완전무결한 혁명을 경험한 영혼은- 내가 진실로 주님안에 거하고 있는 것인가? 이해와 특권과 영광에 있어서 우리 주님과 내가 확실히 연합되어있는 것인가? 또한 우리 주님은 진정 나의 생명이 되시는가? 그렇다면 내게 있어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의 영광을 위하는일 말고 또한 우리 주님의 말로 다 할수 없는 자비하심에 대하여 내가 감사를 드리는 일 말고 내가 무엇을 위해 살수 있단 말인가!- 하는 보석같은 주제들에 대한 질문을 갖도록 인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 할 때부터 이 여인의 부끄러운 자기수치 로부터 자기 확신에 이러는 전 과정을 통하여 한 영혼을 이와같은 상태로 불러 만드는 것이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분의 모든 생각들의 주제였던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은 이와같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영혼이 소생케 되어집니다. 다시말하면 샘물이 우리 가운데 놓여지게 되는것입니다. 그때 이 영혼속에 항상 솟아나는 어떤 놀라운 것이 있게되며 여기에는 항상 우리에게 쉬원함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는데 이 놀라운 것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를 생각해 보세요, 바로 영생수 샘이 되시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부터입니다. 즉 이제 이 영혼은 우리 주 예수님의 영광을 생각하게 되며 이때부터 주 예수님의 모든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한 완전무결한 인지와 느낄수 있을 정도의 이해에 도달하게 되면 이 영혼에게 있어서 이세상은 더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는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즉 부와 권력과 명예도 능히 경멸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 영혼은 더이상 이세상에서 부를 찾지 않아도 그리스도안에서 풍성한 부를 누리며 더이상 이세상에서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능력을 갖고 있으며 더이상 이세상 명예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온전한 명예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을 인지하는 능력이 우리안에 있는 한은 우리 기쁨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안에 있는 신성으로 부터 솟아나는 것인데 이 신성은 그 영광스러운 수여자 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시원한 샘물이 되시며 이 샘물은 영광의 주님으로부터 길러 지는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있으며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일들이야말로 우리 주님과 함께 할 수있는 모든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영혼의 문제는 어떻읍니까? 여러분 몸 안에서도 이렇게 늘 솟아 오르는 샘물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여러분께서 그 샘물의 근원 되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 보셨읍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선물과 여러분에게 구하는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여러분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여러분에게 주었으리라. 그의 주심에 관하여는 아무런 의심의 그림자도 없읍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하였다면 우리 주님이신 그가 여러분에게 주었으리라.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아신적이 있읍니까? 그리고 그분에게 구한적이 있읍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속에 이 샘물을 갖고 계십니까? 이샘물은 여러분의 몸 안에서 솟아 오르고 있읍니까? 남의 샘물에서 물을 긷는것과 이샘물을 자신의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샘물에서 물을 긷는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읍니다. 한 목마른 영혼이 그자신 몸 안에서 스스로 시원함을 체험 하지 못하였다면 그 자신이 아닌 여러분 믿는자 안에서 찾아 낸 샘물에서 어떠한 유익을 얻을수 있겠읍니까? 만일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샘물에서 이 시원함을 스스로 체험 하였다면 그기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영향이 있었읍니까?
여러분은 이세상과 분리 되어 졌읍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도 구별 되어진 자 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고상한 소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즉 이렇게 고상한 소명은 하나님의 후사인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공동의 후사가 되는 바로 이 일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닮아가고 있읍니까? 여기에서 주님이라 할때 우리 주님은 무엇을두고 말하는 것입니까? 거룩하시며 해를 끼치는것을 모르시며 흠이 없으시며 모든 죄에서 분리되신분 이란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이와같이 되고 있으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성령은 여러분의 심령에 그리스도께서 이와같은 분이라는 증인이 되시며 주님께서 이를 여러분에게 친히 증거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너희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영광이 이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백성의 영혼들 위에 증거 되어지는것입니다. 이 증거를 통해 주의 백성들은 내적으로 세상에속한 모든것으로부터 구별 되어 지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첫째 아담과 함께하는 지위에 참여한자의 신분에서 빠져나와 결과적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자의 지위를 갖게 됩니다. 즉 주의 백성들은 모두가 마지막 아담의 일부이자 한 부분으로 연합됨으로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 나는 것입니다. 이 증거를 주의백성들은 외적으로도 드러 내도록 요청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한 주제를 아셨읍니까? 즉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보셨다면 그리고나서 주님에게, 여러분이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꼭 안겨 주시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셨다면 주님께서 하신 대답은 '이것을 너희에게 보여준다면 이것이야말로 너희들의 바람이자 목표이자 기쁨이 되리라' 하는 이 말씀 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여러분들 속에도 바로 이 샘 즉 이 샘물이 존재하고 있읍니까? 만일 이 샘물이 여러분안에 지금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장차는 모르는 일이라 할 지라도 지금까지로서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친구여 속임을 받지 말기를 바랍니다. 즉 여러분이 여러분안에 이 샘물을 갖고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것이 없읍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시는 내적으로 시원함을 가져다주는 샘물을 갖고있지 않다면 여러분이 어떠한 다른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쓸모가 없거나 아니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게될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시험과 시련 그리고 갈등의 햇살이 여러분에게 내려 쪼일때에는 여러분 안에 있다고 하는 그 알수없는 그것은 결국 솟아나는 샘물도 없고 어떤 시원함을 가져다 주는 원천도 없는 아무른 쓸모도 없는 웅뎅이로 바짝 말라 붙어 있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