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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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27회 작성일13-06-21 01:57본문
알프레드 P. 깁스
구원으로 인해 얻어지는 효력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구원의 결과 중의 하나는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분여(分與)해 주는 것으로, 그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베드로후서 1:4)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하고 부패한 옛 성품, 즉 "육신"(flesh)을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그가 사는 동안 이 육신은 여전히 그의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내면에 두 개의 성품을 갖게 됩니다. 어떤 선한 일도 할 수 없는 "육신"이라고 부르는 옛 성품과, 어떤 악한 것도 할 수 없는 "성령"이라고 부르는 새 성품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자연히 내면의 갈등으로 나타납니다(갈라디아서 5:17).
"육신"은 믿는 자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이끌고 지배하고자 합니다. 한편 새 성품은 믿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도록, 다스리고 인도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오해하여 곤란에 빠집니다. 때로는 용기를 잃고, 자신이 영원하고 참된 구원을 받았는가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을 때, 그리고 거듭났을 때 죄의 성향이 있는 모든 것은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육신"이 그의 안에 아직 있고 고약한 성질이 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 아버지와 구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젊은이가 이교도로부터 개종하고,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하여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그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전도자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처음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그렇게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슬픕니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전도자가 물었습니다.
"네. 제 안에 흰 개와 검은 개, 두 마리의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도자는 그 흰 개와 검은 개가 각각 새 성품과 옛 성품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개들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그 젊은 그리스도인은 답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싸웁니다. 검은 개가 횐 개를 물고, 다시 흰 개가 검은 개를 물기를 반복합니다."
전도자가 대답했습니다.
"예,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갈라디아서 5: 17)."
그리고 다시 그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개들 중 어느 쪽이 이깁니까?"
자, 이제 그의 대답을 주의 깊게 생각하십시오.
그 사람은 생각하면서 눈썹을 한 번 찡그리고는 이내 대답했습니다.
"내가 '공격해!'라고 시킨 쪽의 개가 어느 개인가에 전적으로 달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청년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의지가 이 성품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빌립보서 3:3) 것을 명합니다. 즉 믿는 자는 육체에서 아무런 선한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육체를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치 말라"(로마서 13:14).
즉, 육체의 욕망과 정욕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그것을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거절합니다. 육신은 부정되고 복종되어야 합니다. 한번 이 가정이 느슨해지면 육신은 다시 지배하고자 모색하고 그 활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고통을 가져 올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동의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로마서 7:18)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 사실을 배우고 행동하면 우리의 안에서 옛 성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새 성품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식을 이용한다는 것, 또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을 사는 것으로 그 새 성품을 계발하고자 하는 것, 그 기준에서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는 말씀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헌신되고 즐겁고 쓸모 있는 믿는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의 지식과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위해서 축복을 빌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새 성품의 통제 아래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람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은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무절제하며,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치 않으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게으르며, 쾌락을 즐기며, 죄를 계속해서 용납하는 삶, 즉 육신의 다스림 안에 사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자신의 인생에 슬픔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치욕을 끼치고, 그가 한 때 알고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고백한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진실로 어떤 분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삽니다. 이것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노출되는 위험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경고 받는 것이 안전한 것입니다. 이 장의 첫 머리에 있는 말들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합시다.
"구원받은 효과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나는 행복하고 가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규척적이고 체계적인 묵상과 연구에 대한 열망이 필요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본능적으로 그의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젖을 원하는 것과 같이, 모든 거듭난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2:2).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문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온전한 진실이며 권위입니다(디모데후서 3:14-17). 성경 말씀은 믿는 자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하고 완벽한 계시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규칙적, 체계적으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매일 아침, 저녁 말씀을 읽을 구분된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이 시간은 어떤 다른 일로 방해받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의 결여에 대한 보상은 무엇에서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안식과, 인도와, 격려와, 경고와, 책망을 주시고 가장 정결한 믿음 가운데서 그들을 지어 가시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통해서 믿는 자는 자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배워 알게 됩니다.
말씀을 등한시하는 것은 영적인 나태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옛 성품의 지배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성경 읽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 성품은 말씀을 먹고 성장하고 그것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읽기 위해서 매일 아침, 저녁에 일정한 시간을 따로 정하도록 합시다.
성경은;
(1)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경건하게 읽어야 합니다. 신성한 말씀에 접근할 때 경솔한 마음은 없어야 합니다.
(2) 다윗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이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의 눈을 여시고 그의 말씀을 보고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3) 성령에 의지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되도록 영감을 주신 성령은 우리들 안에서 선생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것들을 들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한복음 16:13-15),
(4)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페이지를 건너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자세히 보십시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어떤 구절을 연필로 표시하고 기억하십시오. 이 기억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창고가 되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5) 규칙적으로 읽으십시오. "베뢰아 사람은 날아다 성경을 상고하므로"(사도행전 17:11). 성경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도록 하십시오. 가장 좋은 시간은 마음이 상쾌하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이른 아침입니다.
(6) 체계적으로 읽으십시오. 성경 전체를 1년 안에 읽을 수 있는 명확한 계획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구약을 매일 아침 3장, 신약을 2장씩 읽으면 1년에 구약은 1번 신약은 2번 읽게 됩니다.
(7) 순종하며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누가복음 6:40).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든 안주든 간에 따라가야 할 빛을 주시고 복종해야 될 명령을 발하십니다.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라고 경고하십니다(야고보서 1:22. 요한복음 15장 14절, 13장 17절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방어하는 "검"에 비유됩니다(에베소서 6:17). 또한 비추이는 "빛"(시 119:130), 계시의 "거울"(야고보서 1:23-25), 자라게 하는 "젖"(베드로전서 2:2), 힘을 주는 "단단한 식물"(히브리서 5:12-14), 본질을 밝히 보여 주고 더러운 것을 소멸시키는 "불"(예레미야 23:29), 부수는 "방망이"(예레미야 23:20), 즐거움을 주는 "꿀"(시편 19:10), 부유하게 하는 "금"(시편 119:72)으로 비유됩니다. 진실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놀라운 책을 우리에게 주셔서 읽고 연구하게 하시며,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그 뜻을 알고 행하도록 하는 진리를 주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9편 7-14절, 1편 1-3절, 119편 11,98,160절,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디모데후서 2장 15절도 읽으십시오.
둘째,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중보 기도도 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처럼, 믿는 자의 가슴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4:23,24). 찬양으로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하신 모든 것, 즉 그리스도라는 선물, 성령, 거룩하신 말씀, 구원과 그분의 모든 축복, 현재의 세상적인 은혜인 좋은 건강, 강함, 정신적 건강, 식량, 집과 옷, 또한 응답받은 기도 등을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에베소서 1장 1-12절, 야고보서 1장 17절, 골로새서 1장 12,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드리는 찬양을 기뻐하십니다(시편 69:30,31).
기도를 통해서 믿는 자는 자기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며 성경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지에 부합되는 것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들의 모든 걱정, 문제, 송사, 어려움, 실패, 분노와 슬픔을 가지고 그에게 오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에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고 약속하기를 기뻐하시지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15).
다른 이를 위한 중보 기도가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하여,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받지 못한 친척과 친구들을 위하여, 복음 전파자와 가르치는 자들과 외국의 선교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디모데전서 2:1-4). 베드로전서 5장 7절, 마태복음 6장 5-15절, 에베소서 6장 18-20절, 빌립보서 4장 6-8절을 읽으십시오.
기도하는 습관은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의 모든 문제와 필요와 원함을 솔직하고 단순하게 그에게 말하는 것이 제2의 천성이 될 때까지 연마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얼마나 자주 평강을 잃는가.
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짊어지는가.
이 모두가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뢰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니!"
셋째,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알도록 인도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믿는 자는 복음과 구원의 능력을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하고 일관된 믿는 자의 생활을 함으로써 이 간증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다면 그는 자신의 구원을 의심해도 됩니다. 영혼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구주를 믿고 영원히 구원받도록 인도하는 특권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바울의 좌우명은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린도전서 9:20-23)였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학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렝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증인은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그들이 그를 알고 믿도록 하는 증인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고 고백한 우리는 이 구주를 우리의 친척과 친구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립시다.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믿은 그리스도를 그들 역시 알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대면하게 되고 또 극복되어야만 하는 악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잠언 20:25)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브리서 12:1~3) 하셨던 구주를 위하여 우리가 증인됨을 방해하는 세상의 모욕과 경멸을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믿는 자가 전도하여 영혼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성경 연구와 많은 기도는 왕 중의 왕되신 분의 용감한 군사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와 용기를 증대시킵니다. 안드레가 그리스도를 안 후에 먼저 행한 것이 그의 형 베드로를 주께 데려온 것입니다(요한복음 1:40-42). 가족 중 한 사람의 용감한 증언과 일관된 믿는 자의 생활의 모습으로 인해서 온 가족이 예수께로 인도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믿는 자가 되십시오.
영을 얻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 11::30)고 확언하십니다. 이 일에는 많은 지혜와 선의의 요령과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요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야고보서 1:5,6). 좋은 방법은 당신 스스로 읽으셨던 훌륭하고 알맞은 성경 구절을 주의 깊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해 드리는 것입니다. 예의 있는 알맞은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봉사하면 될 것입니다. 계속 연습하면 잘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봉사하는 기쁨을 경험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를 진정 사랑하고 그가 그를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다음 성구들을 주의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로마서 10장 1절, 12장 17절, 1장 14-16절; 에스겔 33장 1-6절, 잠언 24장 11,12절, 마태복음 28장 18-20절, 다니엘 12장 3절.
넷째, 생활 가운데서 모든 알려진 죄를 멀리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독서, 쾌락 또는 오락에 있어서도 확신이 가지 않는 어떤 것이나 의심스러운 것은 피해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2).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육체로나 영으로나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 가운데서 별로 문제되지 않는 어떤 불결함도 믿는 자가 효과적으로 봉사하는데 맞지 않으며,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그에게서 빼앗으며, 그의 영적인 능력을 무디게 합니다(디모데전서 4:8,9,16; 디모데후서 2:19-22). 하나님의 일에 능력있던 많은 믿는 자들이 확신가지 않는 일들을 참견하고, 그의 생활 가운데 있는 죄들을 분별하거나 고백하지 않으므로 해서 주를 위한 봉사에서 힘을 쓰지 못합니다(고린도전서 9:24-27, 11:31,32).
하나님의 자녀가 생각 속에서나 말하면서, 행위나 태도에서 어떤 죄를 범한 것을 의식하면 즉시 하나님께 그것을 고백하고 그것에 대항해서 하나님 편에 가담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아주 싫어하는 마음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만일 그 잘못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면 사과하고 손해 배상을 해야 합니다(마태복음 18:15-25), 말할 것도 없이 옛 성품은 이런 자기 훈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연습되어야 합니다. 기쁘고 유익 한 믿는 자의 삶의 값어치는 멈추지 않는 각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태복음 26:41)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다른 젊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과 셈을 빨리 하는 것을 지속시켜 나가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를 버리고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하십시오(요한일서 1:9). 자신감과 자만심은 믿는 자가 피해야 하는 두 가지 악입니다(갈라디아서 6:3; 로마서 12:3; 고린도전서 8:2; 요한복음 15:5).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어떤 계획이나 목적을 테스트하기 위한 5가지의 항목이 있습니다.
(1)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인가? 금하는 말씀이 있으면 즉시 폐기하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원칙을 위반하는가? 생활의 깨끗함, 순수함, 거래의 정직함, 말의 진실함에 관한 성구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넓은 원칙들이 있습니다. 믿는 자가 심사숙고 해 볼 때, 계획이나 목적이 이 원칙들을 위반하지는 않는가?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0:31에서 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는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우리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또는 이곳 저곳을 방문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인가? 아니라면 그것들을 폐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4) 내가 하나님께 그것들에게 축복해 주십사 하고 빌 수 있는가? 만일 아니면 하지 말고 그냥 버려 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5) 만일 이것을 하고 있는 중에 주께서 오셔도 좋은가? 이 장소에 있어도 좋은가?(마태복음 24:42-46).
전날 저녁에 입었던 약간 때묻은 깃의 옷을 입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아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여보, 만일 의심이 간다면 그 옷은 더러운 것이에요." 만일 우리가 믿는 자의 생활 속에서 의심스러운 것은 더러운 것으로 취급한다면 우리는 아주 잘못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섯째, 믿는 자들과의 교우 관계와 우정 찾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다윗은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파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시편 119:63)고 했습니다. 옛 격언에도 진실이 있습니다. "유유상종-친구로 그 사람을 안다." 그분의 백성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복음의 선포를 위해서 함께 만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모든 믿는 자는 신약에서 말씀하신 원리에 따라서 만나는 믿는 자 들과 교제와 친목을 돈독히 하고 이런 교제에서 나타나는 사랑, 환대, 우정, 격려, 지지 연대감 그리고 축복의 기쁨을 누리십시오.
초기 제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돕고 선도하기 위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였습니다(사도행전 2:41-47). 그들이 잡혔다가 놓였을 때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로 가서"(사도행전 4:23)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듭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있는 위대하고 기본적인 원칙들을 소유하고 가르치며, 모든 생활과 원칙에 신실하며, 그들의 교제에 다른 이들도 환영하는 믿는 자들입니다. 기도와 찬양과 하나님 말씀의 강론을 위해서 신자들이 모이는 정규집회를 폐하지 마십시오(히브리서 10:25).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믿는 자여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린도후서 6:14-18),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며"(말라기 3:16)라고 하셨습니다. 선하고 경건하며 변함이 없고 성경을 사랑하는 믿는 자와의 우정을 모색하십시오. 왜냐하면 연합하면 강하게 되고 그 믿는 자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순례자의 길을 가도록 격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야고보서 4:4: 요한일서 2:15~17)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믿는 자들이 옛 세상적인 관계들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그의 믿는 자로서의 생활에 실패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선하고 용감하고 단호한 증언에다 부합되는 생활을 더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들이 곧 제거된 것입니다.
여섯째, 침례와 만찬에 관한 주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읽으시면 한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믿는 자로서 침례받은 사실을 볼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 8장 29-38절, 9장 18절, 10장 43-48절, 16장 14, 15, 30, 34절, 18장 8절.
침례는 물론 당신이 읽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으심, 장사와 부활의 단순한 그림입니다. 그분이 우리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의 파도와 물결 밑으로 가셨고 죽고 다시 사신 것과 같이, 주님의 명하심에 따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새 생명 가운데서 걸어가고자 하는 믿는 자의 소망 안에서 주님과 하나됨을 보여주기 위해서 물로 세례를 받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마가복음 16장 16절을 보십시오. 침례의 영적인 중요함은 로마서 6장 4,5절,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그분에게 대한 배반과 죽음의 밤에 주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누가복음 25:19,20; 마태복음 26:26-28, 마가복음 14:22-25). 고린도전서 11장 23-34절에서 부활하신 주는 이 의식에 대하여 바울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주의 깊게 읽으시고 주 예수의 요청하심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믿는 자들이 모인 모임에서 주님을 이처럼 기념하고자 하는 당신의 소망을 알리십시오. 그들은 틀림없이 기쁘게 당신을 이 큰 특권에 참여하도록 환영할 것입니다.
일곱째,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 안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에베소서 1:6,12,14)입니다. 그분은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각 믿는 자의 최고의 목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애에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데살로니가후서 1:12)고 하심에 따라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믿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기쁨을 드리지 않고 자기의 영광,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은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로마서 15:1-3, 고린도후서 5:14-16).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앞에 있습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다시 검토되면서 지나갈 것입니다. 그분의 칭찬이나 책망, 즉 상을 받거나 해를 입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15절, 로마서 14장 7-10절을 보십시오. 모든 믿는 자들은 위의 사실을 언제나 자신의 앞에 두고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태복음 25:21, 디모데후서 4:6-8)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 의로운 삶을 위해서 그와 그의 몸을 하나님께 분명하게 내어드려야 합니다(로마서 6:13,14). 그것은 세상 앞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고 진실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죄의 세상에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서 그들이 밤의 빛처럼 빛나기를 원하십니다(마태복음 5:16, 빌립보서 4:5, 데살로니가전서 2:10). 이것은 자기 부정, 자기 심판, 자기 희생을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의 인생에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두번째, 그는 가치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살아 있는 제물로서 하나님께 분명하게 드려야 합니다(로마서 12:1,2). 이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의해서 읽으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당신과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당신의 몸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를 원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존재해 주기를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이런 방법으로 "선하고 만족스럽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의 두번째 내용인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글을 쓰는 저와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양쪽에게 진실이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르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도록 하나님께 우리들의 두 부분을 드림으로써 믿는 자는 구주께 영광을 드리고 자신에게는 기쁨과 평안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믿는 자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그는 주께 그의 물질을 넉넉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몸과 기능뿐 아니라 그 개인의 재산도 역시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재산을 그들의 돌봄에 맡겨 놓은, 단순한 의탁자의 존재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청지기 직분을 수행한 전말을 밝히기 위해서 불려 올림을 받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주의 일에 넉넉하게 드리면서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갚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역대상 29:14).
믿는 자는 그것이 크든 작든 규칙적으로 수입의 일정 부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일을 위해서 그것에다가 주인의 표시를 해놓으십시오. 이렇게 할 때 규모 있는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을 읽으십시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자기의 물질을 주께 드리는 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합니다. 자유로운 드림의 은혜는 제자 신분에 대한 까다로운 테스트 중 하나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아들이라는 선물로 보여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위한 그분의 생명이라는 신물에 의해서 증거된 것같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그분을 위한 헌신의 실체는 우리의 희생적 드림에 의해서 나타내어집니다(로마서 8:22; 고린도후서 8:9,9:7).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으로 소유의 10분의 1을 주께 드릴 것을 명령받습니다. 물론 믿는 자들이 법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축복하신 모든 것을 실감함으로, 사랑과 감사의 발로로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그의 수입의 일정 부분을 따로 떼놓을 것입니다. 이 물질은 믿는 자들이 모이는 집회 장소가 적절히 유지 되도록, 국내 외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가난한 믿는 자들에게 생활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적인 방법으로 공궤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유의되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헌금하는 물질을 명예롭게 취득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 손의 노력의 결과여야 합니다(사도행전 20:33-35).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물질을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방과후에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열심히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로마서 12:17). 믿는 자는 흑사병과 같은 빚을 피해야 합니다(로마서 13:8). 채무 계약을 맺는 것은 사람의 목에 맷돌을 매다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우리는 지나친 낭비를 하지 않도록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색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의복이나 사치품 구입에 자신의 전 수입을 다 쓴다면 평안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엄중한 자제와 예산 짜기가 필요합니다. 자기 가족의 정직한 생활과 공급에 필요한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 가능하면 타인의 필요에도 응해 줄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사치품에 대한 유혹적인 광고에 단호히 눈을 감아야 하고, 믿는 자는 약간의 자기 희생으로 그런 사치품 없이 아주 쉽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영적 투자를 하는데 있어서 신중한 분변이 있어야 합니다. 그 헌금이 가장 적절한 곳에 쓰여져야 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물질이 영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 존재하지 않는 길에 부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헌금하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물질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더욱 전파되는 곳에 사용될 것인가?"
많은 믿는 자들이 그들이 믿기로 고백한 성경의 근본 원칙을 부정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기여합니다. 약간의 숙고는 그들을 이런 실수로부터 구해 줍니다. 하나님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해서 주의하십시오. 생각 없는 헌금으로 낭비하지 마십시오.
넷째, 우리는 자유롭게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한 드림은 축복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6~8).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에게 드리는 것을 허락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큰 명예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의 채무자가 아니십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의 좋으신 때에 모든 영적 투자의 백 배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일만 퍼센트의 결실이고 나쁜 이자가 아닙니다(마태복음 19:29).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과 주는 이와 받는 이에게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생활 속에서 규칙적이고 체계적이고 자유롭고 균형잡힌 기쁜 드림의 습관을 속히 가집시다(마태복음 6:19-21).
다섯째, 우리는 장부를 잘해야 합니다. 맡은 자는 그들의 과업에 충성해야 하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의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책이 있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4:2; 누가복음 16:2).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린도후서 8:7)는 말씀이 우리에게 참이기를 기원합니다.
이 책자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재림에 대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갖는 큰 소망을 위해서는 다소 설명이 부족하여 다섯 가지 참조 사항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으며 천국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바로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충분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1) 오실 분은 주님 자신입니다(요한복음 14:1-3; 사도행전 1:1l; 데살로니가전서 4:16).
(2) 이 사건의 확실성에 대하여 "주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5). "내가 다서 와서(요한복음 14:3)라고 하셨습니다.
(3) 그 시간은 불확실합니다.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마태복음 24:30,44, 2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그분이 오신 결과에 대하여, 그분을 믿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육체를 일으키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분과 함께 있는 그들의 영혼에 다시 결합시킬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믿는 자들과 같이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5) 믿는 자에 대한 이 진리의 효과로서 , 그가 행동하고 보고 기도하며 그의 주께 충성되게 봉사하여 그분이 오실 때 칭찬과 상을 받는 원인이 되어야 합니다. 디도서 2장 11-14절, 디모데후서 4장 7,8절, 고린도전서 3장 9-15절을 읽으십시오. 모든 믿는 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21) 하신 성경의 마지막 기도가 다시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구원의 결과 중의 하나는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분여(分與)해 주는 것으로, 그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베드로후서 1:4)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하고 부패한 옛 성품, 즉 "육신"(flesh)을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 그가 사는 동안 이 육신은 여전히 그의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내면에 두 개의 성품을 갖게 됩니다. 어떤 선한 일도 할 수 없는 "육신"이라고 부르는 옛 성품과, 어떤 악한 것도 할 수 없는 "성령"이라고 부르는 새 성품입니다. 이들의 결과는 자연히 내면의 갈등으로 나타납니다(갈라디아서 5:17).
"육신"은 믿는 자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이끌고 지배하고자 합니다. 한편 새 성품은 믿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도록, 다스리고 인도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오해하여 곤란에 빠집니다. 때로는 용기를 잃고, 자신이 영원하고 참된 구원을 받았는가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을 때, 그리고 거듭났을 때 죄의 성향이 있는 모든 것은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육신"이 그의 안에 아직 있고 고약한 성질이 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 아버지와 구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젊은이가 이교도로부터 개종하고,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하여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그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전도자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처음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그렇게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슬픕니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전도자가 물었습니다.
"네. 제 안에 흰 개와 검은 개, 두 마리의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도자는 그 흰 개와 검은 개가 각각 새 성품과 옛 성품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개들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그 젊은 그리스도인은 답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싸웁니다. 검은 개가 횐 개를 물고, 다시 흰 개가 검은 개를 물기를 반복합니다."
전도자가 대답했습니다.
"예,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갈라디아서 5: 17)."
그리고 다시 그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개들 중 어느 쪽이 이깁니까?"
자, 이제 그의 대답을 주의 깊게 생각하십시오.
그 사람은 생각하면서 눈썹을 한 번 찡그리고는 이내 대답했습니다.
"내가 '공격해!'라고 시킨 쪽의 개가 어느 개인가에 전적으로 달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청년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의지가 이 성품들 중 어느 것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빌립보서 3:3) 것을 명합니다. 즉 믿는 자는 육체에서 아무런 선한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육체를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치 말라"(로마서 13:14).
즉, 육체의 욕망과 정욕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그것을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거절합니다. 육신은 부정되고 복종되어야 합니다. 한번 이 가정이 느슨해지면 육신은 다시 지배하고자 모색하고 그 활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고통을 가져 올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동의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로마서 7:18)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 사실을 배우고 행동하면 우리의 안에서 옛 성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새 성품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식을 이용한다는 것, 또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받고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을 사는 것으로 그 새 성품을 계발하고자 하는 것, 그 기준에서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는 말씀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헌신되고 즐겁고 쓸모 있는 믿는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의 지식과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위해서 축복을 빌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새 성품의 통제 아래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람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은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무절제하며,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치 않으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게으르며, 쾌락을 즐기며, 죄를 계속해서 용납하는 삶, 즉 육신의 다스림 안에 사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자신의 인생에 슬픔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치욕을 끼치고, 그가 한 때 알고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고백한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진실로 어떤 분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삽니다. 이것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노출되는 위험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경고 받는 것이 안전한 것입니다. 이 장의 첫 머리에 있는 말들로 우리 자신에게 질문합시다.
"구원받은 효과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나는 행복하고 가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규척적이고 체계적인 묵상과 연구에 대한 열망이 필요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본능적으로 그의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젖을 원하는 것과 같이, 모든 거듭난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2:2).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의문에 대하여 해답을 주는 온전한 진실이며 권위입니다(디모데후서 3:14-17). 성경 말씀은 믿는 자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하고 완벽한 계시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규칙적, 체계적으로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매일 아침, 저녁 말씀을 읽을 구분된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이 시간은 어떤 다른 일로 방해받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의 결여에 대한 보상은 무엇에서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안식과, 인도와, 격려와, 경고와, 책망을 주시고 가장 정결한 믿음 가운데서 그들을 지어 가시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통해서 믿는 자는 자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배워 알게 됩니다.
말씀을 등한시하는 것은 영적인 나태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옛 성품의 지배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성경 읽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 성품은 말씀을 먹고 성장하고 그것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읽기 위해서 매일 아침, 저녁에 일정한 시간을 따로 정하도록 합시다.
성경은;
(1)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경건하게 읽어야 합니다. 신성한 말씀에 접근할 때 경솔한 마음은 없어야 합니다.
(2) 다윗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이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의 눈을 여시고 그의 말씀을 보고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3) 성령에 의지해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되도록 영감을 주신 성령은 우리들 안에서 선생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것들을 들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한복음 16:13-15),
(4)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페이지를 건너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자세히 보십시오. 마음에 감동을 주는 어떤 구절을 연필로 표시하고 기억하십시오. 이 기억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창고가 되도록 하면 좋을 것입니다.
(5) 규칙적으로 읽으십시오. "베뢰아 사람은 날아다 성경을 상고하므로"(사도행전 17:11). 성경을 읽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도록 하십시오. 가장 좋은 시간은 마음이 상쾌하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이른 아침입니다.
(6) 체계적으로 읽으십시오. 성경 전체를 1년 안에 읽을 수 있는 명확한 계획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구약을 매일 아침 3장, 신약을 2장씩 읽으면 1년에 구약은 1번 신약은 2번 읽게 됩니다.
(7) 순종하며 읽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누가복음 6:40).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든 안주든 간에 따라가야 할 빛을 주시고 복종해야 될 명령을 발하십니다.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라고 경고하십니다(야고보서 1:22. 요한복음 15장 14절, 13장 17절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방어하는 "검"에 비유됩니다(에베소서 6:17). 또한 비추이는 "빛"(시 119:130), 계시의 "거울"(야고보서 1:23-25), 자라게 하는 "젖"(베드로전서 2:2), 힘을 주는 "단단한 식물"(히브리서 5:12-14), 본질을 밝히 보여 주고 더러운 것을 소멸시키는 "불"(예레미야 23:29), 부수는 "방망이"(예레미야 23:20), 즐거움을 주는 "꿀"(시편 19:10), 부유하게 하는 "금"(시편 119:72)으로 비유됩니다. 진실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놀라운 책을 우리에게 주셔서 읽고 연구하게 하시며,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그 뜻을 알고 행하도록 하는 진리를 주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19편 7-14절, 1편 1-3절, 119편 11,98,160절,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 디모데후서 2장 15절도 읽으십시오.
둘째,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중보 기도도 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처럼, 믿는 자의 가슴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4:23,24). 찬양으로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하신 모든 것, 즉 그리스도라는 선물, 성령, 거룩하신 말씀, 구원과 그분의 모든 축복, 현재의 세상적인 은혜인 좋은 건강, 강함, 정신적 건강, 식량, 집과 옷, 또한 응답받은 기도 등을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에베소서 1장 1-12절, 야고보서 1장 17절, 골로새서 1장 12,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드리는 찬양을 기뻐하십니다(시편 69:30,31).
기도를 통해서 믿는 자는 자기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며 성경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지에 부합되는 것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들의 모든 걱정, 문제, 송사, 어려움, 실패, 분노와 슬픔을 가지고 그에게 오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에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고 약속하기를 기뻐하시지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편 50:15).
다른 이를 위한 중보 기도가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하여,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받지 못한 친척과 친구들을 위하여, 복음 전파자와 가르치는 자들과 외국의 선교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디모데전서 2:1-4). 베드로전서 5장 7절, 마태복음 6장 5-15절, 에베소서 6장 18-20절, 빌립보서 4장 6-8절을 읽으십시오.
기도하는 습관은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의 모든 문제와 필요와 원함을 솔직하고 단순하게 그에게 말하는 것이 제2의 천성이 될 때까지 연마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임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얼마나 자주 평강을 잃는가.
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짊어지는가.
이 모두가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뢰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니!"
셋째,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를 알도록 인도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믿는 자는 복음과 구원의 능력을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하고 일관된 믿는 자의 생활을 함으로써 이 간증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다면 그는 자신의 구원을 의심해도 됩니다. 영혼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구주를 믿고 영원히 구원받도록 인도하는 특권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바울의 좌우명은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린도전서 9:20-23)였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학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렝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증인은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자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그들이 그를 알고 믿도록 하는 증인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고 고백한 우리는 이 구주를 우리의 친척과 친구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립시다.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믿은 그리스도를 그들 역시 알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대면하게 되고 또 극복되어야만 하는 악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잠언 20:25)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브리서 12:1~3) 하셨던 구주를 위하여 우리가 증인됨을 방해하는 세상의 모욕과 경멸을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믿는 자가 전도하여 영혼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성경 연구와 많은 기도는 왕 중의 왕되신 분의 용감한 군사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와 용기를 증대시킵니다. 안드레가 그리스도를 안 후에 먼저 행한 것이 그의 형 베드로를 주께 데려온 것입니다(요한복음 1:40-42). 가족 중 한 사람의 용감한 증언과 일관된 믿는 자의 생활의 모습으로 인해서 온 가족이 예수께로 인도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믿는 자가 되십시오.
영을 얻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 11::30)고 확언하십니다. 이 일에는 많은 지혜와 선의의 요령과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요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야고보서 1:5,6). 좋은 방법은 당신 스스로 읽으셨던 훌륭하고 알맞은 성경 구절을 주의 깊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해 드리는 것입니다. 예의 있는 알맞은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봉사하면 될 것입니다. 계속 연습하면 잘하게 될 것이고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봉사하는 기쁨을 경험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를 진정 사랑하고 그가 그를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다음 성구들을 주의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로마서 10장 1절, 12장 17절, 1장 14-16절; 에스겔 33장 1-6절, 잠언 24장 11,12절, 마태복음 28장 18-20절, 다니엘 12장 3절.
넷째, 생활 가운데서 모든 알려진 죄를 멀리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독서, 쾌락 또는 오락에 있어서도 확신이 가지 않는 어떤 것이나 의심스러운 것은 피해야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22).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육체로나 영으로나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 가운데서 별로 문제되지 않는 어떤 불결함도 믿는 자가 효과적으로 봉사하는데 맞지 않으며,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그에게서 빼앗으며, 그의 영적인 능력을 무디게 합니다(디모데전서 4:8,9,16; 디모데후서 2:19-22). 하나님의 일에 능력있던 많은 믿는 자들이 확신가지 않는 일들을 참견하고, 그의 생활 가운데 있는 죄들을 분별하거나 고백하지 않으므로 해서 주를 위한 봉사에서 힘을 쓰지 못합니다(고린도전서 9:24-27, 11:31,32).
하나님의 자녀가 생각 속에서나 말하면서, 행위나 태도에서 어떤 죄를 범한 것을 의식하면 즉시 하나님께 그것을 고백하고 그것에 대항해서 하나님 편에 가담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죄를 아주 싫어하는 마음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만일 그 잘못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면 사과하고 손해 배상을 해야 합니다(마태복음 18:15-25), 말할 것도 없이 옛 성품은 이런 자기 훈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연습되어야 합니다. 기쁘고 유익 한 믿는 자의 삶의 값어치는 멈추지 않는 각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태복음 26:41)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다른 젊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과 셈을 빨리 하는 것을 지속시켜 나가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를 버리고 계속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하십시오(요한일서 1:9). 자신감과 자만심은 믿는 자가 피해야 하는 두 가지 악입니다(갈라디아서 6:3; 로마서 12:3; 고린도전서 8:2; 요한복음 15:5).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어떤 계획이나 목적을 테스트하기 위한 5가지의 항목이 있습니다.
(1)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인가? 금하는 말씀이 있으면 즉시 폐기하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원칙을 위반하는가? 생활의 깨끗함, 순수함, 거래의 정직함, 말의 진실함에 관한 성구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넓은 원칙들이 있습니다. 믿는 자가 심사숙고 해 볼 때, 계획이나 목적이 이 원칙들을 위반하지는 않는가?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0:31에서 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는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우리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 또는 이곳 저곳을 방문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인가? 아니라면 그것들을 폐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4) 내가 하나님께 그것들에게 축복해 주십사 하고 빌 수 있는가? 만일 아니면 하지 말고 그냥 버려 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5) 만일 이것을 하고 있는 중에 주께서 오셔도 좋은가? 이 장소에 있어도 좋은가?(마태복음 24:42-46).
전날 저녁에 입었던 약간 때묻은 깃의 옷을 입을까 말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아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여보, 만일 의심이 간다면 그 옷은 더러운 것이에요." 만일 우리가 믿는 자의 생활 속에서 의심스러운 것은 더러운 것으로 취급한다면 우리는 아주 잘못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섯째, 믿는 자들과의 교우 관계와 우정 찾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다윗은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파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시편 119:63)고 했습니다. 옛 격언에도 진실이 있습니다. "유유상종-친구로 그 사람을 안다." 그분의 백성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복음의 선포를 위해서 함께 만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모든 믿는 자는 신약에서 말씀하신 원리에 따라서 만나는 믿는 자 들과 교제와 친목을 돈독히 하고 이런 교제에서 나타나는 사랑, 환대, 우정, 격려, 지지 연대감 그리고 축복의 기쁨을 누리십시오.
초기 제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돕고 선도하기 위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였습니다(사도행전 2:41-47). 그들이 잡혔다가 놓였을 때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로 가서"(사도행전 4:23)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거듭났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있는 위대하고 기본적인 원칙들을 소유하고 가르치며, 모든 생활과 원칙에 신실하며, 그들의 교제에 다른 이들도 환영하는 믿는 자들입니다. 기도와 찬양과 하나님 말씀의 강론을 위해서 신자들이 모이는 정규집회를 폐하지 마십시오(히브리서 10:25).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믿는 자여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린도후서 6:14-18),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며"(말라기 3:16)라고 하셨습니다. 선하고 경건하며 변함이 없고 성경을 사랑하는 믿는 자와의 우정을 모색하십시오. 왜냐하면 연합하면 강하게 되고 그 믿는 자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순례자의 길을 가도록 격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야고보서 4:4: 요한일서 2:15~17)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믿는 자들이 옛 세상적인 관계들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그의 믿는 자로서의 생활에 실패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선하고 용감하고 단호한 증언에다 부합되는 생활을 더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들이 곧 제거된 것입니다.
여섯째, 침례와 만찬에 관한 주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읽으시면 한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믿는 자로서 침례받은 사실을 볼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 8장 29-38절, 9장 18절, 10장 43-48절, 16장 14, 15, 30, 34절, 18장 8절.
침례는 물론 당신이 읽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으심, 장사와 부활의 단순한 그림입니다. 그분이 우리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의 파도와 물결 밑으로 가셨고 죽고 다시 사신 것과 같이, 주님의 명하심에 따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새 생명 가운데서 걸어가고자 하는 믿는 자의 소망 안에서 주님과 하나됨을 보여주기 위해서 물로 세례를 받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마가복음 16장 16절을 보십시오. 침례의 영적인 중요함은 로마서 6장 4,5절,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그분에게 대한 배반과 죽음의 밤에 주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누가복음 25:19,20; 마태복음 26:26-28, 마가복음 14:22-25). 고린도전서 11장 23-34절에서 부활하신 주는 이 의식에 대하여 바울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주의 깊게 읽으시고 주 예수의 요청하심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믿는 자들이 모인 모임에서 주님을 이처럼 기념하고자 하는 당신의 소망을 알리십시오. 그들은 틀림없이 기쁘게 당신을 이 큰 특권에 참여하도록 환영할 것입니다.
일곱째,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 안에 두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에베소서 1:6,12,14)입니다. 그분은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 믿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각 믿는 자의 최고의 목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 생애에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데살로니가후서 1:12)고 하심에 따라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믿는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기쁨을 드리지 않고 자기의 영광, 자기의 기쁨을 위해서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은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말 것을 경고하십니다(로마서 15:1-3, 고린도후서 5:14-16).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앞에 있습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다시 검토되면서 지나갈 것입니다. 그분의 칭찬이나 책망, 즉 상을 받거나 해를 입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15절, 로마서 14장 7-10절을 보십시오. 모든 믿는 자들은 위의 사실을 언제나 자신의 앞에 두고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태복음 25:21, 디모데후서 4:6-8)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 의로운 삶을 위해서 그와 그의 몸을 하나님께 분명하게 내어드려야 합니다(로마서 6:13,14). 그것은 세상 앞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고 진실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죄의 세상에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서 그들이 밤의 빛처럼 빛나기를 원하십니다(마태복음 5:16, 빌립보서 4:5, 데살로니가전서 2:10). 이것은 자기 부정, 자기 심판, 자기 희생을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의 영혼과 다른 사람의 인생에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두번째, 그는 가치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를 살아 있는 제물로서 하나님께 분명하게 드려야 합니다(로마서 12:1,2). 이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의해서 읽으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당신과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당신의 몸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를 원하는 곳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존재해 주기를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이런 방법으로 "선하고 만족스럽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의 두번째 내용인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글을 쓰는 저와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양쪽에게 진실이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르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도록 하나님께 우리들의 두 부분을 드림으로써 믿는 자는 구주께 영광을 드리고 자신에게는 기쁨과 평안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축복을 가져다 주는 믿는 자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그는 주께 그의 물질을 넉넉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몸과 기능뿐 아니라 그 개인의 재산도 역시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재산을 그들의 돌봄에 맡겨 놓은, 단순한 의탁자의 존재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청지기 직분을 수행한 전말을 밝히기 위해서 불려 올림을 받습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주의 일에 넉넉하게 드리면서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갚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역대상 29:14).
믿는 자는 그것이 크든 작든 규칙적으로 수입의 일정 부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일을 위해서 그것에다가 주인의 표시를 해놓으십시오. 이렇게 할 때 규모 있는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을 읽으십시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자기의 물질을 주께 드리는 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합니다. 자유로운 드림의 은혜는 제자 신분에 대한 까다로운 테스트 중 하나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아들이라는 선물로 보여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위한 그분의 생명이라는 신물에 의해서 증거된 것같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그분을 위한 헌신의 실체는 우리의 희생적 드림에 의해서 나타내어집니다(로마서 8:22; 고린도후서 8:9,9:7).
이스라엘 사람들은 법으로 소유의 10분의 1을 주께 드릴 것을 명령받습니다. 물론 믿는 자들이 법 아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축복하신 모든 것을 실감함으로, 사랑과 감사의 발로로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그의 수입의 일정 부분을 따로 떼놓을 것입니다. 이 물질은 믿는 자들이 모이는 집회 장소가 적절히 유지 되도록, 국내 외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가난한 믿는 자들에게 생활의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서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적인 방법으로 공궤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가 유의되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헌금하는 물질을 명예롭게 취득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우리 손의 노력의 결과여야 합니다(사도행전 20:33-35). 많은 젊은이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물질을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방과후에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열심히 정직하게, 부지런하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로마서 12:17). 믿는 자는 흑사병과 같은 빚을 피해야 합니다(로마서 13:8). 채무 계약을 맺는 것은 사람의 목에 맷돌을 매다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우리는 지나친 낭비를 하지 않도록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색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의복이나 사치품 구입에 자신의 전 수입을 다 쓴다면 평안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엄중한 자제와 예산 짜기가 필요합니다. 자기 가족의 정직한 생활과 공급에 필요한 모든 책임을 감당하고 가능하면 타인의 필요에도 응해 줄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사치품에 대한 유혹적인 광고에 단호히 눈을 감아야 하고, 믿는 자는 약간의 자기 희생으로 그런 사치품 없이 아주 쉽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영적 투자를 하는데 있어서 신중한 분변이 있어야 합니다. 그 헌금이 가장 적절한 곳에 쓰여져야 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물질이 영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이 존재하지 않는 길에 부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헌금하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물질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이 더욱 전파되는 곳에 사용될 것인가?"
많은 믿는 자들이 그들이 믿기로 고백한 성경의 근본 원칙을 부정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기여합니다. 약간의 숙고는 그들을 이런 실수로부터 구해 줍니다. 하나님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해서 주의하십시오. 생각 없는 헌금으로 낭비하지 마십시오.
넷째, 우리는 자유롭게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한 드림은 축복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린도후서 9:6~8).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에게 드리는 것을 허락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큰 명예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의 채무자가 아니십니다. 그리고 그분 자신의 좋으신 때에 모든 영적 투자의 백 배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일만 퍼센트의 결실이고 나쁜 이자가 아닙니다(마태복음 19:29).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은 하나님과 주는 이와 받는 이에게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생활 속에서 규칙적이고 체계적이고 자유롭고 균형잡힌 기쁜 드림의 습관을 속히 가집시다(마태복음 6:19-21).
다섯째, 우리는 장부를 잘해야 합니다. 맡은 자는 그들의 과업에 충성해야 하고 때가 되었을 때 그들의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책이 있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4:2; 누가복음 16:2).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린도후서 8:7)는 말씀이 우리에게 참이기를 기원합니다.
이 책자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재림에 대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갖는 큰 소망을 위해서는 다소 설명이 부족하여 다섯 가지 참조 사항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으며 천국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바로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충분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1) 오실 분은 주님 자신입니다(요한복음 14:1-3; 사도행전 1:1l; 데살로니가전서 4:16).
(2) 이 사건의 확실성에 대하여 "주의 말씀"으로 하셨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5). "내가 다서 와서(요한복음 14:3)라고 하셨습니다.
(3) 그 시간은 불확실합니다.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마태복음 24:30,44, 2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그분이 오신 결과에 대하여, 그분을 믿고 죽은 모든 사람들의 육체를 일으키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분과 함께 있는 그들의 영혼에 다시 결합시킬 것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믿는 자들과 같이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5) 믿는 자에 대한 이 진리의 효과로서 , 그가 행동하고 보고 기도하며 그의 주께 충성되게 봉사하여 그분이 오실 때 칭찬과 상을 받는 원인이 되어야 합니다. 디도서 2장 11-14절, 디모데후서 4장 7,8절, 고린도전서 3장 9-15절을 읽으십시오. 모든 믿는 자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21) 하신 성경의 마지막 기도가 다시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식" - 알프레드 깁스 전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