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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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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04회 작성일13-06-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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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윌리암 맥도날드

하나님의 자비는 사실 사람이 창조되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예지로 일어날 모든 일-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고 인간에 대한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깊고 영원한 계획 가운데서 인간에 대한 축복을-사람들의 사고의 계획 가운데서 인간에 대한 축복을-사람들의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계획하셨습니다.

1. 창세 전에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요한계시록 13:8).
2. 창세 전에 예정을 입은 자들이 선택되었습니다(에베소서 1:4).
3. 창세 전부터 영생이 약속되었습니다(디도서 1:2).
4.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나라는 준비되었습니다(마태복음 25:34).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창세기 1:26).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중에 아담이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었습니다. 아담에게는 이 땅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창세기 1:28).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고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이 준비된 곳에 두셨습니다(창세기 2:8). 모든 좋은 것은 그에게 금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의 선하심은 정기적인 씨뿌림과 추수 때, 겨울과 여름, 추위와 더위, 그리고 밤과 낮에 나타났습니다(창세기 8:22). 그가 풍성하게 준비하신 음식의 다양성에도 주의 선하심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창조하신 창조물들의 아름다움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은 나타났습니다. 이 하나님의 온전한 선하심에도 사람은 죄에 빠졌습니다(창세기 3:6). 그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주를 불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사람에게 금하고 있다는 사단의 말을 믿었습니다(창세기 3:1).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막았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은 아담과 하와에 게 입을 옷을 준비하셨습니다(창세기 3:21). 그리고 사람의 원수 사단을 없이할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3:15). 그후의 구약성경은 불의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호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은 그가 그리스도와 그 사역을 통하여 그 후손에게 사랑을 베푸시겠다고 하는 조건 없는 언약이었습니다(창세기 15:5; 사무엘하 7:16).
하나님은 그들을 먹이고 인도하고 보호하고 측량할 수 없는 축복으로 축복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랑에 그의 백성들은 불신과 우상숭배, 불평, 부도덕 그리고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대신 갚았습니다. 이와 같은 배은망덕에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그의 선지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전한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들을 돌로 치고 웅덩이에 빠트리며 많은 경우에 그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욕에도 오래 참으셨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전 보다 더 놀랍고 자비로운 방법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죄악된 세상에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다는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악한 인간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하나님 같은 거룩과 사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생생한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에 있고 또 하나는 신약에 있습니다.

구약에 있는 그림은 아브라함이 기꺼이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이야기입니다(창세기 22장).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을 하늘의 별이나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을 정도고 많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아버지가 그 아들과 함께 산을 향해 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아버지는 칼과 불을 가지고 가고, 아들은 번제에 쓸 나무를 가지고 갑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가슴아픈 대화가 오가는 것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묶여 판 위에 올려지고 칼을 높이 들어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슴 아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할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그 아들을 갈보리 동산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이르게 한 하나님 아버지 대한 생생한 모습을 봅니다. 여기에서 비교는 끝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대신해 드릴 수 있는 제물이 있었기에 그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것까지는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로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픈 마음은 생각하셨으나 자신의 마음은 고려치 않으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 예수를 위한 대속 제물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두 번째 이야기, 즉 아들을 드리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에서 볼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20:9-15). 여기에서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심고 그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맡기고 먼 타국으로 간 포도원 주인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주인은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종을 그 농부들에게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져 보냈습니다(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대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져 보냈습니다. 세 번째 종은 상하게 하고 포도원에서 내어쫓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하기를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공경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농부들은 난폭하게 대했습니다. 그들은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에 대해 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악을 범했으나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갚으셨습니다(창세기 50:20).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가운데 행했으나 하나님은 자신의 선 가운데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한 사람을 죽인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 양들이 그 목자를 죽인 것입니다만 하나님 편에서는 목자가 양들을 위해 죽은 것입니다. 그 후에 있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나님은 복음을 준비하시고 "이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으니 오라"(누가복음 14:17)는 초청을 하셨습니다.
1,900여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의 큰 복음 잔치에 참여하도록 간청하고 계십니다. 어떤 이들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오직 몇 안되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분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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