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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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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85회 작성일13-06-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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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윌리암 맥도날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신 것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자원하여 죽으신 것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8:9).

다음의 두 가지 놀라운 사실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1) 그는 부한 자였습니다.
(2) 그러나 그는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는 부한 자였습니다. 영원 전부터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편에 계셔 하나님의 기뻐하신 바가 되셨으며 항상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셨습니다(잠언 8:30). 하늘에 있는 그는 부를 설명하는 것보다 별들의 숫자를 계산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부요함 가운데 계시며 안식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는 슬픔이나 고난 그리고 죽음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하늘에 계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는 범죄한 인간들을 그 죄에 따라 멸망으로 몰아 넣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하여 하늘의 기쁨과 부를 떠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빌립보서 2:6). 그는 기꺼이 하늘의 부를 이 땅의 가난과 바꾸셨습니다. 부하신 분이 가난을 택하셨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되셨으며 사랑의 모양을 취하셨습니다(빌립보서 2:7). 이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자신을 낮추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비하였습니다. 사람이 벌레나 미생물이 된다는 것도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셨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장성한 사람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능력의 창조주께서 어린아이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누가복음 2:7). 이 온 우주를 붙들고 계신 주께서 나약한 어린아이로 그 어머니 품안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부한 집안이나 영향력 있는 집안이 아닌 아주 단순한 유대 여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출생은 깨끗한 병원이 아니었으며 초가집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어졌습니다(누가복음 2:7). 사관에는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영광의 주께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도자와 부자 그리고 종교 지도자로 오시지 않고 종으로 오셨습니다(빌립보서 2:7). 그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마태복음 20:28). 영원 전부터 천사들의 섬김을 받던 분이 사람의 종이 되셨습니다. 사람은 죄의 종들인데 문자 그대로 그는 이 종들의 종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30년을 평판도 별로 좋지 않은 나사렛이란 마을에서 무명하게 살았습니다(누가복음 2:39). 그리고 3년 동안 공적인 사역을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29). 눈으로 보아서는 그가 세상의 창조주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영광은 육안에 감쳐져 있었습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았다는 것(베드로전서 2:22) 말고는 우리와 같았습니다. 그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며 벙어리에게 말할 수 있게 하시는 등등 선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병자를 고치시고 절뚝발이를 온전케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제들도 그를 오해했습니다. 그의 이웃들도 그를 비웃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미워하며 괴롭게 했습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적대를 참으셨으며(히브리서 12:3) 선을 베푸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창조한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9:58).

제자들은 휴식을 위하여 그들의 집으로 갔을 때 예수님은 감람산에 가서 밤을 지새며 이슬을 맞으셨습니다(요한복음 7:53, 8:1). 이 때에도 전과 동일한 하나님이셨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셨습니다. 그는 이 험난한 세상을 위해 거룩하고 신성한 하늘나라를 떠나셨습니다. 3년 동안의 그의 공적 사역을 마치실 즈음에 그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없애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그의 제자 유다의 손에 의해 적들에게 팔린바 되었습니다(마태복음 26:14-15). 그에 대한 값은 은 30이었습니다. 구세주를 노예들의 몸값인 은 30에 팔다니 참으로 이상한 거래입니다.
그는 제자인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부인을 당했습니다(마태복음 26:69-75). 썩을 인간이 영광의 주를 부인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부끄러움입니다.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27:2). 무죄한 분이 죄인에게 재판을 받다니 참으로 이상한 재판입니다.
그 후에 그는 로마 군병들에 의해 십 자가에 못박혔습니다(마태복음 27:31).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온전하신 분이 범죄자들이 지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립보서 2:8). 그 죽음은 참으로 부끄러운 죽음이었습니다. 태양과 달과 별들을 제 곳에 두신 분이 슬픈 사람이 되어서 큰 슬픔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이사야 53:3). 고난이 전혀 필요 없던 복된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의 왕이 되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거룩한 분이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완전히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가 받은 고난은 단순히 사람들에 의하여 받은 육체적인 고난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 고통도 정말 혹독한 고통이었습니다만 그의 진정한 고통은 세 시간의 어두움 가운데서 인간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짊어지셨을 때였습니다(누가복음 23:44). 그의 가장 큰 고통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죽을 때, 즉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때였습니다(마태복음 27:46). 온 세상을 지옥에 보낼 무서운 진노가 그에게 쏟아 부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지은 모든 죄, 지금 짓고 있는 모든 죄, 그리고 사람들이 짓게 될 모든 죄가 다 그에게 지워졌고 그는 그 모든 죄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고난의 넓이를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측량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고난은 끝이 없습니다. 그는 선한 목자로 십자가 위에서 잃어버린 양을 구원하기 위해 바다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으셨습니다(요한복음 10:11).

주님께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
건넌 강이 얼마나 길었는지
그 밤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아는 이가 없으리!

십자가 위에서 그는 보화가 묻힌 밭을 사기 위해 자기의 전 재산을 판 사람과 같았습니다(마태복음 13:44). 십자가 위에서 그는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판 장사와 같았습니다(마태복음 13:45-46). 부하신 분이 전혀 쓸모 없는 죄인을 사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존 번연은 "복되신 아들이시여, 당신 자신을 낮추심에 당신의 은혜가 넘치나이다. 은혜가 당신을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게 했고 영광을 버리게 하였으면 가난하게 하였고 멸시를 받게 하셨나이다. 은혜가 당신으로 죄의 짐, 곧 슬픔과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짐을 지게 하였나이다. 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당신의 모든 눈물에 은혜가 넘치고 당신 옆구리의 흐르는 피 속에도 은혜가 넘치나이다. 당신 입에서 나오는 모든 꿀 같은 말씀에도 은혜가 넘치고 두들겨 맞는 채찍 자국과 가시 면류관 그리고 손발에 박힌 못 자국에도 당신의 은혜가 넘치나이다. 여기에 참 은혜가 있습니다. 천사들을 놀라게 만들고 죄인들을 행복하게 만들며 사탄을 경악케 만든 은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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