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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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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90회 작성일13-06-21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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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지상의 소망과 교회의 하늘의 소망을 혼동하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혼란을 가져온다. 이스라엘에 관한 말씀을 교회에 관한 말씀과 혼동하면 틀림없이 예언의 말씀이 확실치 않게 된다.

당신이 영국 역사에 관한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그 강사가 영국과 불란서 역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하겠는가? 그는 여기 저기서 조금씩 인용하여 불란서의 튜이러리(Tuileries)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를 뜻하는 것이라고 애써 고증(考證)하며, 또 필립(Phillip)이 헨리 8세를(Henry 8) 계승했다고 고증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가 진술한 많은 역사의 사실들이 혼동을 가져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두 나라의 왕들과 지역들을 분간하지 못해서 혼돈한 것같이 성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교회의 소망과 운명과 원리들이 구분되지 못하면 혼동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과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예언을 알지 못한 어떤 저자가 예언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유대인이 교회를 뜻하는 것이라고 고증하려고 애쓰며,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 역사에 관한 시기를 마치 교회의 현시기에 관한 것처럼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겠는가?

성경의 어느 부분도 계시록만큼 혼동된 가르침을 가져오는 것은 없을 것이다. 특별히 축복을 밝혀놓은 그 책이 인간들의 환상과 공상으로 말미암아 혼미케 되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계시록은 그 안에 있는 분명한 특징이 깨달아질 때 그것은 전혀 새로운 책이며 그 가치는 매우 크다. 그 경고는 매우 분명하고 중요하여 그 혼동은 사라져버린다. 그 2,3장에 있는 일곱 교회의 역사는 신뢰할만한 증거로써 아주 깊은 관심이 간다. 4,5장에는 하늘에서 면류관을 쓴 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나타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은 땅에 심판이 퍼부어지기 전에 일어나는 일임을 알게 될 때 말할 수 없는 위안이 된다. 6장부터는 교회가 끌어올려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영광 중에 보좌에 앉게 된 후, 땅에서 일어날 일에 관한 계시를 아주 분명하게 해 놓았다. 6장에는 그분의 신원의 날의 무서운 시작이 나타난다.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불의를 사랑하던 자들이 사단의 유혹으로 멸망하게 된다(살후 2장). 7장에서는 이스라엘의 14만 4천에게 넘치는 자비의 인치심의 축복이 있고 또 이것은 각 나라의 셀 수 없는 큰 무리에게까지 미친다. 4장에 있는 교회와 같지는 않지만 그들이 손에 승리의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9,10,11장에는 지상에 거룩한 심판의 우뢰(雨雷)가 무섭게 발한다. 형제들이여, 그때는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복된 자리와는 큰 대조가 되는 어두움이 세상에 나타난다. 12장에서는 교회는 지상에서 볼 수 없으며 용이 유대 백성의 남은 자들을 핍박한다. 13∼18장에는 회복된 로마제국이 가증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참으로 이 모든 것은 4,5장에 있는 바대로 교회가 들림받고 난 후에 지상에 내려질 것이라는 확실한 하나님의 증거이다. 18장은 세상 종교 조직체의 두려운 종말이 그 최후의 참람한 모습대로 나타난다.
이제 19장으로 눈을 돌리면 놀라운 광경이 나타난다.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는 그때까지 밝고 빛나는 하늘 영광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그때는 주께서 지상으로 오시려는 시점이며 교회는 그때까지 진노의 모든 날 동안 주와 함께 있어온 것이다. 계시록 19:11∼21은 주께서 통치하러 오심을 묘사한 것이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 19:15). 우리는 이 사건이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이 구절과 거의 같은 말로 묘사된 바 있는 그리스도의 천년통치를 소개한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에 관한 이스라엘과 세상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알아보기로 하자.

선지자 이사야는 11장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계시록 19:15에 묘사된 그 사건과 함께 시작된다고 하였다.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사 11:4). 이제 우리는 계시록에서 본 바와 같이 교회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일어나는 것으로써, 통치하고 있는 지상이 아니라 통치하러 지상에 오실 때이다.
교회가 지상에서 왕국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왕국을 형성할까? 이에 대한 분명한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사 11:12). 이사야 11장에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라. 이 장에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에 교회는 이미 지상에서 취하여 갔으니 교회에 관한 것이 있을리 없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쫓긴 자와 유다의 이산한 자들이 지상의 그리스도 왕국의 복된 백성이 될 것이다. "열방이 그에게 돌아오리니…"(11:10).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미래 왕국 이스라엘에 관해 묘사된 이 아름다운 장을, 심판자이시며 그들의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되어질 사건으로 알고 읽으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데 만일 우리가 그것을 현 세대나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시키면 큰 혼동을 가져온다.
지금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며 사자가 소와 함께 사는가? 지금 이 구절이 이루어졌는가 말이다. "나의 거룩한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9). 이 구절을 현 세대에 적용시킨다면 그리스도의 명백한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으로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은 세상 끝에는 죄악이 관영하여 그분이 오실 때는 세상이 노아와 롯의 때와 같게 된다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이 구절을 무지(無知)하게 곡해하여 세상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여호와를 알게 되므로 세상이 개혁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 축복된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가장 분명한 것은 주께서 오셔서 이스라엘 왕국을 모으실 때이다. 그 분명한 것을 알게 되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에 관한 예언이 모두 명백해진다. 교회에 말씀하신 서신서의 어느 곳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러 오신다고 하였는가?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는 너무나 확실하고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우리는 어찌하여 주의 천사로 말미암아 하신 이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하겠는가? 이것을 의심할만한 어떤 이유나 또는 이에 대해 다르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 그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야곱의 집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어 그분의 왕국에서 통치하시는 모습에 관한 구절은 없을까? 변화산에서 그분의 변형된 모습이 그 왕국의 그림이 아닌가? 메시야이시며 왕이신 예수님은 아주 영광스러우셨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1,2).
죄와 고통의 6,000년 세월이 다 지나간 후, 땅 위에는 반드시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영광스러운 인자를 바라보는 놀라움이여! 해같이 빛나는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될 천년시대 성도들은 어떠할까? 그분의 영광을 나타낸 이 그림을 보았던 그 몇 사람은 그 왕국을 형성하게 될 다른 부류의 사람들임을 예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지상의 성도들로 대표되고 있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보이거늘…"(마 17:3). 이것은 그와 함께 나타나게 될 두 부류의 하늘 성도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될 성도를 대표하며 모세는 잠자다가 일어날 성도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처럼 거룩한 변화산은 그리스도의 장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낸 매우 복된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홀연히 변화되든지 또는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심을 받든지 간에 하늘 성도들은 다 그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그 큰 환난 동안에 죽음을 당한 충성스러운 성도들도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통치할 것이다(계 20:4).

우리는 이제 기쁨으로 서신서와 계시록 처음과 끝 부분에서 우리에게 하신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반면에 또한 이스라엘과 유대의 모든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하신 성령의 말씀으로 돌아가 살펴보도록 하자. 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하려면 적어도 몇 권의 책이 꾸며져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그 몇가지만 대강 살펴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우선 유대인에 관해 기록된 그 귀한 시편을 펼쳐 보자. 그 서두에는 그리스도의 왕권 통치를 나타내 준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6). 우리는 시온산이 예루살렘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께서 확실히 그 왕국을 세우실 것이며 그 왕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다. 그때에 그 아드님이 구하시는 것은 복음이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열방에서 얻을 영혼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실 열방으로써 땅끝까지 그분의 소유가 될 것이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로다"(시 2:9). 지금 이 은혜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극악한 죄악에 대하여 온유한 자비로 길이 참으시지만 그때에는 그 교만한 대적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지금은 사단의 지배로 악이 승리하지만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의로 다스리심으로 죄는 곧 판단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계시록 19장과 이사야 11장이 정확하게 부합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통치하실 때에 살아있는 악한 백성에게 내릴 그 무서운 심판에 관한 모든 예언이 일치하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기를 원한다.
시편 8,9편은 주께서 시온에서 살 때에 있을 그 왕국의 즐거움을 뚜렷이 나타냈다. 사도는 시편 8편을 그리스도에 관한 것으로 매우 분명하게 히브리서 2:6∼9에서 인용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복종케 될 땅 위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의심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사 가장 귀한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이루실 것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다.
이제는 한 순간이라도 이 지상왕국의 영광이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신 그분과 우리의 연합을 방해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그 지상 성도들도 찬양하는 이 천년왕국의 노래에서 그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시 8:1).
주의 이름을 사랑함으로 멸시받는 자들이여, 그 이름이 온 땅에 기름처럼 흘러넘칠 때 그 지상을 내려다 보는 감회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 나라를 생각해 보면, 한 때는 그분을 무시해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외치던 그들이 그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이 임재하는 피난처에서 영원한 안전을 누리는 것이다. 오오, 황폐한 팔레스틴의 언덕들이여, 누가 능히 너희들의 장래의 복된 장면을 묘사할 수 있을까? "주여 당신의 멸시받는 그 이름이 모든 땅 위에 가장 높이 서게 될 그 날이 속히 이르게 하소서." 그때에는 우리가 말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시리이다"(시 10:16,18). 시편 여러 곳에 그 큰 환난의 때에 남은 자들의 애처로운 외침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 세대에 있는 우리의 주제가 아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 그 왕국이 세워진 때에 모든 열방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미칠까? 시편 22편에서 이 물음에 대한 아주 복된 해답을 얻게 된다. 어떤 개인이나 지금의 교회나 유대인이든지 또는 이후에 있을 세상이든지 간에 우리의 귀하신 주의 죽음과 부활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축복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만일 그분이 죄에 대한 제물이 되지 않으셨다면, 즉 하나님께서 그분을 버리지 않으셨다면 구원받는 죄인이나 축복받는 나라란 도두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구속의 사랑의 놀라운 비밀이다.
"죽으신 어린양이시여! 우리는 모든 것이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편 22편에는 우리의 귀하신 주의 수난의 죽음과 야곱의 자손이 그분에게 영광돌리는 것과 그리고는 열방이 주님 앞에 나아와 경배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그러면 이 시편의 반이 이제까지 십자가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어찌 나머지 부분이 성취되는 것을 의심해야 하겠는가? 이처럼 그리스도의 장차 통치를 밝혀놓은 것보다 더 분명하게 해놓을 수 있을까? 모든 점에서 그분을 배척한 현 세대와는 큰 대조가 된다. 어떤 구절이든지 들어 보라.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지금 겸손한 자들이 배부르고 있는가? 지금은 열방이 모두 그 가혹한 사단의 멍에 아래서 신음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이것은 모든 열방에서 택함받은 교회에 대해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왕국에 관해 기록해 놓은 것이다.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시 24:10).

우리는 지금 경건한 유대인들이, 압박하는 악한 자가 멸망하고 겸손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될 그때를 인내로써 기다리고 있는 것을 묘사한 시편들을 다루고 있다. 그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이 세대의 경건한 그리스도인들도 그 원수의 멸망을 구하거나 또는 기다려야 하는가? 지금은 은혜시대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심판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아주 다른 점이다. 시편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그분의 수욕된 죽음과 멸시를 말씀하신 후에 시편 69편에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의 멸망과 심판을 구하였다. "주의 분노를 저희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로 저희에게 미치게 하소서"(69:24).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빠져들어가는 것은 확실히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생각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돌이키셨다.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그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69:35,36). 이 말씀을 교회에 적용하면 성경을 제멋대로 도착(倒錯)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서신서에서 성령께서 교회에 하신 말씀 중에 우리가 유대의 성읍에 거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한 곳도 없다. 우리의 복된 본향은 위에 있는 하늘 처소이며, 반면에 유대의 회복된 성읍들은 야곱 자손의 복된 본향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의 축복을 자세히 알기를 원한다면 시편 72편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리 하리로다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같이 임하리니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며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 광야의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의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저희가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저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며 성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 그 이름이 영구함이여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홀로 기사를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기사를 행하실 때, 모든 열방은 그분의 영광으로 충만할 것이며 그때에 천사들의 찬송이 울려퍼질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가뭄으로 메마른 땅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은 비할 바가 아니다.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그분의 복된 통치 아래 있을 풍성한 평강이다.
이 귀한 시편의 대부분이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시대에 불려질 경배의 찬송이다. 93편, 94편도 계속되어 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며, 주께서 통치하실 때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은 그 조상들이 그 왕국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제사장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99:6). 이것은 높임받으신 주 예수와 부활한 성도들이 함께 누릴 변화산의 환상에 대한 응답이 아닌가? 이와 부합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믿지 않는 유대인을 말함)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1,12). 이 본문을 교회에다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경멸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본문은 그 왕국 통치에 대한 밝은 빛을 던져준다.
우리에게 펼쳐진 천년왕국의 통치는 놀라운 광경이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빛나는 영광과 위엄 가운데 계신다. 이스라엘은 기쁨과 찬송으로 충만하며, 만방은 시온산으로 경배하려고 올라오며, 평강은 넘치고 그들의 조상들은 영광의 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
우리는 시편에서 유대인의 연발하는 찬양에 대해 경탄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시온의 자녀들이 그들의 왕으로 인해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 노래 소리는 점점 높아져서 마지막에는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끝마친다. 이것이 천년왕국의 기쁨과 예찬이다.
시편에서 말씀하신 것만큼 분명하게 다른 선지자들도 이 모든 것을 예언하였는가? 선지자 이사야서를 살펴보자. 그는 교회에 관한 것을 보았거나 예언하지 않았다. 그의 예언은 이렇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1∼3).

하나님께서 이것은 시온과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이것이 교회에 관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것은 지금 일어날 것이 아닌 그 왕국시대에 일어날 것임을 분명히 가르치셨다. 지금 현 세대에는 예루살렘이 짓밟히게 되어 있다. 만방이 그에게로 모여드는 대신에 그 나라 거민이 만방에 흩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이처럼 거기에는 전쟁이 필요 없음을 알게 된다. 열방의 모든 문제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분께 맡겨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천년왕국에 관한 11장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문자 그대로 그분이 오셔서 악한 자는 판단할 것을 기록해 놓았다. 그 통치의 축복들은 지금 탄식하고 있는 피조물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때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만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과 유다의 이산한 자들이 땅 사방에서 모여들 것이다. 지상의 천년 안식은 아주 영광스럽다. 그날에 그 12장에 있는 노래가 불려질 것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60장에서도 역시 그 구속자가 올 때에 시온의 영광을 그려놓았다. 밤에서 낮으로 바뀌는 변화는 주의 영광이 그 도성에 비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 천년통치에 관해서 깊이 관심있게 묘사한 이 장을 끝까지 읽어보라. 거기에는 아름다움과 영광과 찬송이 넘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 왕국에 적용된다면 현세대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때는 이미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서 떠난 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비밀이 감취어져 있었던 것이다(엡 3장). 이것은 이사야 61장에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 우리의 귀하신 주께서 세상에 계실 때 바로 이 장을 펴서 읽으시고 친히 증거하셨던 것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런데 그분이 그 글의 중간에서 책을 덮으셨으므로 듣는 그들이 이상하게 여기며 그분을 주목했다. 예수님은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글의 나머지 부분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다. 이 신원의 날은 하나님의 은혜시대가 끝나기 전에는 이르지 않는다. 은혜시대와 신원의 날 사이에는 현 세대의 오랜 간격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나 교회시대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시온에 대한 장래의 위로를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62장 끝에는 천년왕국을 다시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황폐한 시온은 놀라운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이상 더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우리의 깊은 관심을 끈다. 우리는 이스라엘 성읍들이 오랫동안 적어도 19세기 동안이나 황폐해 온 것을 알고 있다. 확실히 그 통치시대가 오면 모두 재건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교회나 이방인의 때와는 관련될 수 없다. 예루살렘까지도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는 짓밟힘을 당할 것이다. 확실히 잿더미와 무거운 고통과 애통의 때가 이르렀지만, 더욱 아름다움과 기쁨과 찬양의 때가 이르게 될 것도 확실하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에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 62:3).

우리는 이 예언들이 그리스도 왕국에서 그분의 장래 통치에 관한 말씀이라는 점에서 시온은 그 나라의 시온산을 뜻하며 또 예루살렘은 바로 현재 도성을 뜻하는, 즉 지금까지 짓밟혀온 그 도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예언은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한마디 해야겠다.
나는 다만 그리스도의 장래의 통치를 분명하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해 줄 뿐이다. 우리는 천년왕국의 지극히 큰 기쁨을 묘사한 구절들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강탈한 현재 통치기간 동안 모든 면에서 더해만 가는 비애와 처절함 대신, 그와 같은 놀라운 행복의 전망으로 진정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한 것이다. 더욱 이 모든 축복이 그분의 보좌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성경 말씀은 보장해 주고 있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8,19).

우리는 이 장 끝에 첨가된 천년통치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때에 인간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같이 아주 길 것을 알게 된다. 거기도 역시 죄와 죽음이 있을 것이다.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지금은 악인이 푸른 나무처럼 무성하여도 그때에는 하나님의 저주로 죽을 것이다.
나는 주께서 악한 자에 대한 무서운 심판자로 오실 것을 알고 그 천년시대 동안 땅에 거하게 될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가끔 만난다. 이사야 66장을 살펴보면 이 어려운 문제가 온전히 사라진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궤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육당할 자가 많으리니"(66:15,16). 성경 여러 부분에 기록된 바와 같이 동일한 기록이 여기에 또 있다.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66:18). 이것이 이루어질 방법 역시 기록되었다. "내가 그들 중에 징조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66: 19).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도 거절한 자들은 멸망할 것이나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은 그때에 듣고 구원얻을 것이다. 홍수 심판 때에 몇 사람 안되는 남은 자가 구원얻었으나 곧 지상에 가득 퍼졌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심판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열방에 그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 증거의 성과는 모든 이스라엘 자녀들이 그의 영광된 나라로 오는 것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66:20). 이같이 확실한 구절을 사람들은 왜 교회에 적용할까? 죄인들을 노새에 태워 교회로 데리고 온다는 말인가? 이것은 분명히 그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의 복된 나라로 데리고 온다고 한 말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을 예레미야서와 대조해 보면 동일하고 명백한 증거를 얻게 될 것이다. 그 한 구절만 보아도 족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 5,6). 이것이 장차 있을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의 통치에 관하여 말씀한 것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에 관한 말씀인가? 이 복된 상태는 바로 현재와는 아주 반대되지 않는가? 이 구절이 문자대로 이스라엘에 관한 것임은 추호도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은 그 다음 구절들에서 그들이 만방에서 모이게 되는 것과 그들의 나라에서 거하게 되는 것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에스겔 선지서에도 역시 그 통치 시대에 관한 동일한 약속들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져 있다. 36장에는 비옥함과 축복이 예언되었다. 그 황폐될 것에 대한 예언들이 놀랍게도 이뤄졌다면 어찌하여 우리는 그 축복의 약속이 또한 문자 그대로 이뤄지기를 기대할 수 없을까?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겔 36:35,36).
그리스도의 영광이 하늘에 충만한 것을 생각해 보라. 땅도 에덴 동산같이 이뤄질 것이다. 복된 장래의 매우 행복한 광경이다. 참된 다윗의 통치에 대한 약속들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어 그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할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번성케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 37:26,27).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장래 경륜을 아는 지식, 즉 그 빛이 세계의 정세를 밝히 알게해 주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선지자 다니엘이 서방국가의 극적인 종말을 묘사했는데 에스겔 38,39장은 거대한 북방왕국의 분명한 운명을 보여준다.
매우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 예언이 전해진 후 1900여년 동안이나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그 국가들을 포섭하는 제국들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기록된 바로 그 지역을 러시아가 다 장악했다. 메섹과 두발 왕이란 틀림없이 모스크바와 트볼스크의 옛 명칭이다. 이 이 제국이 페르샤, 이디오피아, 그리고 리비아까지 뻗치며 북방 나라의 거민들이 고멜과 도갈마 족속으로 말미암아 연합군을 형성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한 국가로서 다시 모여들 때 이 큰 무리는 이스라엘 산들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39장은 계시록 19장과 병행하는 것으로서 그 큰 무리가 멸망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에 주께서 그의 옛 백성을 위해 나타나신다. "그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줄 알겠고"(39:22).
에스겔서의 나머지 장들은 여호와의 장래 세워질 성전과 그 예배에 관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장엄한 묘사는 참으로 웅장하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43:2,4,5).
이처럼 에스겔은 우리를 천년통치와 그리스도의 영광이 있는 그분의 지상왕국 예루살렘 성전으로 안내해 준다.

이제는 하나님의 선지자 다니엘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그의 증거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우선 바벨론에서 있었던 유다 사람의 포로 생활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처럼 이방인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이 예언은 이방인의 통치의 끝까지를 기록해 놓았다. 이 통치 기간은 네 제국으로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그 2장에서 보는 큰 신상에 관한 환상은 네 왕국 또는 제국을 뜻한다고 해석되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어느 싯점까지는 문자대로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다. 로마제국이었던 그 네번째 제국은 열 왕 또는 열 왕국을 뜻한다고 해석된 열 발가락이 아직도 기록된 형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제국은 망한 채로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럴 수는 없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계 17:8,11). 이 구절은 정확하게 일어났던 것과 장차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그 로마제국은 마지막 제국이었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제국은 참람하여 무서운 특성을 가지고 다시 나타나게 되며 장래에는 열 왕국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그 마지막 형태에는 또한 특이한 것이 있다. 나뉘어졌으나 섞여 있는 것이다. "철과 진흙이 섞인 것…"(단 2:41). 철과 같은 강력한 충성심이 소위 민주정부라는 진흙과 섞인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확실히 교회가 주를 영접하려 떠나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나 떠나간 후, 곧 마지막 날에 그 무서운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로마제국이 다시 열 왕국을 형성하여 나타날 것은 분명하다. "이 열 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2:44). 뜨인 돌이 신상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듯이 지금 멸시받는 그 돌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록 19장 끝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 왕국을 세우려 오시면서 서방 제국을 쳐서 부서뜨릴 것이다. 그분의 진노의 날에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으랴?
다니엘 7장의 네 짐승에 관한 다니엘의 환상은 그 네 제국의 무서운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무서운 묘사는 지나간 역사가 아닌 장차 있을 그 짐승의 열 뿔 왕국의 상태이다. 이것은 계시록 13장과 17장과 완전히 부합된다. 이 무서운 멸망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교회는 어린양과 함께 위에 있음을 그 책에서 배우게 되므로 신자에게 무한한 위로가 된다. 이 무서운 제국이 사람을 짓밟으며 인치며 죽일 때 인자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우리는 다시 그 제국의 무서운 특성을 보게 된다(7:23∼26). 우리는 이같은 반복되는 말씀을 보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너무나 믿으려고 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것을 반복하였다. 더할 나위없이 분명하게 밝혀놓았는데도 이 세상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 무서운 멸망이 가까왔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곧 오고야 말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단 7:27).
이처럼 다니엘서에 있는 이 예언들은 땅에서 일어날 유대 역사의 사건들을 기록한 계시록의 그 부분 즉 로마제국의 재건, 그 무서운 특성, 그리스도의 재림의 심판, 그리고 천년통치와 정확하게 병행되고 있다.

이제 이 일들에 관한 선지자들의 기록을 읽어 알게 될 것이다.

선지자 요엘은 열국의 군대를 모아 그들을 심판하고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기록해 놓았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3:9∼21 참조).
성령께서는 또한 아모스로 말미암아 말씀하셨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암 9:11). 그리고는 천년시대에 있을 그 땅의 지극한 축복의 풍성함이 묘사되었다.

오바댜는 말했다. "오직 시온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옵 1:7).
미가는 이사야의 환상을 재연(再演)하였으며 천년시대를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미 4:1∼8).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나님은 이것을 그분의 교회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그분의 왕국에 말씀하셨던 것이다.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스바냐는 먼저 일어날 심판의 무서운 기사를 기록하고 다음 뒤따라올 천년시대의 아주 빛나는 광경을 나타낸다. 1:2에서는 진노의 날을 묘사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피하여 남은 유대인들)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그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3:8,9). 다음에는 구출받을 그때까지 핍박받는 불쌍한 남은 자들에 대한 주의 권고하심이 뒤따른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다시 지극한 위로의 말씀이 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8∼20을 읽어보라). 천년시대의 영광과 기쁨을 이 이상 더 좋게 묘사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여 속히 오소서" 하고 외치게 하지 않는가!

유대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거절해 온 그리스도, 그들이 찌른바 그분을 바라볼 때 그들의 놀램은 어떠할까?(슥 12:10) 그들은 사랑에 감격하여 찢어지는 가슴으로 말할 것이다. "`네 두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 13:6). 이스라엘이 그들의 영광스러운 메시야가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는 매우 중요한 순간일 것이다. 그분의 수난의 때와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하시는 그분의 사랑의 말씀을 생각해 보라. 이 사랑에 불타는 말씀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녹일 것이다.

이 동일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이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동일한 보혈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셨다.
스가랴 14장은 주의깊이 공부해야 한다. 우리는 열국이 예루살렘에 모인 것을 보게 된다. 주께서 감람산에 내려와 서신다.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온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14:9). 그분이 통치하시는 동안 그분의 권세는 절대적이며 모든 열국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이것은 현 세대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적용될 수 없다. 또한 그 거짓 교회 즉 이른바 기독교 집단도 이것을 모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교황청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 교회가 주를 영접하여 들림받은 후 유대의 변절자와 그 배도하는 기독교 집단의 동맹이 예루살렘에서 그것을 모방해 보려고 할 것은 있음직하다.
열국이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려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음 14:20,21에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거룩함이 충만한 것을 예언해 놓았다. 6,000년 동안이나 죄에서 흘러나오는 여러가지 형태의 불행이 사라지고 그때에는 넘치는 평강과 거룩한 축복이 무한할 것이다.
이제 계시록 20장으로 돌아가보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이 천년시대 동안은 사람을 시험하던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 속에 던지우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계시록에서 현 세대의 마지막 장면을 전개할 범위는 아주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19장의 마지막 구절에 있는 로마제국의 종말을 주시해 보라.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으며 불못이 어디 있느냐고 할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불못은 바로 우리 발 아래 지구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학식 있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이 지구는 불덩어리라고 알고 있다. 우리는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나님께서 이 땅으로 입을 열게 하여 고라와 그의 권속을 산채로 삼켜버리게 하셨는데 어찌 이 악한 자들의 자손들을 즉각 산채로 불구덩이에 삼켜버리게 하실 수 없으랴?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다면 그분의 무서운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 해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계속되는 것은 누구도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까닭인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뜻밖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다. 사람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갑자기 멸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이 땅을 흔드실 때에 누가 감히 설 수 있으랴? 이처럼 인간의 죄악과 교만의 현 세대가 막이 내리고, 사단은 천년동안 결박되고, 첫째 부활이 완결되고, 그들이 살아서 주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리게 된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행 3:21).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이 천년동안에 이 지상에 약속된 모든 축복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 6:1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더라"(계 20:5,6).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통치 동안에는 교회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까닭은 교회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이 지상 왕국의 백성으로 참여하지 않고 그 왕의 하늘 백성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현 세대에 구원얻는 자는 모두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몸으로 형성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틀림없이 교회 이전과 이후에 구속받은 자들, 대환난 때에 짐승의 인 맞기를 거절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까지라도 모두 살아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하늘 영광에서 그 신부는 특별히 구별된 위치에 있는 것이다(계 5:9). 계시록 5:11에 보면 천사들이 그들을 둘러 있다. 그리고 계시록 19:1∼9에는 그 영광받는 신부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받은 무리에게서 기이한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와 지상 축복의 끝에는 대단히 수치스러운 것을 보게 되는데, 사단이 잠시 동안 놓임으로 인간이 예전처럼 그에게 유혹받아 하나님께 반역한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생각만해도 무섭다! 거기에 들어가게 될 사람 중에는 지금 이 세상에서 유명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죽지 않을 몸처럼 생각하지만 산채로 불못에 던저져 거기서 그리스도의 지상통치 기간인 복된 천년동안 고통 가운데 남게 된다.v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천년이 끝난 후에 죽은 자의 심판이 시작된다. 이것은 마태복음 25장에 있던 지상 백성의 심판이 아니다. 죽은 자의 심판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리니…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2,15).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까? 그분이 말씀하셨으니 이를 행치 않으시랴? 인간은 이 심각하고도 참된 경고를 비웃을지 모른다. 사단은 당신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 선언들을 참으로 받기를 바란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면 당신은 반드시 불못에 던지우게 되어 거기서 영원토록 고통받게 된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이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그리스도께 이끌려 나온 자는 얼마나 복이 있는가! 주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확신하는 자는 가장 복된 자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거나 누리는 자는 극히 드물다. 심판에 관한 혼동, 교파주의, 그리고 그 왕국에 관한 혼동은 가장 분명한 복음의 구절들을 혼동하는데서 온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가 죄인으로서 심판자리에 설 수 없다는 강의를 마치자 한 그리스도인 자매가 내게 와서 떨면서 "성경에는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다. 틀림없이 이 구절을 읽는 많은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즉 그 대속자이신 주께로부터 모든 죄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 다시 말해서 이 그리스도인 자매 같은 분이 아직까지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 말씀이 다른 뜻이라는 것을 그 자매에게 지적해 주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 36). 이것은 분명히 입장(立場)이 다른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주께서 이 자매에게 거기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보게 하셨다. 즉 은혜를 거절한 자들은 심판날에 이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되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었으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이다. 독자도 확신해야 할 바 그리스도께서 독자의 죄를 가져 가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신다는 그 증거의 실재성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히 10장).

형제들이여, 우리가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 후에 하나님의 크신 심판이 설정된, 그 천년동안 살지 못한 나머지 죽은 자들이 서야 할 그 자리에 우리가 어찌하여 서야 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 문제는 단번에 십자가로 해결된 것이다. 우리 중 어느 누가 만일 죄 때문에 다시 정죄받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보증이 되신 그리스도일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분은 다시 죽으실 수 없다. 그분은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신 것이다. 의롭다고 선언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심판이나 정죄함이 있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로마서 5장, 6장, 7장, 8장에 잘 증거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는 말씀 때문에 괴로워 한다. 과연 그럴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의 구속함을 받은 자답게 행치 못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괴로워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행위가 선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주께서는 소돔성의 롯의 재물과 같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된, 모두 태워질 것이라고 선언될 때 크게 놀랄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을 것이다(고전 3:15).

한가지 더 생각해 보자. 우리의 찬양받으실 주께서는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전혀 자신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으셨다. 신자가 이점에 대하여 주께 합당한지?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지? 그분은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다. 나는 죄를 영원히 용서받은 신자이다. 그렇다면 내 생활은 주께 용납받을 만한가? 심판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분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인가? 사랑하는 자여, 이것을 생각해 보라. 항상 이렇게 자문해 보라. "주께서 이것을 보시고 잘했다고 하실까? 사람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지만 그리스도의 눈에 합당한 것인가?"
때때로 우리는 이기주의, 세속적인 명성,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등 그리스도의 길과는 반대 행동을 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보게 된다. 이것은 주님의 귀한 것을 품고 살지 않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자녀간의 공감의 결핍보다 더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그런 것이 있었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 2:21). 우리가 옛 창조 위에 부(富)나 명성 등 어떤 것을 세우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모두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새 창조에 세우는 것만이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사복음서에서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음은 서신서에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분의 진노의 큰 날 동안에 있을 열방의 심판과 그리고 그분의 지상왕국 설립에 관하여 그분이 그의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어떤 인간 이론에 합당하게 하려고 성경말씀을 교묘하게 이용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깨달은 대로 성경말씀을 인용하였다.

다시 한번 전체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주께서 이 은혜시대 동안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에게 연합된 모든 신자들, 즉 그분의 몸인 신부를 공중에서 영접하기 위해 어느 순간 끌어 올릴 것이다. 이것은 언젠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로마제국이 한 무서운 왕의 지배 아래 열 왕국들로 형성되어 재건된다. 유대인들은 불법의 사람의 지배 아래 큰 죄악 가운데 팔레스틴에 모이게 된다. 그 큰 환난의 때에 성전에는 우상숭배와 가증한 것이 서게 된다. 교회는 이 진노의 날 동안 주와 함께 거한다. 그리고 주께서 불꽃 중에 임하여 순종치 않는 열방에 형벌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축복된 천년왕국의 통치가 있고, 후에 나머지 죽은 자의 심판이 있다. 그때에 옛 창조는 다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난다. 영원계에 이른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의 순차는 어떤 성경말씀 한 구절을 해석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말씀의 단순한 가르침과 조화(調和)로 되어진 것이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교회의 휴거는 아무 징조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글을 다 읽기 전에 끌어 올리울지도 모른다. 참으로 이 세상 모습은 "때가 가까우니라"고 말하게끔 되어 있다. 심판의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지나면 왕께서 의로 다스리는 때가 온다. 그러나 들으라. 자비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일깨움을 받은 죄인이여, 기억하고 있는가? 당신의 귀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도록 열려 있는가? 목마름을 느끼는가? 수가성 우물가의 그 불쌍한 여인에게 값없이 주었던 생수가 바로 당신 앞에 흐른다. 그녀는 그것을 받을 아무런 공로도 없었으며 그때까지 잃어버린 죄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로 말미암아 그녀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오셨던 찬양받으실 그분 앞으로 영접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선포되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그러나 이것을 멸시하는 자들이여, 당신들이 내일에는 멸망당할지도 모른다. 교회가 들려 올라가고 전도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오랫동안 복음의 소리를 들어온 그들의 당황함은 어떠하랴?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한 베드로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죄악은 더해가고 많은 사람의 사랑은 식어가고 있다. 어떤 자는 조롱하며 말한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고통스러운 때가 이르렀다. 온통 이기주의이며 세속적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그분의 자녀들을 속히 모으고 있다. 어떤 자들은 우리가 처한 세상의 심각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큰 사건들이 가까이 와 있다. 세상은 스스로 황폐할 멸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죄 용서함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은 하늘로부터 주의 나타나심을 기다린다고 할 수 있는가? 오늘이라도 주께서 오셔서 당신을 데려가신다면 부끄럼 당할 일은 없는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진정 당신 마음의 외침인가? 당신의 마음은 무엇인가 얻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 오늘 당신을 부르러 오신다면 그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찬양받으실 주여, 오시옵소서. 이 탄식하는 세상이 당신의 평화로운 다스림을 고대합니다. 당신의 것인 우리도 역시 탄식합니다. 속히 오시옵소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 당신의 얼굴 뵈옵기를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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