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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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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07회 작성일13-06-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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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거듭나야 하겠다"(7)

작성자:알프레드 P. 깁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거듭나는 역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두 번째 요소로 말씀하신 성령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의 성령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우리는 성령님에 대해 상고해 봄에 있어서 두 가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성령님의 인격성, 그리고 두 번째로는 신자와 불신자에 대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1) 성령님의 인격성
성경에 계시된 성령님은 영원한 신성(神性)을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인 성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3위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서는 세 분 하나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세 인격을 가지시되, 각각 독특한 인격성을 가지고, 각자 신성을 가지며, 서로에 대해 동등한 분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강론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어떤 사람들이 성령님을 가리켜 "그것(it)"이라고 지칭되는 단순한 "영향력" 혹은 어떤 "원동력"이 아니라, 신성을 가지신 인격체로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그분의 절대적인 신성의 본질에 있어서 변함이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님의 인격성과 사역에 대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만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가시기 직전에, 주님은 자기 제자들을 그분 곁에 모으셔서 성령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주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후에 보내실 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주의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7-14).

우리 주님의 이러한 말씀들은 성령님이 인격체이시며, 또한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세상에 오시는 것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데 충분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오순절에 세상에 임하신 것입니다(행 1:8, 2:1-4).

(2) 성령님의 사역
(a) 죄를 책망하심
우리는 성령님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구절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우선적으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직시하도록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그후에 자신의 영적인 필요를 보도록 해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어 의지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가 없다면, 죄에 대한 참된 각성과 회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마치 쟁기질과 같아서, 인간 마음 밭에 깊은 도랑을 내어, 그 속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죄인들의 교만과 자기 의와 자기 자랑과 같은 단단한 흙덩이들을 깨뜨리고, 그리고 나서 거듭나는 역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좋은 씨를 받아들이도록 예비시키는 것입니다(벧전 1:23, 눅 8:4-15을 비교해보시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께서도 자신이 죄인된 것에 대해 일깨움을 받고, 깊이 각성되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잃어버린바 된 상태에 대해 참된 지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다음에 필요한 일은 바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신, 복된 성령님의 역사로 되는 일로서, 이 성령님은 죄인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상처를 가진 영혼들을 치료해 주시는 성령님께 얼마나 감사를 올려야 할까요!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는데, 이는 곧 죄를 없이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절망적인 상태를 보도록 도우시는데, 이는 곧 자신의 거듭나게 하시는 권능을 통해 그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죄인된 영혼의 마음이 편치 못하도록 역사하시는데, 이는 곧 우리로 하여금 안식을 주시는 분 안에서 편히 쉼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죄악됨을 보여주시는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죄사함의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참혹한 질병에 걸려 있음을 보여주시는데, 이는 우리로 위대한 의사이신 주님을 알도록 하시고, 그 질병을 치료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상태가 참으로 비참하고 불안한 가운데 있음을 알게 하시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과 평강을 맛보도록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b) 그리스도를 계시하심
성령님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능력 아래서, 죄인은 자신이 죄악되고, 소망이 없으며, 지옥가기에 합당한 죄인인 것을 스스로 보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후에야 성령님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사용하셔서, 곧 이 복음을 가능케 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깨닫고 믿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처럼 각성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의 가치를 깨닫도록 하시며, 자신이 스스로 구원받고자 애쓰던 자기 노력에서 돌이켜, 자신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아들께로 향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죄인이 자신의 노력이 끝나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애쓰며, 자신의 체면을 세우고자 헛되이 분투함으로써, 성령님을 거슬려 왔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사람의 영혼은 자신에 대해서는 잊고, 오직 그리스도 우리 주님과 우리의 구속을 위해 이루신 그분의 완성된 사역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마침내 죄인이 자신에 대해서 끝점에 이르게 되었을 때, 자신은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은 다만 전적으로 잃어버려진바 된 자임을 분명하게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성경으로부터 몇 가지 말씀, 곧 영혼을 구원하는 진리를 계시하고 있는 구원 얻을 말씀(행 11:14 참조), 즉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이미 이루셨으며, 죄인된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구절들을 사용해서, 단순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의 이루신 사역에 의지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c) 신자 속에 내주하심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죄인이 구주를 믿는 순간, 성령님이 그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거하시며, 그를 영원히 그리스도의 소유로 인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님은 신자에게 새로운 생명과 신의 성품을 주심으로써, 신자가 된 그는 이제부터 영적인 것들을 맛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주와 구주되신 우리 주 예수님을 기쁘게 섬기는 사람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내주는 어떤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음을 갖게 된 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님이 자기 속에 들어오시고, 자기 속에 거하시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자신을 이끄신 분이 성령님이라는 것도 알지 못할 수가 있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임재에 대한 증거는 때가 되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드러나게 됩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죄인의 죄에 대한 각성과 거듭나게 하는 역사에 있어서 성령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은 이에 참고할 만한 구절들입니다. 에베소서 1:13-14, 4:30, 로마서 8:9, 고린도전서 2:9-16, 3:16, 6:19-20, 갈라디아서 5:22-26, 에베소서 5:18-20 등등.

(d) 한 가지 비극적인 가능성
한 가지 경고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죄인이 성령님의 죄를 깨닫게 하는 역사를 거절하고, 거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며, 참으로 이처럼 무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원한 멸망에 대해 승인하고 서명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거나,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도록 강제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고의적으로 거절하는 이스라엘의 장로들 앞에 선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7:51)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이 말이 얼마나 참된 것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두렵기만 합니다. 이것이 독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도록 당신을 인도하신다면, 성령님의 그러한 역사를 거절하거나, 멸시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강퍅해지고, 당신은 구원받지 못한채 죽게 될지도 모르며, 당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로 거룩한 하나님의 공의롭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분들의 마음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히 4:7).

(e) 성령님의 역사를 바람으로 묘사하신 그리스도의 설명
간략하게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 친히 설명하신 부분을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 같습니다. 거듭남의 필요성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길,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여기서 우리 주님은 성령님의 역사를 바람의 움직임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바람으로 설명한 것은 이곳이 처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스겔 37:1-14에 보면 우리는 이와 유사한 표현을 보게 됩니다. 여기 에스겔이 본 비유적인 환상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큰 골짜기 가운데 죽은 사람들의 뼈들로 가득 쌓인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을 좇아 이 뼈들을 향해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일은 큰 진동을 일으켰고, 각 뼈들이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기(생명)는 없었습니다. 또다시 하나님의 명을 따라 에스겔은 생기(바람)를 향해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에스겔이 그렇게 하자, 생명이 이 뼈들에게 들어가자 소생케 되었고,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사망과 썩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생기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 일이 바람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 바람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바람은 우리의 통제력 범위 밖에 있습니다. 바람은 임의로 붑니다. 성령님은 그분의 행하심에 있어서 주권적이시며, 독립적이시기 때문에, 그 원하시는 대로 역사하십니다. 두 번째, 바람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은 보고 느낄 수 있지만, 바람 자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볼 수는 없지만, 이제 그 속에 내주하시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난 성령님이 역사하신 그 증거들은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바람은 다양한 힘과 에너지를 동반해서 붑니다. 때때로 큰 회오리를 동반한 바람은 이전에 요지부동할 것 같은 것들조차 휩쓸고 가버립니다. 어떤 경우에 거의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미풍으로 불기도 합니다. 어떤 죄인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성령님의 강력한 죄를 깨닫게 하는 회개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이에 대한 사례를 사도행전 16:15,29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루디아에게 있어서 거듭나는 경험은 잔잔히 임했습니다. 반면 빌립보 간수에게 있어서는 그를 일깨우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율할 정도의 큰 지진이 필요했으며, 마침내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떨며 외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이 역사하는 정도는 경우마다 다를 수가 있지만, 그 궁극적인 결과는 동일한 것입니다. 곧 죄인들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성령님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님은 (a) 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잃어버린바 된 상태를 깨닫도록 능력으로 각성시키신다. (b) 죄를 깨닫게 된 죄인으로 하여금 자기 힘과 노력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일을 그치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위한 십자가의 사역을 믿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하신다. (c)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의지하는 순간, 신자 속에 내주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소유로 영원히 인치기 위해 임하신다. (d)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신자에게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본성을 주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영적인 실제를 이해하고 누리도록 하신다.

(f) 성령님이 신자 속에 내주하심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들
이러한 성령님의 내주하심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되어 집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도록 하시며,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성령님은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깨닫도록 하시며, 그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능력을 더해주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뿐 아니라 행위로,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며, 자기 영혼을 만족케 해준 은혜를 증거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더군다나 성령님은 각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하도록 하심으로써,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며, 이를 통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벧후 3:18)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을 떠나서는 이러한 모든 축복들을 받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 오직 그분만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 혹은 대표자이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성령님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내주하시고, 능력을 주심으로써만이 이 거듭나는 역사가 각 사람의 실제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거듭나는 역사에 있어서 성령님의 절대 필요성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도, 강조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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