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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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748회 작성일13-06-21 02:37본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어느 이름 있는 전도자는 최근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잘못된 신학이 치명적인 안개처럼 우리 위에 자리잡았습니다. 그 가르침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임이 없이 구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연관지어 요한이 구원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정의를 내렸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과 연관지어 요한이 구원의 믿음에 대하여 어떻게 정의를 내렸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1∼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자기 소유(우리 말 성경의 본문에는 "자기 땅"으로 나와 있으나 각주에는 "자기 소유"로 나와 있음)에 오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분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와 그 모든 영광도 그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 정하신 만유의 왕이자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약에 의해 자기 백성이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오셔서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왕으로 나타내심으로써 그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이 육신적으로 예상했던 것과 같은 왕은 아니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정치적인 구원, 흑은 경제적인 구원을 제시하지 않으시고 죄로부터의 구원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처럼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반응은 그분이 역사적인 비유 중의 하나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였습니다(눅 19:14).
그들은 그분을 자신의 주님과 왕으로 영접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영접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요한이 말한 바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란 표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자기 소유(우리 말 성경의 본문에는 "자기 땅"으로 나와 있으나 각주에는 "자기 소유"로 나와 있음)에 오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분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와 그 모든 영광도 그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 정하신 만유의 왕이자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약에 의해 자기 백성이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오셔서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왕으로 나타내심으로써 그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이 육신적으로 예상했던 것과 같은 왕은 아니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정치적인 구원, 흑은 경제적인 구원을 제시하지 않으시고 죄로부터의 구원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처럼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반응은 그분이 역사적인 비유 중의 하나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였습니다(눅 19:14).
그들은 그분을 자신의 주님과 왕으로 영접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자신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영접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요한이 말한 바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이란 표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역시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배권을 그분에게 넘겨드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바로 이와같은 사람들에게 그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이 권세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께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 그 "잘못된 신학"이 생겨났는지, 어떻게 우리가 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고서도 구주로서만 영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신학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잘못된 신학"은 참으로 "치명적인 안개처럼 우리 위에 자리잡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적인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주님의 종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호오톤 형제님,,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확신합니다".(이 말은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에 애해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얼마 전에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 그 "잘못된 신학"이 생겨났는지, 어떻게 우리가 주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고서도 구주로서만 영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신학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잘못된 신학"은 참으로 "치명적인 안개처럼 우리 위에 자리잡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적인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주님의 종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호오톤 형제님,,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확신합니다".(이 말은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에 애해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저는 얼마 전에 그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구주가 먼저이고 주님은 그 나중에(여러분이 그렇게 원할 때)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제시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주 예수님의 모습 전부를 영접하라고 요구하지, 그분의 일부나 혹은, 그분의 직책 중 오직 한 가지 안에서만 그분을 영접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나뉘어질 수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을 그렇게 영접할 때에만(그분의 전부를 영접할 때에만) 우리는 참으로 "그 이름", 곧 우리가 빌립보서 2장에서 볼 수 있는 대로 다른 모든 이름, 혹은 권세 위에 뛰어난 이름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너의 삶의 지배권을 넘겨 주라"는 주님의 요구에 화를 내거나, 혹은 그 요구를 회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사소한 변덕에 적응하려고 자신의 요구를 결코 완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그분이 규칙을 제정하십니다.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는 우리들은 항상 그분을 구주로서 뿐만 아니라 주님으로서도 시인하고 전과해야 합니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에 합당치도 않으며,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합니다(빌 2:1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너의 삶의 지배권을 넘겨 주라"는 주님의 요구에 화를 내거나, 혹은 그 요구를 회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사소한 변덕에 적응하려고 자신의 요구를 결코 완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그분이 규칙을 제정하십니다.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는 우리들은 항상 그분을 구주로서 뿐만 아니라 주님으로서도 시인하고 전과해야 합니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에 합당치도 않으며,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합니다(빌 2:11).
마지막으로 한 가치 더 고려해 보고 싶은 문제는 "그리스도를 구주로만 영접한 사람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않았을까?"하는 것입니다(즉, 그리스도를 구주로만 영접한 사람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더러 있지 않겠느냐는 뜻 - 역자 주). 물론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때, 그분을 영접하는 것에 수반되는 모든 사항을 깨닫지는 못했으면서도 그분에게 참으로 순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 가운데 이와 같이 참된 의탁이 있었기에 이것은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분이 역사하신 결과로 나타나는 변화에 의해 증명되기 마련입니다. 그분을 이와 같이 영접한 사람들 모두가 그와 같은 구원의 증거를 나타내 보인다면 구원받은 우리 모두에게도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며,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의 증거를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는 사랑들의 삶 가운데서 그것을 너무나 많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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