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호수 주변 3. 갈릴리 호수(Sea of 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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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955회 작성일15-12-18 13:43본문
호수 표면이 해수면보다 209m가량 낮다. 호수 둘레는 51.2km, 남북 길이 약 21km, 동서 폭은 약 11km, 평균 수심은 20-40m, 최고 수심이 48m되는 담호수로써 성경시대에는 더 넓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40%가 이 물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가장 중요한 수원이다.
이곳은 구약에는 긴네렛 바다(민 34:11, 수 12:3, 수 13:27), 신약에는 갈릴리 해변(마 4:18), 게네사렛 호수(눅 5:1),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요 6:1) 등으로 불리워 졌다. 특히 긴네렛은 하프와 비슷한 악기인 긴노르(kinnor)에서 유래되었고, 바다의 모양이 하프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북쪽을 중심으로 주로 활동하셨다. 이 곳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고(마 4:18-22), 나병환자를 고치셨으며(마 8:1-4), 베드로의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셨고(막 3:7-12), 풍랑을 잠잠케 했으며(마 8:23-27), 물위로 걸으셨고(마 14:22-23, 막6:48), 많은 병자를 치유하셨고(마 15:29-31), 부활 후 일부 제자와 만나 자신을 나타내셨다(요21).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서 행한 24회 이적가운데 18회가 이곳에서 행하셨다. 예수님의 제자중 6명(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마태)이 갈릴리 출신이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호수는 사람들이 주로 고기잡이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약 20여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성경시대, 로마에 대항해 5번 봉기가 일어났는데 항상 선봉에 섰던 지역이 이곳 갈릴리 지역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이방인 갈릴리이다. BC 732년 디글랏 3세에 의해 갈릴리는 앗시리아에 속주가 되어 이방화 되었다. BC 103년 마케비 왕조에 의해 다시 정복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와서 정착하면서 이방인의 도시에서 유대인의 도시로 만들어 졌다. 이때 정착한 유대인들은 민족주의, 유대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갈릴리는 열심당원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갈릴리는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변방이었다. “멸시를 당하던 스블론과 납달리 땅”(사 9:1)이었으며, 신약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요 7:49)로 규정했고,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요 7:52)고 하였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사람’(막 14:70)으로 불리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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