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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편

성서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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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현재, 국토(면적:779,452㎢, 남한의 약 8배)의 97%가 아나톨리아 반도로 아시아권에 속해 있고 3%는 유럽 대륙의 동남부 트라키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다는 이유로 유럽에서는 동양처럼, 동양에서는 유럽처럼 인식되기도 하며 선진국의 유럽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인구 밀도는 현재 이스탄불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앙카라(현재, 수도), 그 다음이 이즈밀(서버나) 순으로 거주하고 있다. 기후는 전체적으로 내륙은 대륙성 기후로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해안지방은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1차전도여행지외 터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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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027회 작성일15-12-2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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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터키는 로마시대와 기독교 문화를 거쳐 오스만 투르크와 이슬람의 문화를 지낸 곳으로 국토 곳곳의 수많은 역사 유적지로 유명하다. 한때는 초대교회 부흥의 전초기지가 되었지만, 지금은 이슬람교인이 98%라 이른다. 주민등록에 종료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터키인들은 성지순례를 사우디 메카로 떠난다. 땅의 주인이 누구이냐에 따라 종교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BC 7C 중엽에는 그리스에 의해 정복당해 당시에는 비잔틴이라 불리웠고, BC 5C초에는 페르시아에 점령 당했다가 그 후 로마의 지배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AC 312년에는 콘스탄틴 황제 통치아래에서 기독교의 공인과 더불어 기독교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AD 4C 중반에는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동로마를 함락시킴으로써 비잔틴시대가 끝나고 이슬람교의 중심지로 바뀌게 되었다. AD 19C 후반에는 발칸 문제로 서구 열강들의 침입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 또 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 편을 들다가 대패하게 된다.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연합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AD 1923년에 앙카라를 수도로 정하고 터키공화국으로 건국하게 되었다. 이 때까지 약 1600년동안 120여명의 로마, 비잔틴, 오스만투르크의 황제들이 통치를 했다고 역사는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가는 곳곳 마다 이슬람사원을 알리는 탑이 있는 높은 모스크 사원이 곳곳마다 있다. 그 모습은 아마도 초대교회때는 유대인 회당을 연상케 한다. 구시가지 주변 건물은 모스크 탑보다 낮다. 이들은 하루 5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한다. 기도 시간이 되면 스피커를 통해 아 ~~~~ , 시끄러운 소리를 냄으로 기도시간을 알린다. 터키인들은 먼저 모스크 사원을 지워놓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여 산다고 한다.

터키의 시골 풍경은 우리나라와 비슷한다. 갈탄을 연료로 사용해서인지 공기는 안 좋다. 산은 주로 풀이나 낮은 나무로 되어 있다. 돌도 많고 비가 잘 오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산맥이 많다. 나무는 올리부(감람)나무가 많고 그 다음으로 포도나무가 많다. 터키는 약 100년마다 지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의 유적은 1-2세기 경에 거의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현재는 초대교회 당시의 유적은 거의 없다. 현재의 모습은 6세기 이후 세워진 기념교회의 모습이고, 그것도 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아래 무슬림 문화로 덧칠하였다.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은 사도행전의 369게임과 같다. 1차는 13장, 2차는 16장, 3차는 19장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전도 전략은 대도시를 거점으로 하여, 각 지방으로 확장해 나갔다. 현재로 말하면 이스탄불을 본부를 두고 지방으로 확장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바울은 먼저 유대인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유대인이 거절할 시 그 다음에 이방인 마을로 갔다. 단순히 한번 전도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교회를 세웠다. 전도해서 얻은 열매를 양육하고 그 중에서 충성된 성도를 일꾼들(장로, 집사)로 세우고, 그 일꾼들이 세워진 지역교회를 돌보고 섬기게 하였다. 특히 제자 양육을 통한 배가사역에 힘썼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에게,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만들었다(딤후2:2). 결코 혼자 하지 않고 동역자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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