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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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47회 작성일22-08-26 10:40본문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1-14)
이사를 많이도 다녔지만, 최고의 이사는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의 이사”라는 사실을 골로새서를 펼쳐 들고서야 깨닫게 된다. 그 대전환점이 되는 이사로 인해 고난마저 기쁨과 의미를 지니게 되고 감사 제목이 된다고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나누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고난은 불과 몇 달 전이고 여전히 난 그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아마도 “반 마취 상태”와 중환자실에서의 “고립감”과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며 끝없이 생각하다가 어느샌가 꿈으로 이어지고 망상이 뒤섞이며 가느다란 실을 붙잡듯 “하나님”을 외치던 병상의 기억!
그 속에서 나를 붙든 것은 다름 아닌 “그동안 묵상했던 말씀”이었다. 예레미야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품과 서서히 회복되는 그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성경책을 읽지 못했지만, 머릿속으로 에스더도 만나고 다윗도 만나며 상상과 현실이 오고 가는 그 시간이 오히려 유익이 되었다. 그렇다고 또 겪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수술 후 처음으로 샤워하면서 몸에 가득한 상처를 보며 “나 학대받은 것 같아” 하며 서러워서 울었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뜨겁게 울었다. 마치 구원받은 날처럼…….
그 후에도 환경의 개선은 미비했지만, 영은 조금씩 소생되고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 존귀한 주의 자녀임을 믿게 되었다. 밤마다 흐느끼며 감사와 회개를 오가며 “기쁜데,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연출하다 잠이 들었다. 꿈은 여전히 복잡스러웠지만, 하나님이 내 편이셨고, 불안해지면 난 성경 묵상을 떠올리고 되새김질하며 기도했다.
이런 신세 한탄을 갑자기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말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 당시에는 말할 수 없이 힘들었고 말하면서 그 기억들로 다시 힘들었다. 골로새서 1장 10절에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어금니가 닳도록 꾹 눌러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기쁨으로 견딘다는 것이다. 기쁘면 그 기간이 길어도 참을 만하다. 동행하는 사람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분이라면 긴 대기시간이나 주사의 고통은 견딜 만하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듯하나, 큰 시험의 골짜기는 하나 넘은 것 같아서 감사하다. 내 힘으로 넘었겠는가? 다 손잡고 이끄신 주의 은혜이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찬391)
(2022. 8. 26. 조수현)
이사를 많이도 다녔지만, 최고의 이사는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의 이사”라는 사실을 골로새서를 펼쳐 들고서야 깨닫게 된다. 그 대전환점이 되는 이사로 인해 고난마저 기쁨과 의미를 지니게 되고 감사 제목이 된다고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나누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고난은 불과 몇 달 전이고 여전히 난 그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아마도 “반 마취 상태”와 중환자실에서의 “고립감”과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며 끝없이 생각하다가 어느샌가 꿈으로 이어지고 망상이 뒤섞이며 가느다란 실을 붙잡듯 “하나님”을 외치던 병상의 기억!
그 속에서 나를 붙든 것은 다름 아닌 “그동안 묵상했던 말씀”이었다. 예레미야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품과 서서히 회복되는 그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성경책을 읽지 못했지만, 머릿속으로 에스더도 만나고 다윗도 만나며 상상과 현실이 오고 가는 그 시간이 오히려 유익이 되었다. 그렇다고 또 겪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수술 후 처음으로 샤워하면서 몸에 가득한 상처를 보며 “나 학대받은 것 같아” 하며 서러워서 울었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뜨겁게 울었다. 마치 구원받은 날처럼…….
그 후에도 환경의 개선은 미비했지만, 영은 조금씩 소생되고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 존귀한 주의 자녀임을 믿게 되었다. 밤마다 흐느끼며 감사와 회개를 오가며 “기쁜데,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연출하다 잠이 들었다. 꿈은 여전히 복잡스러웠지만, 하나님이 내 편이셨고, 불안해지면 난 성경 묵상을 떠올리고 되새김질하며 기도했다.
이런 신세 한탄을 갑자기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말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 당시에는 말할 수 없이 힘들었고 말하면서 그 기억들로 다시 힘들었다. 골로새서 1장 10절에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어금니가 닳도록 꾹 눌러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기쁨으로 견딘다는 것이다. 기쁘면 그 기간이 길어도 참을 만하다. 동행하는 사람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분이라면 긴 대기시간이나 주사의 고통은 견딜 만하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듯하나, 큰 시험의 골짜기는 하나 넘은 것 같아서 감사하다. 내 힘으로 넘었겠는가? 다 손잡고 이끄신 주의 은혜이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찬391)
(2022. 8. 26. 조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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