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신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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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606회 작성일13-06-22 01:52본문
II. 야곱에게 비전을 보여 주신 하나님(28:1-22)
간교한 동생에게 모든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분노와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그는 야곱을 미워하여 아우를 죽고자 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형의 노가 풀릴 때까 지 외갓집에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망령된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던 불신앙 을 회개하고, 야곱을 보호하고 축복하여 보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이삭은 야곱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 것과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할 것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이삭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고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야곱은 이제 혈혈단신으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가야하는 나그네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이 좋은 가문에서 헌신적이 어머니 사랑에 파묻혀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의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원수에게 쫓기는 도피자처럼 정처없는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첫째, 야곱에게 비전을 보여 주신 하나님 (10-15)
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받고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니 해가지고 날이 어두워졌습니다.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90 Km로서 아마 이틀이나 사흘은 걸렸을 것입니다. 야곱은 거기서 유숙하려고 한 돌을 취하여 베개를 하고 누워서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야곱은 캄캄한 밤에 돌베개를 베고, 사막의 찬 공기를 이불로 삼아 누워있는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간교하고 이기적인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자기 하나 때문에 온 가정이 파탄이 일어나고, 형 에서를 분노하게 하고,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겨 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분노한 형 에서가 뒤쫓아 와서 어둠속에서 자기를 찔러 죽일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때 너무나 불안했습니다. 자신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하란에서 과연 외삼촌 집을 찾을 수 있을는지, 과연 라반의 딸과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과연 고향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는지 모든 것이 불안했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하니 어머니의 사랑이 한없이 그리워졌습니다. 야곱은 육신의 피곤과 외로움, 내면에 파고드는 슬픔과 절망, 형을 속인 죄의식에 괴로워하며 한없이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서 있었습니다. 그 사닥다리는 땅과 하늘을 이어 주는 사다리였습니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마치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사다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유심히 그 사닥다리를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사닥다리(Sullam)라는 말은 악카드어의 동계어로서 하늘과 지하세계를 이어 그곳으로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늘의 계단(staairway of heaven)을 묘사하는 말로서 성경에 유일하게 사용된 단어이다. 요한복음 1:51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닥다리로 비유하셨다. 그래서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고래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지적되어 왔다. 예수님은 유일한 길이시요(요 14:6),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시다(딤전 2:5). 힘 있는 천사들의 무한한 사역과 모든 활동은 그분에게 의존해 있다. 그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시오, 창조주시요, 보전하시는 분이시요, 모든 것의 구속자이시다.
[Morris, Genesis Record, p.449. ]
야곱이 다시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 계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없는 야곱을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볼때 사기꾼이요, 자기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였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악된 야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먼저 찾아오셨 습니다. 죄악된 자기를 바라보고 슬퍼하며 절 망하는 야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야곱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졌지만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가져야 함을 깨우쳐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자유로운 교통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주신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닥다리 위에 서서 야곱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요, 축복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더불어 같은 언약을 세우신 대로 야곱과 더불어 같은 언약을 세우셨 습니다(12:1-3,26:3,4). 하나님께서는
첫째, 야곱에게 누운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그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여 동서남북에 편만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야곱을 복의 근원으로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며 그를 지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섯째, 야곱이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된 야곱과 함께 하시며, 그의 보호자가 되셔서 그를 지키실 것과 그가 얻고자하는 모든 것과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축복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크신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너무 인간적이고 간교하다고해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변개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쳐 쓰러져있는 야곱을 찾아오시고 비전을 보여 주시고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힘든 야곱을 통해 온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크신 뜻과 소망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중에도 야곱과 같이 인간성이 강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이어서 소망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문제만 일으키는 trouble maker가 되는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한 사람도 섬길 수 없는 이기심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소망을 두고 키우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자신으로 인해 절망이 될 때마다 이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는 야곱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소망을 두기 어렵습니다. 또 간교하고 교활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무서운 이기주의자들을 보면 미운 마음이 끓어올라 섬기기 어렵습니다. 이들을 품고 사랑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미운마음이 돋아나 결국 정죄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하시며, 크신 구속의 사랑으로 그를 품고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고자 작정하셨습니다. 야곱을 찾아오셔서 비젼을 보여주시고 약속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시며 변함없이 구속역사를 완성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소망 없는자에게 소망을 두시고 사랑하기 힘든자를 품으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 서원 기도를 드린 야곱(28:16-22)
16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야곱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야곱은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믿는 아버지, 어머니 슬하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이 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 생활은 극히 피상적이었고 하나님과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었습니다. 그는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자 들어갔을 때 이삭이 어떻게 이렇게 속히 잡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고 말했습니다(창27:20). 그리고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집에만 계신 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살아계시며 자기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깨달았습 니다. 야곱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심히 두려웠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며, 다른 것이 아니라.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고 하였습니다.야곱은 그 곳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집이요,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에서는 두려워하였지만 하나님은 두려워하 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시며 자기와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창 48:3). 이것은 야곱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W.H. Griffith Thomas, Genesis, p.263. ]
야곱은 이 때부터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신앙 생활을 출발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비로소 야곱은 천성문을 향하여 가는 거룩한 나그네의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야곱은 일찌기 잠이 깨었습니다. 야곱은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은 원시적인 예배 행위였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광야에서 큰 제단을 쌓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날 밤에 만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난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돌을 세운 것이었다.
야곱의 돌기둥과 기름은 예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기념물(regular symbols of memorial)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consecration)의 행위로 보아야 한다(신 27:2; 사 19:19, 레 8:10,11 참조.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자).Derek Kidner, Genesis, 1972, p.159. 율법에는 예배의 대상과 연관되어 금지되었다(신 12:3). 그러나 성경에 기념물로서 돌기둥을 세우는 경우가 더러 있다(참조. 창 31:45-54; 35:20,수 24:27, 삼하 18:18).
이는 광야와 같이 황량하던 야곱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말씀을 새긴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곳을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벧엘의 하나님을 그 마음에 깊이 모셔 들였습니다. 동시에 그의 삶 속에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를 받아들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돌베게로 기념비를 세운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하여 말했습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집에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들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 땅을 주시고, 그 자손을 편만케 하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셔서 천하 만민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13,14). 그러나 그런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야곱의 깊은 관심을 끌게 된 말씀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15). 그는 자기를 지켜 주실 것, 먹여 주실 것, 입혀 주실것, 평안히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 실 것을 구했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둥으로 삼고 세운 돌을 하나님의 전, 곧 제사의 장소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이 야곱의 서원은 상당히 조건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자기 장래를 맡겼다는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의 노력과 성실로서 축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의 힘과 지혜를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고사하고 도리어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기 의지와 성실이 바닥이 난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했습니다.
성실하고 머리좋은 사람들은 자기 능력과 지혜를 믿고 살기때문에 여간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 인생을 부탁했습니다. 물론 야곱은 현실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은 영접했습니다.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실 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서 결단하고 서원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 서원을 기초로 야곱의 믿음을 키우셨기 때문입니다(창 31:1,15). 하나님께서는 자기 중심적인 야곱의 서원을 다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서원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앞에서 드리면 반드시 기억하시고 그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에서와 같이 망령된자가 되지 않고 신앙인의 명분과 선교사의 명분을 귀히 여기는 믿음의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신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않고, 우리를 택하시고 소망중에 키우시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기적인 성도들을 소망중에 키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