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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신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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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777회 작성일13-06-22 01:54

본문

창세기 29-31장
 
요 절 31: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20년동안 밧단 아람에서 훈련하신 사건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밧단 아람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야곱보다 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외삼촌 라반의 손에 붙이셔서 용광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야곱은 죽도록 일만해 주고 빈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편이 되셔서 라반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고, 거부가 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택하신 자를 훈련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섭리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야곱을 훈련하신 하나님 (29:1-30:43)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처가살이를 20년 동안 하면서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외삼 촌 라반으로부터 받은 훈련이요, 둘째는, 질투심 많은 아내들을 통해서 받은 훈련입니다.
 
첫째, 라반에게 속임을 당한 야곱 (29:1-30)
 
29:1을 보십시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 후 발걸음을 동방 사람들이 사는 땅에 도착했습니다. 야곱은 거기에서 세 떼의 양들이 우물곁에 누워 있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양떼들은 그 우물로부터 물을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우물을 덮고 있는 돌은 매우 컸습니다. 모든 양떼들이 거기에 모일 때 목자들은 그 돌을 우물입구로부터 옮겨놓고 양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돌을 우물 입구에 다시 올려놓곤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하란에서 온 목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5). 그러자 그들은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머나 먼 타향에서 외사촌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감정을 억제하고, 외삼촌의 딸 라헬과 그 양 떼를 보고 나가서 먼저 우물의돌을 옮기고 그녀의 양떼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라반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야곱임을 밝혔습니다(11,12). 라헬은 달려가서 야곱이 왔다는 소식을 라반에게 알렸습니다. 라반은 달려나와 야곱을 영접하고 입 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였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한 달 동안 함께 머물며 라반의 일을 도왔습니다(14). 야곱이 집에 와 있으니 유익된 것을 본 라반은 야곱과 고용계약을 맺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외삼촌의 딸 라헬과 결혼을 하는 조건으로 7년을 무료 봉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야곱이 라헬이 곱고 아리따웠기 때문이요, 라헬을 연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18). 그는 라헬을 만났을 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밧단 아람에 보낸 가장 큰 목적이 야곱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28:2). 야곱은 이삭의 결혼 방향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 보다는 연애 감정에 사로잡혀 라헬과 결혼하고자 했습니다. 장녀인 레아는 외모가 시원찮고 안력도 나빴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연애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을 머슴살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사위로 삼아서 물질적인 이득을 보기 위해서 야곱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내를 얻기위해서 7년을 무료봉사 하겠다는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 같이 보입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물질을 먼저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장가도 갈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인생관은 달랐습니다. 그는 돈보다 사랑, 사랑보다 명예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아비집에 있을 때 형 에서가 이방 계집과 결혼하여 육신의 사랑을 즐길 때 그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로부터 영적 축복을 쟁취하는 일에만 골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얻은후에 사랑을 얻기위해 투쟁했습니다. 사랑을 얻은 후에야 물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30:30).
그러면 야곱은 라헬을 어느정도 사랑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7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당시 야곱의 나이를 계산해 보면 77살이나 됩니다. 환갑, 진갑 다 지난 노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헬을 연애하는 까닭에 7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이를 볼때 그는 무서운 집념의 사나이었습니다. 또 라반에게 속아 다시 7년을 더 봉사해야 했을 때도 기꺼이 이를 감당했습니다. 그는 라헬 한 사람을 얻기 위해 도합 14년을 투자한 것입니다. 여기에 야곱의 인간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얻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아낌없이 투자하였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무슨 일을 하는 데 너무 계산적입니다. 그래서 값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위해서 자기 인생을 투자하길 두려워합니다. 또 한번 정한 뜻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인내심이 부족합니다. 마음이 조급하여 변덕스럽습니다. 이런 허약한 인간성을 가지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면에서 우리는 야곱과 같이 과감하게 투자하고, 그 뜻을 이루기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배워야겠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고자 7년을 봉사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야곱은 감격스러운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에게 들어가 첫날 밤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신부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이때 야곱이 받은 충격과 라반에 대한 배신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7년을 수일같이 여기고 봉사했는데 그 모든 수고가 물거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땅이 꺼지는 절망과 라반에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치솟아 당장에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야곱은 자기 발견을 하게 되었을것입 니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은 사깃군 또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사냥하러 간 사이에 축복을 빼앗은 자기의 죄악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라반이 배반한 사건을 통해서 형을 속인 야곱의 죄악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 십니다. 남을 속인자는 반드시 속임을 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비 집에서는 훈련이 안되므로 아무도 없는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야곱의 간교한 인간성을 깨뜨리시는 훈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신 것입니다(히12:4,5). 야곱이 라반에게 항의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라반은 그럴 듯하게 변명하고, 라헬을 줄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야곱은 라헬을 위해서 14년을 머슴살이 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야곱이 연애하던 라헬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셨습니다.
 
둘째, 아내들에게 훈련받는 야곱(29:31-30:24)
 
야곱은 라헬에 대한 연애 감정과 라반의 속임수에 의해서 두 자매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두 아내의 극성스러운 사랑 싸움의 틈바구니에 끼어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습 니다. 어쨌든 야곱은 레아 때문에 7년이나 더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레아를 마음으로 사랑하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30). 이로 인해 레아는 결혼은 했지만 마음에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에게 긍휼을 베풀어 그 태를 여시고 4명의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레아는 첫째 아들을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32). 이 이름을 짓고나서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시므온은 "들으심"이라는 뜻으로 여호와께서 그가 미움을 받고 있는 것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33). 레위는 "연합함", 이는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남편이 이제부터는 나와 연합할 것이라는 뜻입니다(34). 유다는 "찬송함", 이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라는 뜻입니다(35). 그 후 레아의 태가 닫혔습니다. 레아가 아들들의 이름을 지은것을 보면 그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문제로인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게 었습니다. 그래서 운명적인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어떠합니까? 30:1을 보십시오. 라헬은 자기의 무자함을 생각할 때마다 언니에 대한 시기심이 타올랐습니다. 라헬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편에게 강짜를 부렸습니다. "나로 자식을 낳게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30:2)" 라헬은 언니 레아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얼굴은 예뻤지만 영적으로 꽉 막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31:19,30). 그래서 야곱은 노를 발하여 라헬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를 잉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2)?" 그러자 라헬은 자기 여종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었습니다(3,4). 빌하는 야곱에게서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그들의 이름을 단과 납달리라고 지었습니다. 단은 "억울함을 풀었다"는 뜻이요(6), 납달리는 "내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는 뜻이었습니다(8). 그러자 레아도 자기 여종 실바를 첩으로 주어 갓과 아셀을 낳았습니다. 갓은 "복됨"이라는 뜻이요(11), 아셀은 "복된 자" 라는 뜻입니다(13). 30:14절을 보십시오. 보리를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때는 야곱이 여덟명의 아들을 낳은 후였습니다. 장남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어머니 레아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합환채(Mandrake)는 어원학적으로 "사랑스러운 (belobed) 사랑(love)"이라는 말에 관련 되었다. 이 식물은 사랑의 묘약(love apple)으로 여겨졌다(창 30:14-16). 팔레스틴 사람들은 향료로 생각했다(아 7:13). 합환채는 물결치는 잎을 가지고 있으며, 연한 보라나 흰색이나 진한 청색 꽃이 핀다. 그 열매는 작고 노랗고 작은 도마도나 귤 같다. 밀이 익는 5월에 익는다. 향기가 있고 맛은 달지만 독이 있다. 남자의 양기를 도우며 여자의 임신을 돕는다하여 옛적부터 약으로 사용되었다. 갈라진 뿌리는 인삼과 같이 인간의 신체와 약간 닮았다. 요르단 계곡과 그곳으로 흐르는 강을 따라서, 모압 평야와 길리아드와 갈릴리에서 발견된다.
 
"Mandrake", The Nes Westminster Dictionary of the Bible, ed. by Henry Snyder Gehman, pp.584,585., 류형기, [성서사전], p.797.
 
합환채는 임신 촉진제로 사용된 약초였습니다. 10살도 안된 아들이 합환채를 가져다가 엄마에게 드린 것을 보면 르우벤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못하는 어머니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라헬은 자기와 함께 살고있는 남편 야곱을 언니 레아와 동침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합환채를 뺏았습니다. 이로 인해 레아는 다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잇사갈(값), 스불론(거함)이었습니다(18,20). 그리고 딸 디나도 낳게 하셨습 니다(21). 그후 하나님께서는 라헬에게도 아들을 주셨는데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였습니다. 요셉은 "더함"이라는 뜻으로 다른 아들을 더해 달라는 소원을 나타낸 것입니다(24).
 
이 사건을 통해서 창세기 저자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일 부다처주의의 비극이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극성스러운 두 아내, 그리고 두첩, 그들에게서 난 아들들 사이의 갈등, 야곱은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시기, 질투, 경쟁심, 억울함, 교만과 분냄등 온갖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가 이러한 야곱의 비참한 가정생활을 상세하게 폭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부 다처주의의 병폐가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회교권에서는 법적으로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입니다. 그런데도 음성적으로 작은집을 두고 두 집 살림을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적으로 볼때 이는 참으로 큰 불륜이요, 죄악입니다.
 
둘째, 인간의 감정에 근거한 사랑이 얼마나 덧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인가를 말해 줍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기와 결혼해 주지 않으면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적인 사랑, 즉 애로스 적인 감정에 기초한 사랑은 근본적으로 불안전한 것입니다. 감정이란 흘러가는 구름처럼 흐 렸다가 맑았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합니다. 이런 감정에 근거한 사랑에 근거해서 결혼생활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안합니까?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신앙에 근거한 변함 없는 사랑, 곧 아가페적인 사랑에 근거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서로 사랑할 때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 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랑입니다. 야곱과 이삭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삭은 한 평생 리브가 한 사람을 사랑하였습니다.
 
셋째,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야곱을 억센 자매님들 틈바구니에 집어 넣어 용광로 훈련을 시키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라헬은 믿음이 없고, 너무나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또 형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심령이 깊이 병들어 있었으며 야곱을 심히 부담스럽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의 합환채를 빼앗고, 나중에는 아버지 집의 "드라빔"까지 훔쳐서 나왔습니다(31: 19). 이런 라헬을 통해서 야곱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가를 뼈저리게 깨달았을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연애 감정과 라반의 속임수를 통해서 네 명의 아내와 결혼을하게 하셨습니다. 네 명의 아내들 사이에서 11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자중에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지만 이를 통해서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내들의 질투와 시기심을 통해서 많은 자식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 두 족장들을 낳게 하시는 놀라운 섭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 후손들을 하늘의 별과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이삭과 야곱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12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안에서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허물과 약점을 다 쓰셔서 당신의 크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약점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 앞에 있는 작은 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비전을 잃고 희망을 잃게되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셋째, 야곱의 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 (30:25-43)
 
30:25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라헬에게서 요셉을 낳은 때에 라반에게 두 번째 7년 고용이 계약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25,26). 야곱은 낯선 타향살이를하면서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네 명의 아내들에게 시달리고 지쳤습니다. 야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고 싶었습니다. 14년 동안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남 좋은 일만 해 줬다고 생각하니 손해 의식이 들었습니다. 라반도 야곱의 수고를 인정하고 적당한 보수를 주겠다고 했습니다(27).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깨달았노니 내가 그것을 주리라(28)." 야곱은 자기가 외삼촌의 집에 온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공력을 따라 인하여 그집을 얼마나 축복해 주셨는가를 말했습니다. "내가 오기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30)?"
 
명예와 사랑을 얻은 야곱은 이제 재물에 대한 강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그리고 야곱은 라반에게 가장 값싸고, 보잘것없는 보수를 요구했습니다. 라반의 양떼중 아롱진 것과 점있는 것 검은 것을 다 골라내고 흰 양만 자기에게 맡기고 그 이후부터 아롱지고 점있고 검은 양이 태어나면 자기 몫으로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32-33). 라반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이는 흰 양떼만 있는 곳에 그런무늬있는 양이 태어나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반은 즉시 아롱지고 점있는 양을 다 골라내어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지키는 양떼와 사흘길이 떨어지게 했습니다(35). 야곱이 치는양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치는 양떼중에는 아롱진 것이나 점 있는 것, 검은 것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7-39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점 있는 것, 검은 것이 저절로 태어나도록 기다리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하면 흰 양, 검은 염소에게서 얼룩무늬가 있는 새끼가 태어나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육종학이나 유전공학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탐독하였을 것입니다. 어느 경북대학교 교수는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추천을 받았습니다. 이분은 슈퍼 옥수수를 개발하여 아프리카 흑인들을 기아와 굶주림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14년 동안의 양치는 목자 생활의 경험을 분석하고 종합 연구하였습니다. 양들의 생태와 짝짓기하는 모습을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이런 연구를 통해서 한 가지 확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미가 새끼를 밸 당시의 주위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가지를 꺾어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를 양떼들이 와서 물을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를 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양들이 물을 마시러 올 때에 그 가지를 보며 짝짖기를 하도록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39절을 보십시오.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 얼룩한 것과 점있고 아롱진 것을 낳으니라" 야곱의 이런 방법은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물 생태학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주위 환경에 따라 오랜 세월이 걸쳐서 피부색깔이 변할 수 있음은 증명이 되었습니다.
 
헨리 모리스(Henrry Morris)에 의하면 야곱은 현대 생물학자들이 아직 연구하지 못한 동물에 관한 어떤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했다. 태어나기 전에 육체적인 특징들이 어느 정도 결정될 수 있다. 특히 야곱이 흔든나무의 진액속에 어떤 화학 물질이, 그 나무를 꽂아 놓은 물을 먹은가축의 생식세포속에 있는 DNA에 어떤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물이 동물의 최음제와 번식 촉진제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포프라(poplar) 개암나무 (hazel), 밤나무(chestnut ; 때죽나무(storax), 아몬드나무(almond))등의 나무속에서 발견된 화학물질이 고대와 현대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Henrry Morris, Genesis Record, pp.476,477.
 
그러나 야곱의 경우는 동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역사 하셨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31: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물구유에 단풍나무, 신풍나무 가지를 세워 놓고 새끼를 밸 때 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양떼를 탄 수양은 모두 얼룩진 것, 아롱진 것, 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눈을 들어보라. 양떼를 탄 수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 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것을 내가 보았노라(31:12)."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속이고 교활하게 야곱의 노동력을 잔인하게 착취하여 사욕을 채우는 라반의 죄악을 징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재물을 늘리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다하는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치밀한 계획하에 실천에 옮겼습니다. 자나 깨나 종자개량에 힘썼습니다. 꿈 속 에서도 얼룩진 양이 태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단 얼룩진 양이 태어나기 시작하자 다시 지혜를 짜냈습니다. 약한 양이 오면 가지를 두지 않고, 실한 양이 오면 가지를 두어 새끼를 배게 하였습니다(41,42). 결국 약한 것은 다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양은 모두 얼룩 무늬있는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의 비상한 노력이 기적을 낳은 것이었습 니다. 어떤 사람은 야곱의 방법이 지나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편이 되셨고, 교활한 라반을 징계하셨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착취하여 긁어모은 모든 재산을 다시 야곱에게 뺏기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근본적으로 본성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을 율법적으로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야곱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좋아하는 라헬과 결혼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늙도록 장가도 못간 그에게 네 명의 아내들과 11명의 믿음직한 아들과 1명의 사랑스러운 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또 한 꿈속에서도 그리던 재물을 마음껏 모으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라반을 통해서 야곱의 인간성을 깨뜨리시고, 그에게 믿음을 심어 주시고, 믿음의 조상다운 내면성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어머니 치마폭에서 빼내시고, 20년 동안 광야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Ⅱ. 야곱을 보호하신 하나님(31:1-55)
 
1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점점 부하여지고 라반은 점점 쇠하여졌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의 불평한 언사와, 라반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불안해 졌습니다. 자기성실과 노력으로 꾀를 부려 많은 재물을 모은 야곱은 심히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갈팡질팡하는 야곱에게 방향을 주셨습니다. 20년 동안 광야 훈련을 시키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13). 이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20년 동안 직접적으로 야곱에게 나타나신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야곱도 절대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야곱을 도우시고 함께하시며 지키셨습니다. 야곱도 20년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셔서 은밀히 도와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야곱은 그곳에서 사랑을 얻고 자식을 얻고 많은 재물을 얻었지만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 곳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처가살이를 하는 동안에 벧엘에서 드린 서원을 잊어 버리고 살 때가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서, 극성스러운 아내들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면서 또 재물을 모으는 데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기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서원 기도를 기초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근거하여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때 야곱은 벧엘의 서원을 기억하게 되었으며 벧엘의 하나님께서 지난 20년동안 자기와 함께 하시며, 자기를 키우셨음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떼있는 들로 불러다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라반 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과 자가는 힘을다해 라반을 섬겼지만 그들의 아버지는 품삯을 열번이나 속였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키시고 라반의 양들을 빼앗아 자기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5-9).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에 자기에게 나타나 출생지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음을 전했습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 네 출생지로 돌아 가라(13)." 야곱의 말을 들은 두 아내들도 야곱의 말을 전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아버지의 탐욕과 이기심을 지적하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방향에 순종하라고 격려했습니다(14-16). 17절을 보십시오. 아내들의 동의를 얻은 야곱은 즉시 일어나 이삿짐을 챙겼습니다.
 
아내들과 자식들을 약대에 태웠습니다. 그 얻은 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그 아비 이삭이있는 고향땅으로 떠났습니다. 야곱은 양털을 깎으러 간 라반에게 알 리지 않고 가만히 떠났습니다(20).
 
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모든 재물을 이끌고 도망간지 3일후에야 라반은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라반이 완전히 야곱에게 엎어치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야곱이 도망친 사실을 알 게 된 라반은 심히 격분하여 그 아들들을 데리고 칠일 길을 추격하여 갔습니다. 그들이 길르앗 산에 미쳤을 때 밤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2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주신 준엄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경고의 말씀이 없었다면 라반은 야곱을 해쳤을 것입니다(29). 라반은 이 경고때문에 야곱에 미쳤으나 아무말도 못하고 가식적인 말만 늘어 놓았습니다(26-28). 여러분, 라반이 참으로 즐거움과 노래와 수금으로 너를 보낼 사람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라반은 죄악된 세상에 연단된 사람이요, 권모 술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26-28). 라반은 드라빔을 훔쳐간 일로 야곱을 책망하고 일대 수색을 벌였으나 라헬이 꾀를 냄으로 찾지 못했습니다. 드라빔은 점을치는 가정의 우상이었습니다. 라반이 드라빔을 필사적으로 찾은 것을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섬기지 않고, 잡신도 겸하여 섬긴 우상숭배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33-35).
 
궁켈(H. Gunkel)은 "드라빔은 인간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우상들의 형상이며." 실물보다 작으며, 받침대가 없다고 했다. 그것들은 많은 종교에서 발견되는 가정을 보호하고 축복해주는 가신들이다. 성경에는 드라빔의 크기가 다양하며, 말 안장 밑에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도 있으며, 사람 크기 만큼 큰 것도 있었다(삼상19:13,16) . 그러나 아직 큰 것은 발굴되지 않았다. 애기 밴 여인 들이 행운을 바라서 집안에 모셔두는 가정의 수호신이었다고도 하고, 점을 치는데 사용되었다고도 한다(겔 21:21 슥 10:2). 스가랴는 드라빔의 미신적 사용을 비난했다(슥 10:2). 요시야는 그 불법을 선언했다(왕하 23:24). Claus Westermann, Genesis 12-36, p. 493, "Teraphim", Ed. by Henry Snyder Gehman, The New WESTMINSTER DICTIONARY of the BIBLE, pp.936,937.
36절을 보십시오. 라반이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야곱은 심히 노하여 라반을 책망했습니다.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불같이 나를 쫓아왔나이까(36)?" 그리고 야곱은 20년 동안 눈물겨운 처가살이를 하면서 쌓였던 불평과 분노를 일시에 다 터트렸습니다. 38-4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습니까? 야곱은 얌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다 물어 주었으며, 도적 맞은것은 다 물어내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겨를 없이 라반의 양떼를 지켰습니다. 그는 20년 동안 줄기차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그 동안 열 번이나 품삯을 변역하였습니다(41). 야곱은 라반의 거짓된 인간성과 교활한 성품으로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편이 되셔서 보호하셨음을 깨닫고 라반의 불의함을 꾸짖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 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42)." 야곱은 이제 밧단 아람의 20년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시며 그의 모든 고난과 수고를 감찰하셨음을 깊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서원한 야곱의 서원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말을 듣는 가운데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태도를 바꾸어서 자신의 손을 내밀어 언약 맺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딸들은 내 딸이요, 자 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내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 할 수있으랴(43)." 이에 라반과 야곱은 돌무더기를 세워 언약을 맺엇습니다. 라반은 자기 딸들을 박대하지 말 것과 딴 여자를 아내로 취하지 말 것을 하나님 앞에서 부탁했습니다(50). 그리고 이 돌무더기를 경계선으로 서로 넘어가서 해치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습니다(52). 라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나홀과 그 조상들의 하나님과 동일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리고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대접하여 보냈습니다. 야곱은 이제 안심하고 고향을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결국 야곱은 20년 전에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훈련하시는 분이 십니다. 특히 욕심이 많고 인간성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이것 저것 채워주시며 오래 참으시며 장기적으로 키우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지금도 택하신 자들을 소망 가운데 훈련하시고, 마침 내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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