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운동과 '환생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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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433회 작성일13-06-22 02:15본문
♣ 목 차 ♣
Ⅰ. <김영우와 함께하는 전생여행> 진단
Ⅱ. 뉴에이지 운동과 환생
(1) 환생이란 무엇인가?
(2) 뉴에이지 운동으로서의 환생
(3) 환생론의 등장 배경
(4) 환생론이 미치는 영향
Ⅲ. '환생',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요즘 사회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환생 신드롬'은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환생은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적인 개념중 하나에 속합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환생 신드롬'의 촉진제가 된 도서,<김영우와 함께하는 전생여행>을 연구 진단해 보고, 환생의 개념과 뉴에이지 운동으로서 '환생'이 나타난 諸배경 및 사회에 미치는 문제점을 대략적으로 파악해 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인 우리들이'환생'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Ⅰ. <김영우와 함께하는 전생여행> 진단.
이 책에는 이른바 '전생요법'이 소개돼 있습니다. 이유 없는 질병과 정서장애는 많은 경우 전생에 그 원인이 있고, 최면을 통해 그 전생을 기억케 하면 치유된다는 주장입니다. 이 책에는 또 최면 유도 테이프가 딸려있어, 이 테이프를 듣고 직접 전생을 체험했다는 '간증'이 PC통신으로 꽤 많이 답지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출간을 앞뒤로 해서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의 대중문화 속에 유입된 또다른 '전생요법' 역시 무시 못할 세력권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중에 유명한 백화점에서는 전생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구슬 한 개가 수십만원씩에 팔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은행나무 침대> 라는 영화는 올해 관객 68만명 동원으로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3위로 껑충 뛰어 올랐고, TV 연애 드라마<8월의 신부> 는 정신과 의사의 '최면시술'로 전생을 본 뒤 연인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을담고 있습니다. 소설로서는 시공을 초월한 순정의 사랑이야기로 문학계에 '복고 바람'을 몰고 온 양귀자씨의<천년의 사랑>이 있고, '천년 후애'를 카피로 한 모 화장품 광고 등 전생 배경의 '상품'들이 이미 널리보급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환자들에게 최면기술 가운데 하나인 '前生退行' 기법을 적용, 각종 정신치료와 약물 치료에도차도가 없던 한 폐쇠공포증 환자가 동굴 속에 갇힌 채 굶어 죽은 전생을 기억해낸 뒤 증상이 사라졌다는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30대 여자 환자가 외로움에 못이겨 투신자살한 전생을 떠올린 뒤 완치된 이야기 등이 소개돼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각 계층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 정신의학계.
정신의학계에서는 아직은 "말도 안된다"는 쪽이 많고, 학회 내에서 먼저 충분한 검증작업을 거치지않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일을 너무 경솔하게 서둘렀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일부 동조하는 의사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만큼 의학계마저도 섣불리 '사실무근'이라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러워 한다는 분위기를 반영해 줍니다. 전세계적으로 전생체험은 지금 정신과 치료 중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신의학계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라는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는 지난 팔십이년에 한 여성환자의 정신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최면요법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전생을 기억해내는 일을 경험하고는 정서장애 증상이 말끔이 사라졌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최면을 통해 전생퇴행을 하나의 정신과적 치료법으로 확립했다는 것입니다.한편으로 최면뿐 아니라 '채널링(신들림)'을 통해서도 이런현상들이 나타나고있습니다.
(2) 불교계.
정작 윤회론을 견지해온 불교계는 원래 불교가 힌두교에서 윤회론을 따온긴 했지만, 가르침의 목적은 인생의 고통스런 모든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데 있기 때문에, 불교인들은 환생보다 깨달음에 이르러 열반에 드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원래 윤회의 개념은 동물로도 환생하는 등 매우 고통스런 업보의 순환 과정임을 의도한 것이기에, 지금 사회에서 유행되는 환생 개념은 너무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오히려 상업주의와 결탁, 선정성을 부추기는데만 오도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3) 기독교계.
이 책이 출간된 뒤 기독교계에서는 모두 "이상하다,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일부 목사,장로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여권사는 교회 여전도회에서 이 책을 추천해서 돌려 읽게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저자인 김영우씨의 정신과 병원 주변의 한 교회는 목사와 장로 부부가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도, 직접 전생체험을 하고 돌아간 교인들도 있다고 합니다.또한 일부 목사와 신부들은 '기독교 속의 환생'사실을 담은 기독교 문헌들을 김영우 씨에게 소개해 주기도 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바라볼 때 이 모든 현상은 뉴에이지 운동의 '영적 미혹'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전생을 체험한 사람들이 미지의 목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는데, 그 목소리에 예언들이 들어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 북한의 미래, 한국기독교의 미래 방향,개개 인물들의 장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예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신들린 무당이나 점술까들이 예언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뉴에이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간의 깊은 의식과 교신하며 자기 의사를 언어화 시켜내는 '목소리(Master)' 가운데 일부는 "나는 너의 수호자다", "나는 어느 별의 CX905" 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친절히 접근해 오다가 후에는 자살로 이끄는 등 타락과 파멸로 내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목소리들은 또 전생이 마치 우주적인 진리인 양 이야기하고, 예수와 부처, 성령과 불심을동일한 위치에 놓고 기독교 진리를 상대화시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비인격적인 어떤 절대 힘,우주의 본질로서의 순수 등으로 비유하는 등 애매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카톨릭 신자라고 밝힌 저자는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하는 문제에 따라 성경은 숨은 기독교 본래의 진리는 지금이라도 새롭게 밝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성경 구절 가운데 윤회와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이 많다고 지적하고, 그예로써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가리켜 예수님께 "뉘 죄로 인함인가"
물었던 일(요9;2)과 엘리야의 환생으로 지칭되는 세례요한의 존재(마11;14)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어느 한 구절만을 놓고 그릇 해석한 것입니다. 성경 66권은 모두 짝이있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전체 문맥 속에서 부분을 보지 않았기에 생긴 오류인 것입니다. 더구나 이미 환생문제는 성경 한 구절의 해석이나 신학논쟁으로 가려질 문제가 아니라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맥락인 일회적인 구원과 심판으로 분명히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Ⅱ. 뉴에이지 운동과 환생.
(1) 환생이란 무엇인가?
'환생'(reincarnation)이란 말은 원래 두 개의 라틴어 'in'(안에)와 'carnis'(육체) 에서 나온 것으로 함께 결합하여'육체안에'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접두어 're'(다시 재 (再)가 붙여질 때 이 말은 '다시 육체에'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환생은 사람의 영혼의 윤회적 진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환생의 개념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먼저 '순수 환생설'이 있는데 이는 영혼이 단지 인간의 육체로만 환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환생의 기원이 되는 힌두교 교리인 '전생(轉生,transigration) 은 각인에게 계속되는 윤회가 생물이나 무생물의 영역에까지 확대된다는 이론입니다. 즉 새로부터 돌맹이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나 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그 결과는 전생에 그 영혼이 쌓은 업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발로 차지 말라, 네 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농담도 나오는 것입니다. 환생의 원인이 되는'업'은 힌두교에서 카르마(Karma)라고 부릅니다. 카르마는 '행동',혹은 '행함'이며, 모든행동은 어떤 원인의 결과이고 또한 그 행동이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자연적인 인과 법칙에대한 해석입니다.즉 업은 심은데로 거둔다는 불변의 법칙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심은대로 거둔다(갈6;7)는 것과는 달리 업에는 최후의 심판이 없습니다. 업의 결과들은 이생에서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업은 그 다음에 받고 그렇게 계속되는 것입니다. 업보에 대한 공포는 결국 극단적이 되어 냉정하고 운명론적인 태도와 가치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에 빠져있는 사람을 구출하는데 주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전생에 고의적으로 어떤 사람을 물에 빠뜨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2) 뉴에이지 운동으로서의 환생.
환생의 신조는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에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환생의 교리는 사람이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고 유혹했던 사단의 간교함이 지금도 여전히 먹혀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원론과 범신론, 진화론적 낙천주의를 표방하는 뉴에이지 운동은 그동안 종말의 때에 진리와 비진리를 교묘히 혼합시켜 기독교인을 미혹시키기 위한 사탄의 강력한 무기인 것으로 경고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94년 2월 미국의 기독교잡지<Christan Today>가 조사 보고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뉴에이지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85%가 이전에 기독교인이었다는 충격적인 통계가 이미 나왔습니다. 환생론이 뉴에이지 운동의 강력하고 주된 무기의 하나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영적 진보를 통한 자아의 神的실현을 적극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속의 미혹>(포도원 간)이란 책에서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저술가 데이브 헌트는 "환생이야말로과학주의와 동방신비주의의 결합이 탄생시킨 마지막 때 최대의 종교적 미혹" 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3) 환생론의 등장 배경.
뉴에이지 운동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인간을 다시 태어난다, 즉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이 윤회설은 불교나 힌두교에서 가르쳐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와 거기에 관련된 문제,그리고 공포심 등은 모든 인간의 관심이요, 수수께끼입니다.
어떻게 하면 죽음의 공포속에서 전율하는 현대인들을 안심시켜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은 너무 냉정하다는 것 때문에 크리스챤 중에서도 50명 중 8명이 윤회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세기말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도덕적 불안과 물질 풍요 속의 정신적 빈곤을 느낍니다.그리고 산업사회진전에 따른 돌연사의 증가와 기독교인보다 비기독교인이 세계의 종말에 더 비상한 관심을갖고 있는 시대분위기, 한계에 도달한 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이데올로기의 공백으로 점증하고 있는 영적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게다가 삶의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경직돼 온 제도권 중교가 부추긴사회 일반의 탈종교화 현상 등의 여러 가지 사회심리적 요인들 때문에 환생론은 이미 하나의 '종교'가 되어,논리성 이전에 이미 광범위한 정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영적으로 갈급한 현대인 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고 있는 실정입니다. 스트레스가 가득하고 긴장된 문화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들에대해 개인적 책임을 지는 것을 크게 싫어하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전생 탓으로 넘기는 것을 훨씬 더 쉽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경험된 일들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준다고 믿고있기에 환생 개념은 더욱 쉽게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게으르면 소가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환생은 더 이상 동양의 불가사의한 미신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20세기 말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것이 일시적이 유행이 아닌 하나의 종교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면에 의한 '퇴행(退行,regressions)과 무의식적인 '전생의 회상들'은 신문 잡지들에 매우 정기적으로 실리는 기사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이 환생 개념을 신봉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4) 환생론이 미치는 영향.
환생의 교리는 개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미치는 폐해가 아주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세대들에게 자칫 허무맹랑한 운명론에 사로잡혀 현실을 도피하거나 미혹에 빠지는 심리적 병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환생론은 생명과 진리가 없는 공허한 사상입니다. 인간이 짐승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논리는 고유한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고 역사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망각케 하며, 한 번 뿐인 인생을 무책임하게 방종케 만들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필연적인 뜻과 목적가운데 창조된 심히 기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업과 환생교리는 인간을 소망없는 절망 가운데 우주의 우연한 존재로 전락케 합니다. 또한 업은 타인들의 행복을 위한 희생이 아무런 공로도 없다고 봅니다. 모든 일의 처지와 사물의 현상들을 '업보'로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로인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 사상을 낳게 되어 그 삶의 과정은 소망이 아니라 오직 절망과 체념 뿐인 것입니다.
Ⅲ. '환생',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환생론자들은 환생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의 증거들을 예로 들어, 마태복음 17장의 세 제자들앞에서의 예수의 변형과 요한복음 8;58의 예수님의 담대한 말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를 이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하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느니라"(히9;27)라고 명확히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거룩한 피조물인 인간은 이 땅에서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환생을 믿게 될 때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의 업보와 죄짐에 눌려 고통하고 신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사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과거는 단지 인정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로 모든 죄의 가책과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업'의 헛된 교리를 믿고 사는 자들에게 '업'이 갖는 죄의 연속성과 무거움을 일깨워 주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파스칼은 "완전하고 유일한 진리가 꼭 하나 있기 때문에 비슷한 비진리들이 여럿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이 시대에는 누구든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온전히 착심하지 않으면, '영 분별'이 어두워져 미혹당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살후2;9-12)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때가 되어 갈수록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가르침들이 많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마24;24)고 경고 하셨습니다. 환생론은 불신자들 뿐만아니라, 젊은층과 믿음이 어린 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신앙의 기초가 되는 구원의 확신과 십자가 부활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말씀안에 뿌리 내리도록 도와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환생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추종하는 자들에 대한 분명한 진단과 진정한 치유가 없다면그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에 굳게서서 세상에 이 진리를 담대하게 열심히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구주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을 부인하는 자에게 그들이 믿는 거짓 진리로 인해 스스로를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상태에 내어주고 있다고 경고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거짓진리가 난무한 시대에 캠퍼스 지성인들 안에도 문제의식 없이 '환생'을 마치 진리인냥 착각하고 믿는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거세게 몰아쳐 오는 뉴에이지 운동의 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주의 십자가와 부활뿐입니다. 복음을 맡은 일군인 주의 종들이 복음정신으로 더욱 무장하여 그 속에 생명과 진리가 없는 공허한 환생론과 힘써 싸워야 하겠습니다.
☞ 참고자료.
* <김영우와 함께 하는 전생여행>, 김영우 著
* <뉴에이지 운동 연구>, 박영호 著
* '빛과 소금', 96년 10월호
* '국민일보' 사설, 96년 10월 15일자.
* '낮은 울타리',96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