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속에서도 함께하신 예수님(단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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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97회 작성일13-06-22 03:21본문
말씀 : 다니엘 3:1~30
요절 : 다니엘 3: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사람 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한 거대한 신상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약 27미터(9층 건물 높이), 폭은 약 2.7미터가 되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원에 세웠습니다. 그 도시 어디서든지 그 신상이 보였습니다. 왕이 전령들을 보내어, 지방장관들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고문관들과 재무관들과 판사들과 법률가들과 지방 모든 관리들을 그 신상의 제막식에 참석하게 했습니다. 왕은 그신상 제막식을 통해서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과시하고 왕권을 더욱 견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모두들 그 신상의 제막식에 모였습니다. 모두들 그 거대한 금신상을 보고서는 '야, 정말 크다! 저걸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하며 각기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때에 전령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모든 사람들,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백성들은 들으시오. 나팔과 피리와 거문고와 사현금과 칠현금과 풍수등 갖가지 악기 소리가 나거든, 모두들 왕이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시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그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을 것이요." 그 말이 떨어지자 갖가지 악기들이 장엄한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에 맞춰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왕의 세운 금 신상 앞에 엎드려 절했습 니다. 그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수년전 전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중국 자금성 안에서 어린 황제 부위가 즉위식을 하는데, 어린 황제 앞에서 만조 백관들이 하나 같이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장엄미를 자아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높은 보좌에 앉아 그 모습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왕은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왕권이 견고히 다져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온 나라가 단단히 결속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기분을 산산이 깨뜨리는 일이 터졌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것입니다(8-12). 몇 천문학자들이 그 무엄한 모습을 보고서는 왕에게 고발했습니다. 왕이 노하고 분하여 그 세 사람을 끌어오라 명령했고 그들이 마침내 왕 앞으로 끌려 왔습 니다. 원칙대로 하면 그들을 당장에 풀무 속으로 던져 넣어야 했었지만, 왕은 다니엘의 얼굴을 보아서 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위협 했습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괜찮지만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다." 왕은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왕은 그들이 극렬히 타는 풀무가 겁이 나서라도 굴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금신상 앞에 절한 사람들 중 속으로는 절하고 싶지 않았지만, 풀무가 겁이 나서 절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인다'는 위협에 약합니다. 저를 보면 저는 소심하고 겁이 많기 때문에 누가 부처 상을 갖다 놓고 그 앞에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하면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왕의 손, 곧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손에 매여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사람이 두려워서 두려워서 신앙의 자유를 포기하고 우상에게 엎드려 절해야 한다는 것은 큰 고통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매여 부자유하고, 눈치 보고, 옳지 않은 일도 해야 하고, 사람을 의식하여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못해 보고 질질 끌려 다닌다는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관악3부의 한 자매님은 친구들에게 매여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광대노릇을 하고서는 비참한 심정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손에 매여 노예생활하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가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했고, 바로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바로의 눈치를 보고 그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했습니다. 구원자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나 바로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여호와가 누구기에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모세와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바로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윤장군 목자는 예수님을 믿은 후 명절에 집에 가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큰 쇳덩이를 지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사를 드리 라고 하는 아버지의 요구와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자기 신앙 양심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요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집에 가기 전 제사를 드리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정말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의 성난 무서운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그럴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집에가서는 속으로 벌벌 떨면서 제사를 드릴 수 없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너무 쉽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또 그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구약의 욥기를 보면, 욥은 평소에 마음 깊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 니다. 재산을 잃었고 사랑하던 가족을 잃었으며, 건강마저 잃었습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달랐습 니다. 그녀는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려요." 라고 하고는 도망가 버렸습니다. 제자들은 속으로 이스라엘 회복과 세상 영광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예수님 안에서 그 기대가 무너지자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달랐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며 초조해 하지도, 불안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리 아니 하신다고 해서 섭섭해 하거나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에 쓴 뿌리를 품지도 않았고 상처를 입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자체가 목적이요 기쁨이며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사모했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졌습니다. 자기들이 믿음과 사랑을 지키다가 온 몸이 불타 버린다 하더라도 장차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하나님과 영원히 살 것을 믿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그들은 죽음의 위협에 굴복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불에 타 죽기는 하겠지만 굴복 당하지는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왕은 풀무 불을 벌겋게 달구어 놓고 그들을 위협하면 그들이 굴복할 줄로 알았 습니다. 그러나 왕은 그들이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왕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외의 어떤 다른 신에게도 절하지 않을 줄로 알아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은 너무 분명하고 확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神)은 여호와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어떤 우상, 어떤 사람도 그들에게 신이 될 수 없었고 구원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외의 어떤 존재에게도 무릎을 꿇을 수 없었고 신적인 경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현대에는 우상이 없을 것 같지만 바벨론 시대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조상 신이 있습니다. 사랑의 여신, 미(美)의 여신이 있습니다. 수많은 여인들이 미의 여신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아름 다워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합니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고 다이어트를 하다가 결국 에는 거식증(去食症) 환자가 되어 체중이 30키로가 되고 결국에는 죽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의 신은 그 힘이 막강한 신입니다. 사람들은 돈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돼지 머리 앞에 엎드려 절하는 높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 돼지 머리는 웃고 있는데, 아마도 먹는 것이나 좋아하는 돼지 앞에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이 하도 한심해서 웃는 웃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세 사람의 구원을 본 느부갓네살 왕은 말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19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말에 왕은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지다 못해 하얗게 되어버렸습니다. 왕의 권위, 자존심이 짓밟혔습니다. 왕은 풀무의 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벌겋던 풀무는 이제 시뻘겋게 달아 올랐습니다. 왕은 그들을 풀무에 던져 넣도록 명령했고 결국 그들은 산 채로 풀무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상식적으로 하면 그들은 뼈까지 다 녹아버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서며 참모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했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그 무서운 불꽃 가운데서도 세 사람은 조금도 타지 않았고 마치 산보하듯이 걸어다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불 속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였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불꽃 중에 함께 하시면서 세 사람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놀라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 있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므로 어떤 방법으로든 세 사람을 보호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지진을 일으켜 풀무를 땅 속으로 삼켜버리거나, 혹 세 사람이 풀무 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풀무의 불을 꺼 버리거나,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풀무 속으로 던져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의 아들도 풀무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님을 보니, 창세기에서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그를 보호하신 하나님이 생각납니다. 요셉은 인간의 죄의 불꽃에 타 버릴 뻔했습니다. 먼저 형들의 시기심 의 불꽃에 타 버릴 뻔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형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보면 아버지께 일러 바쳤습니다. 거기다 요셉은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는데,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철없이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상인에게 팔아버렸습니다.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버린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큰상처를 입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의 마음을 지켜 주셨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렸지만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인생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마음을 다해 자기 주인과 그 집안 일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육신적인 한 여인의 정욕의 불꽃에 타 버릴 뻔했습니다.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인 미세스 보디발이 잘 생기고 똑똑한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만일 요셉이 그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그의 일생은 새까맣게 타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를 정욕의 불길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욕심을 채우지 못한 미세스 보디발은 남편에게 요셉을 강간 미수죄로 모함했고 뭘 모르던 보디발은 진노하여 요셉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옥에 갇힌 요셉의 마음은 정말 크게 상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 그의 모든 아름다운 성품과 소원들은 다 불타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는 믿음으로 살고 거룩하게 살며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았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은 감옥이니 될 대로 되라 하며 막 가는 인생을 살수도 있었습니다. 혹은 무력감에 눌려 아무 일도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꽃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고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그의 마음은 어떤 죄의 불꽃 속에서도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맑고 아름다웠고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시련을 당하지 않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막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하나님을 보면, 그 하나님은 요셉을 모든 고통 속으로 밀어 넣으셨고, 그 고통의 자리에서 함께 하셨습니다.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풀무 속으로 던져 넣으셨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에게 어려움도 주시면서 동시에 그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자리에는 두 강도도 함께 못 박혔습니다. 두 강도는 평생 나쁜 짓만 하다가 결국 저주와 수치의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 받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세상 아무도 자기들과 함께 하지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한 강도는 옆에 달리신 예수님은 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바로 강도인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저주와 수치의 십자가에 달린 자기와 함께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감격했고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 강도는 낙원에서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불길 속에 있든 거기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성냄의 불길 속에 있을 때, 예수님은 거기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세상 죄의 불길 속에서 당장 타 버릴 것 같을 때 예수님은 함께 하시면서 보호하십니다. 요즘 전생, 환생이 우리를 미혹케 합니다. 환생 신드롬이 생겼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환생을 되풀이 하는 중에 완전한 인격, 곧 예수의 인격에 이르게 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까지 써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생, 환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천지 창조, 인간 창조를 부인합니다. 전생 신드롬의 불길이 이 시대를 태우려고 합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연구 하려고 책을 읽었는데 내가 혹시 이상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가 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정욕의 불길에 싸여 우왕좌왕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함께 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본문의 세 사람들처럼 여호와 하나님 외의 어떤 우상이나 사람에게 절하지 않고자 결단하는 것입니다. 비록 죽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의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어디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순수한 믿음, 거룩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가지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시련 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섬김과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세 사람의 구원을 본 느부갓네살 왕은 말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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