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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깨닫자(단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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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09회 작성일13-06-22 03:23

본문

말씀 : 다니엘 4:1-37
 
요절 : 다니엘 4:25b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구한말(舊韓末)에 개화파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을 등에 업고 갑신정변 을 일으켜 개화당 정부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구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개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개화파 정부는 삼일 천하로 끝났습니다. 역사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역사의 주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역사의 주인입니까?
 
어느날 느부갓네살 왕이 온 백성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 조서는 왕이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후 내린 것입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짐승이 되는 훈련,곧 겸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훈련 후에 왕은 하나님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왕으로서는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전에 그는 여러 기쁨을 맛 보았습니다. 장가 가고 아내를 얻었을 때 기뻤습니다. 첫 전투에서 이겼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마침내 세계를 통일하고 바벨론 제국을 건설했을 때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쁨보다 하나님을 깨닫고 말하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왕은 한 두려운 꿈을 꾸었습니다. 왕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 마음에 떠올랐 다가 사라진 어떤 형상이 왕을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왕은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불러 그 꿈의 해석을 알게 하라 하였으나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다시 다니엘을 불렀고 꿈에 대해서 말했습니다(10-17).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그 높이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해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모든 피조물들이 그 나무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왕은 그 나무를 보고서는, '세상에, 저렇게 큰 나무가 있다니' 하며 놀라고 감탄 했습니다. 그 나무가 어쩐지 자기를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 서 내려오더니 그가 외쳐 말했습니다.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 귀를 떨고 그 열매를 흩어버리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의 풀들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들과 더불어 살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사람으로 하여금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자로 그 위(位)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큰 나무가 찍혀지고 밑둥치만 남게 되는 것을 보았을 때 왕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나무에게 일어난 일이 혹시 자기 운명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겁이 났습니다. 왕은 주로 깨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전에는 한 돌이 큰 신상을 산산 조각 내는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큰 나무가 밑둥부터 잘리는 꿈을 꾸었으니,'나는 왜 이런 꿈만 꿀까?' 하며 더욱 더 겁이 났지만, 그 꿈의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들은 다니엘은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꿈의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말했습니다.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해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왕이 사람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입니다.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 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러면 왕이 어떠했기에 그런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까? 29,30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들은지 열두 달이 지난 후 왕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대하고 화려한 바벨론 성이 왕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왕은 성의 거대함과 화려함에 취했고, 그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이루었다는 자기 도취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왕의 말을 들어보면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 여 '내' 도성을 삼고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사람은 쉽게 이렇게 됩니다. 관악 캠퍼스 사람들 중에는 자기 머리, 자기 재능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 교수님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었는데, 그 분은 한 시간 강의 동안에 50분은 자기 자랑을 했습니다. 항상 자기 자랑을 하는 그는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접 자랑하지만, 간접적으로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나는 내가 머리 좋은 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 이 나 보고 머리가 좋다고 하더군'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자랑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면 살 맛이 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자기 자랑이 안 좋은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位)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33절을 보면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왕은 갑자기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갑자기 '나는 황소다'하면서 뜰로 나가 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상국 목자님의 어린 아들 다윗이 만화영화 라이온 킹을 보고서는 한동안 '나는 심바다'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네 발로 걸으며 사자 소리를 내고 다녔습니다. 아기 다윗이 그런 거야 아기들은 뭐든 흉내내기 때문에 그렇게 했지만, 왕은 다 큰 어른인데 그렇게 했으니 왕은 미쳤소 왕궁 내시들은 그 일이 새나가지 못하게 함구령을 내리고는 왕을 방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방 안으로 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번에는 '나는 돼지다' 하더니 꿀꿀 소리를 내며 입을 그릇에 처박고 음식을 먹어 댔습니다. 그런 소식은 곧 모든 신하에게 알려졌고 결국 왕은 사람에게 쫓겨나서 들로 나갔으며 소처럼 풀을 먹었고 몸은 하늘 이슬에 젖었고 머리털은 독수리 털처럼 되었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왕은 한 마리 야수처럼 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데 있던 사람이 가장 낮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왕은 그런 현실을 믿을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다가 낮은 자리로 떨어질 때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가난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가난하게 살았으면 그런대로 삶의 철학을 세워갈 수 있는데, 부자로 살다가 가난하게 되면, 가난해져서 괴롭고,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중으로 괴롭습니다. 공부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공부를 못한 사람은 공부 외의 다른 길을 생각하는데, 공부를 잘하다가 못하게 되면 인생을 포기하고 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보면, 사람이 항상 높은 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가 가장 낮은 자리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의 자리에 있다가 실패의 자리로 내려 앉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항상 칭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영광을 얻기도 하지만 조롱과 멸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적 훈련이 담겨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그 동안 왕은 비참한 자기 처지만 보고 살았습니다. 동시에, 잘 살고 있는 듯한 다른 사람들을 보고 더 비참한 심정을 가졌습니다. 그랬을 때 그의 마음의 어두움은 더욱 짙어만 갔습니다.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원망과 저주의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자기 인생은 그렇게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온 몸이 떨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총명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게 되니 자기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당신이 무엇을 하신 것입니까 할 자가 없도다." 왕은 짐승 훈련, 겸손 훈련을 받고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건설하여 하나님의 도성으로 삼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으며 자기에게 왕권을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훈련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를 광야로 내몰아 칠년간이나 밑바닥을 기게 하셨습니다. 그만큼 왕이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깨닫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누가 보든지 느부갓네살 왕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이 왕의 주인이시요 세계의 주인이심을 선포하면 결국 모든 세계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간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깨달아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요 인간 역사의 주관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그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인간은 피조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영적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 선악과를 두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사람은 하나님이 선악을 판단하는 주체이심을 알고 선악을 아는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간교한 사단은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주인이 되고 선악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사람은 그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사람이 선악의 주체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는 주권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 세계에서 하나님을 빼버리고자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만들어 하나님이 창조주요 사람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근본에서부터 부인해 버렸 습니다. 진화론은 사람이 스스로 진화하여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귀는 요즘은 환생론을 만들어 사람이 환생을 거듭하는 중에 신과 같은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황당한 거짓말을하고 또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벨론 시대는 교육이 발달했었습니다. 바벨론 학자들은 교육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교육에 힘썼습니다. 요즘에도 사람들은 교육으로 사람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 사람의 노력으로 인간 역사는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에 뇌를 잘 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사람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깨닫게 하기위해서 우리에게 겸손 훈련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질 분도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수 있습니다. 원주 목자는 간염이 있는데 항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무리하게 일하다가 간염이 악화되고 마침내 간경화가 되어 나이 40도 되기 전에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몸을 사리게 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그에게 간염이 있는 것은 그로 하여금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기위한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그는 간염이 자기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도, 남편, 아내, 자식이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대기업인 삼성은 반도체 호황으로 흥청망청 돈을 썼는데 요즘은 짠돌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동향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겸손 훈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나라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모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전에 그토 록 열심히 일하던 한 목자님이 힘들어졌을 때 우리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역사가 이대로 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적 훈련이었습니다.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기도 제목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합니다.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교만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거부하고 인간이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셨으며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생애에 부딪친 모든 사건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인정하셨습니다. 제자 유다의 배반이라는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해서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한밤중에 강도처럼 잡히시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고, 그 뜻에 복종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때 예수님은 땀방울이 피 방울처럼 줄줄이 떨어지기까지 힘써 영적 투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셨으며 결국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피로 우리 죽을 목숨을 구원하셨고 우리 생명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 생명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 12:1,2)." 내가 내 생명, 혹은 가족의 생명을 내 것인줄 알고 움켜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할수록 하늘 문은 내게 닫혀 있으며, 나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바쳐 드릴 때 하늘 문은 내게 열리고, 자유함과 기쁨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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