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3 : "온유한 자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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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546회 작성일13-06-22 08:22본문
온유란 영어로 Trained 라고 합니다. 마치 야생마가 잘 길들어지면 과거에는 전혀 할수 없는 일 즉, 밭을 간다던가 짐을 운반하던가 하는 인간과 자기 주인 에게 아주 유용한 짐승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과거에 나만알고 나의 행복과 성공만을 위하여 살아왔던 우리를 구속하시고 말씀으로 훈련시키셔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에 유용하게 사용하시게 됩니다.
모세는 동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사람을 쳐 죽일만큼 혈기가 충만한 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훈련을 받고 자기가 온전히 죽었을 때 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할만큼 온유한 자가 되었습 니다(민 12:3). 모세는 그 온유함으로 목이 곧고 완악한 이스라엘을 품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온유한 자는 짜증나는 일이나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신경질을 내거나 혈기를 부리지 아니하고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딥니다. 자기를 중상하고 괴롭게 굴지라도 보복하려 들지 아니하고 잘 참아서 견딥니다. 인내는 온유한 사람의 성품입니 다. 온유한 사람은 괴로운 일을 잘 참을 뿐만 아니라 잘 용서하여 줍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온유한 사람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도리어 선으로 갚고 그를 위해 복을 빕니다. 이험하고 억센 세상에서 온유한 자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전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센트헤레나 섬에서 최후로 이런 말을 남겼습 니다. "나는 칼로서 온 유럽을 정복하였지만 결국을 실패아였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정복하였다" 이 처럼 온유한 자는 나라를 얻고 사람을 얻습니다.
팔복강해 -3 : " 온유한 자의 복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은 역설적입니다. 땅을 얻으려면 싸움을 해서 쟁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고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 힘께나 쓴다는 사람들이 축재를 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여 땅을 사모은 것이 신문에 연일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온유한 자란 어떤 자를 말합니까? 말 그대로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반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불행이나 재난이 닥쳐도, 실패와 슬픔을 만나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바이면 조용히 참고 견디어 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요셉과 욥으로부터 온유한 자의 모습을 봅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는데도 하루아침에 모든 자식과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주시고 여호와께서 거두시니 오직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온유한 자는 자기의 뜻을 꺾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복합니다. 우리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하였습니다.
온유한 자는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를 품은 인자로운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온유한 자는 유모와 같이 사람을 잘 품고 섬깁니다. 포용력이 강합니다.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깊습니다. 남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태도를 가지지 않습니다. 온유와 겸손은 한 쌍동이 같아서 함께 따라 다닙니다. 상대방과 싸우기보다는 양보하고 져줍니다. 온유한 자는 짜증나는 일이나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신경질을 내거나 혈기를 부리지 아니하고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딥니다. 자기를 중상하고 괴롭게 굴지라도 보복하려 들지 아니하고 잘 참아서 견딥니다. 인내는 온유한 사람의 성품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괴로운 일을 잘 참을 뿐만아니라 잘 용서하여 줍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온유한 사람은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도리어 선으로 갚고 그를 위해 복을 빕니다.
이 모든 온유하신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마태 11:28,29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이사야는 오실 메시아를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태 18:19,20).
그런데 온유한 자는 불의한 세상에서 무골호인처럼 보여서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기 쉽습니다. 성공하려면 무정하고 무자비하게 빼앗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할 것 같습니다. 표독스러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진정으로 승리하는 자는 마음이 온유한 자입니다. 온유한 자는 외유내강한 자로서 누구보다도 강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를 어떻게 축복하십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아브라함은 마음이 온유하여 롯과 싸우지 아니하고 모든 좋은 땅을 다 양보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넓고 좋은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 13:14~18, 15:18~21). 이 세상 사람들은 흔히 강한 자가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칼을 쓴 나라는 결국 망하였지만 온유의 방침을 쓴 나라만이 승리했다고 말했습니다. 전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센트헤레나 섬에서 최후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칼로서 온 유럽을 정복하였지만 결국을 실패아였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정복하였다" 이처럼 온유한 자는 나라를 얻고 사람을 얻습니다. 우리가 생물시간에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란 말을 많이 들어 강한 자만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구역사를 보면 파충류에 속하는 맘모스와 공룡같은 큰 짐승들은 다 멸절되어 뼈만 남고 오히려 약하게 보이던 짐승들은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이리와 개는 같은 종류이지만 사나운 이리는 동물원 철장속에서나 겨우 발견할 수 있고 오순한 개는 세계 어디를 가도 불 수 있고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이리와 같은 히틀러가 온 세계를 거져 점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고 강대한 땅이 어디냐고 물으면 미국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북미대룩은 누가 차지했습니까?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작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1620년에 폴리 마우드라는 바닷가 바위위에 내린 청교도 120명과 그들의 자손이 지금 제일 아름다운 대륙을 기업으로 받아 살고 있습니다. 온유한 자가 결국 세계를 얻을 것입니다. 양을 잘 치는 자들을 보면 강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온유한 자입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세계에서 핍박과 설움을 많이 받지만 결국에는 온유한 자들이 세계를 차지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죄로 말미암아 불로 멸망받을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곳은 오직 온유한 사람만이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온유한 성품을 체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는 본래 성급하고 거칠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습니다. 마음이 좁고 편협했습니다. 그런데 제 동역자는 조용하고 느리고 넓고 인내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본래 온유한 체질이 아니고 제 동역자가 온유한 체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온유와는 거리가 먼 자라고 생각하여 이 면에서 별로 투쟁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온유란 결코 체질적인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성령의 열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갈 5:23). 이후부터 이 온유의 성품을 덧입고자 투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약점과 허물때문에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성격이 포악하고 호전적인 자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변화되면 순한 양같이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죤. 뉴톤은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던 잔인한 노예선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을 때 이제는 소자 하나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랑의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격정적이고 경쟁심이 강한 자였습니다. 한번은 사마리아로 지나갈 때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지 않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멸하기를 원했습니다(눅 9:54). 그러나 그가 변화된후에는 가장 온유한 사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동족을 구원 하기 위하여 애굽사람을 쳐 죽일만큼 혈기가 충만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훈련을 받고 자기가 온전히 죽었을 때 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할 만큼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민 12:3). 모세는 그 온유함으로 목이 곧고 완악한 이스라엘을 품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기만 하면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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