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열쇠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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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850회 작성일13-06-22 15:16본문
▶ 무한한 약속
"약 20년 전 필자가 신학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이다. 어느 이른 아침 동료 하나가 - 지금은 영국 최고의 선교사들 중의 한 사람이다 - 성경을 손에 펼쳐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비록 성직을 준비하는 가운데 있었지만 당시 그는 막 회심한 초신자에 불과했다.
그는 "이런 일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이" 대학에 진학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찾을 무렵, 그는 인기있고 명석하고 운동을 잘하여 친구들 가운데 최고였다. 그는 주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그에게 성경은 새로운 책이었고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발견하는 나날"을 보냈다. 내 방의 정적을 깨뜨리고 침입했던 그날, 그는 흥분 의 도가니에서 희열과 경악이 엇갈리는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자넨 이걸 믿어? 이게 정말 사실이야?" "뭘 믿느냐고?" 나는 놀라움을 가누며 펼쳐진 성경을 쳐다보면서 물어 보았다. "이럴수가....." 그는 격한 어조로 마태복음 21:21-22을 읽었다.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 하면.......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자넨 이걸 믿는가? 이게 진짜란 말인가?" "그럼, 물론 진짜지. 믿고 말고." 나는 그의 흥분에 오히려 더 놀라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 가운데는 온갖 생각이 번뜩이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약속인데.......", 그는 계속 말했다. "이건 절대 무한정이 아닌가? 그럼 왜 우리는 좀더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나를 두고 나가 버렸다.
나는 이 구절을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결코 없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초년 추종자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나는 전에 보지 못했던 나의 구주와 그의 사랑과 그의 능력을 보게 되었다.기도 생활에 대한 비전, 즉 오직 두가지 - 믿음과 기도 - 에 의해 좌우되는 "무한한" 능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전율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주님 앞에 엎드려졌 을 때 내 머리 속에서 쏟아지는 생각들, 내 영혼에 홍수져오는 희망과 소망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이는 기도에 대한 엄숙한 부르심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그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 <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 p.16~17 -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마 21:21~22).
만약 이 신학생이 우리에게 이 말씀을 들고 놀란 얼굴로 뛰쳐 들어와 이렇게 무한한 약속에 감격해 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덤덤한 얼굴로 기이해 할 것인가? 아니면 같이 감격에 겨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할 것인가? 우리도 역시 무한하며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 이 약속을 너무 당연시 여겨, 혹은 삶에 적용해 보지 않은 죽은 믿음 때문에 전혀 새롭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말씀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에 놀라는 사람을 새삼스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은 늘 살아 숨쉬는 신선한 말씀이다. 우리가 그 말씀은 늘 살아 숨쉬는 신선한 말씀이다. 우리가 그 말씀을 진정 믿고 우리삶에 실천하면 산다면 그 말씀의 효력도 늘 갓 잡아 올린 물고기의 생명력처럼 파닥파닥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약속, 바로 하늘의 축복을 여는 열쇠는 벌써부터 우리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니 그 열쇠는 바로 우리의 무릎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열쇠를 사용해서 이 무한한 약속이 지금도 생생하게 우리 삶에 살아 움직이는 것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할 때이다.
▶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한정 주시기 위한 축복의 열쇠라면 왜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우리의 삶은 늘 곤궁 한 것 같을까?
한 번은 전도자 무디가 어린이들이 많이 모인 집회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는 주의를 끌기 위해 아이들에게 기도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 중 한 아이가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함과 아울러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우리의 소원을 올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단순히 입술로 드리는 기도일 뿐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기도는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시 25:1)의 말씀같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런 기도인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의 은총에 감사하는 깊고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기 위해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대접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면 그 사람 입맛에 맞게 음식을 준비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일때는 내 마음대로 음식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일 역시 그의 거룩한 속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은총을 깨닫고 감사드리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영혼이 아닌 입술로만 드리는 경배가 되고만다. 그리고 이 두 단계는 깊은 기도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필수적인 단계이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사귐을 전제로 한 깊은 기도가 얼마나 큰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윌버 채프만(Wilbur Chapman)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나도 기도에 관해 몇가지 위대한 교훈을 배웠네. 영국의 한 선교지에서 청중들이 지극히 적었는데...... 어떤 미국인 선교사가 우리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간구하겠다는 쪽지를 주었네. 그는 '기도의 사람 하이드'로 알려졌더군. 거의 즉각적으로 형세가 바뀌었네. 모임 장소가 차고 넘칠뿐 아니라 처음 초청에 50명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네. 헤어지면서 그에게 '하이드 씨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더니 그가 내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무릎을 끓더니 5분간 그의 입에서 한마디의 말도없이 침묵으로 기다리더군. 내 심장의 두근거림과 그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네. 나의 얼굴에 부끄러운 눈물이 흘러 내림을 느꼈고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알았네. 그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위로 들고 '오, 하나님!' 하고 입을 연 후, 다시 적어도 5분간은 침묵을 지키더군. 그 후 그가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내가 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그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보았네.
기도를 마치면서 나는 참기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네. 정말 그 기도는 능력 있는 것이었다고 믿으며 우리가 여태껏 한 번도 드려보지못한 기도라고 생각하네."
- <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 p. 86-
열매와 축복에는 왕도가 없다. 다만 기도만이 그 열쇠가 될 뿐이다. 거룩한 사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나온다. 기도의 사람 하이드가 보여준 영혼의 기도는 우리에게 기도가 단순한 민원 창구가 아니라 우리가 수취인이 되어 하나님의 백지 수표를 그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바로 기도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는 데 있다. 단지 자신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착각하고 있기 때 문인 것이다.
▶ 영적 척도로서의 기도
만약 열심히 드린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걸까? 말은 거창하게 해서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요구하는게 좀 많으니까 모른척 하다니 하나님이 잘못 말한거라고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볼 때는 교제로 나아가는 대화이지만 나와의 관계에서 본다면 내 영적생활의 깊이와 잘잘못을 판가름하는 영적 척도가 된다.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아 본적이 없다고 고백하면, 그것은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약속 또는 기도의 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나무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뜻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기도하기를 애쓰는 사람은 자기가 바로 하나님의 목전에 서 있음을 즉시 발견하게 된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우리 마음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살펴보라는 경종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착오가 없기때문이다.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삶을 시험해 본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 설때 지나간 삶을 회고한다면 그 삶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은 기도 없는 모습일 것이다. 좀더 때가 무르익기까지 미루지 말자.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기 원하신다. 사랑하는 주님도 내가 기도하기 원하신다. 그는 기도를 필요로 하신다. 많은 것 - 사실 모든 것 - 이 기도에 좌우된다. 기도에의 부르심에 응답하자. 지금껏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했다면 이제는 나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고 회개함으로 진정한 기도로 나아가자.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내게 부어주실 것을 풍성히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자. 하나님의 내게 원하시는 건 너무나 확실하다. 그리고 풍성한 응답도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 하기를 원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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