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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요셉(창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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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987회 작성일13-06-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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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에는 요셉의 소년 시절의 기사가 나옵니다. 요셉이 방년 17세의 청소년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이복 형들과 함께 양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들인 이복 형들의 행실이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이런 사실들을 그대로 알렸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91세때 얻은 아들로서 다른 아들들 보다 야곱이 특히 사랑했습니다. 그는 야곱이 뜨겁게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인데다 사람이 정직하고 순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다른 형들은 검정 고무신에 하얀 모시 적삼을 입을 때 요셉은 브렌따노 칼라패션을 입고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눈의 가시처럼 생각하고 불평 불만이 많았습니다. 요셉은 복잡한 집안환경 속에서 친어머니도 없이 자랐습니다. 이럴때 삐뚤게 자라기 쉬웠지만 노년의 야곱의 좋은 영향력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순수하고 진실되게 자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이 형들에게 더욱 미움을 받을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꿈을 꾸고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는 형들을 불러서 신나게 말하였습니다. 형님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은 일어서고 형님들이 묶은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던데요. 기분이 삼삼했어요. 그러자 형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이놈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하며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또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형님들 제 말 좀 또 들어보세요. 어젯밤 꿈에서는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네게 절을 했어요. 우와 그렇게 기분좋은 꿈은 처음이예요. 이 말을 아버지 야곱도 듣고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말을 마음에 두며 이 놈이 장차 큰 인물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청소년 시절에 지도자의 꿈을 연달아 꾸는 요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사춘기 시절이라 개꿈들을 많이 꿉니다. 수능 시험을 보러 가는데 차가 막혀 시험장에 지각하는 꿈, 진수성찬이 채려져 있어서 막 먹으려고 하는데 깨는 꿈, 길거리에 돈다발이 떨어져 있어서 마대자루에 줏어담는 꿈, 교외 지도 선생님을 만나 도망가는데 발이 안떨어지는 꿈, 정욕을 마음껏 즐기는 꿈 등 별의별 꿈을 많이 꿉니다.
 
꿈은 잠재의식 속에 있는 갈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을 통해서 사람의 심리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꾼 꿈은 개꿈이 아니었습니다. 개꿈은 깨고나면 내용이 잘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명확하게 기억이 났으며 어쩌나 한 번 꾼 것도 아니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꿈이 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계시였습니다. 요셉이 이런 계시 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평상시에 그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부터 하나님께서 야곱 집안에 두신 놀라운 비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국민과 많은 국민이 야곱에게서 나고, 왕들이 야곱의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35:11). 그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장차 지도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고자 하는 비젼에 불탔을 것입니다. 그가 청소년 시절 부터 이렇게 지도자가 되고자하는 소원이 불탔기 때문에 꿈에 지도자가 되는 꿈이 나타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확실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젊은 시절에 지도자가 되는 꿈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꿈이 있어냐 방향이 있고 투쟁할 저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이 의외로 꿈이 없이 삽니다. 있어도 그 소원이 잘잘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디오방이나 만화방 차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짤리지 않고 잘 승진하는 것입니다. 꿈을 좀크게 가진 사람은 자기가 맡은 전문 분야에서 1 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꿈은 필요한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시대가 되다보니 누구를 바라보고 자라야 하며, 누구 말을 믿고 살아야 되는지 혼동이 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사리사욕을 위해 수단 방법을 쓰지 않는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위해 이전투구를 일삼는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과감하게 희생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 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누누히 이런 비젼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내가 너희를 사도로 세웠나니.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니라는 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 지도자로 세우고자하시는 간절한 소원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우리 심령 속에 깊이 새기고 이 시대를 감당할 만한 영적 지도자로 자라고자 하는 비젼이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지도자로서의 비젼이 충만했던 요셉을 하나님은 어떻게 인도하셨습 니까? 지도자는 비젼만 가지고는 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도자가 될만한 내면성을 연단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도자로서의 비젼을 주신다음 이제 구체적으로 지도자 훈련에 돌입하셨습니다. 37:12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갔습니다. 그것은 세겜에서 양들을 치고 있는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60Km나 떨어져 있는 세겜에 까지 가서 형들을 찾았지만 그곳에 없었습니다.
 
이때 그는 되돌아 갈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찾다가 어떤 사람의 안내로 형들이 있는 도단 까지 40Km나 더 갔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알아챈 형들은 흉궤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을 죽여서 한 구덩이에 던져 버리는 것 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인 르우벤의 만류로 죽이는 것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가두었다가 유다의 주동으로 미디안 상인들에게은 20개를 받고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의 채색옷에 염소피를 묻혀가서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죽은 것처럼 고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야곱은 큰 슬픔에 빠졌고 온 집안이 어두움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시기심이 결국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자신들도 이 문제 때문에 훈련받고 고통받게 됩니다. 시기심은 그 역사가 매우 깊고 끈질깁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시기심 때문이었으며, 사울왕이 미치광이로 전락한 것도 다윗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시기심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적인 생각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시기심이 생기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영적 투쟁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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