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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적 독신생활("결혼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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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791회 작성일13-06-22 17:21

본문

Ⅰ.결혼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세가지 권면(고린도전서 7장 1~24절)
 
1.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반드시 갈등이 있을 것을 각오하라"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8절)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이 행복할 것처럼만 생각을 하고 출발을 했다가 고난이 닥쳐오게 될 때에는 당황을 하고 후회하며 또한 그 문제의 핵심을 피해서 도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주님의 말씀에서 잘 교육을 받지 못한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하고 특별히 불신세상에 있어서는 더욱 만연되어 있는 풍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고난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부부상호간,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자신의 의무에 충실할 것.'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3절)
 
이것이 성서적 부부생활이며 또한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물론 1절로 5절까지의 말씀을 문맥적으로 상고하게 될 때에 특별히 부부간의 성생활에 있어서의 의무를 중점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절로 5절의 말씀은 -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이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모사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단지 부부간의 성생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부부가 서로간의 권리를 포기하고 의무에 충실해야 된다고 하는 사실로서 두 말할 나위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3. '이혼은 꿈에도 생각지 말라'
 
창세로부터 결혼은 하나님께서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시켜 주시는 경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혼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7절)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0-1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한 이혼과 재혼의 문제를 성경은 다루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7장뿐만 아니라 신구약성경 여러곳에서도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정불화에 대한 심각성이 잠언에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됩니다(잠17:1 ; 21:9 ; 21:19 ; 25:24).
 
"다투는 여인과 함게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21:9)
 
이와 같은 말씀들이 여러번 기록되어 있는것을 보아서 부부간의 갈등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하는 사실을 성경은 오래전부터 지적해주고 있고, 우리 주변의 가정들 가운데서도 참으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따라서 성경의 명백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때로 이혼과 재혼에 관한 문제를 상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혼과 재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간략하게나마 분명히 다루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혼
 
1. " 본래 하나님의 경륜은 아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마19:8 ;막10:4-9)
 
이 말씀에서 이혼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의 경륜이 아닌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서 2정 16절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라고 말씀하셨으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하신 이유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든지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을 버성기게 되는 민족, 버성기게 되는 시대에는 심각한 가정의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랍니다."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 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고전7:10-14)
 
부부가 경우에 따라서는 별거를 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러나 이혼에 대해서는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고 하는 점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 하나님의 양보이다. "
 
두번째로 "이혼은 하나님의 경륜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양보이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구절은 W.Johns 토트라고하는 사람의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혼은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인간의 범죄와 타락으로 주님이 이혼을 말씀하신 것이며, "묵인을 하셨다", "허락하셨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음행의 연고'로 라는 말씀을 언급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마5:32 ;막10:11-12 ;눅16:18). 바로 이것은 최후적인 조치이며, 의무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득이한 경우에 별거를 권하고 있지만 여전히 최선의 방법으로는 인내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즉 '이혼 당할 수는 있어도 이혼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인 것입니다.
 
13절과 같은 경우에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며" 라고 말씀하시고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인 나의 편에 열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열쇠를 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물론 어느 성도가 불신자와 결혼한 뒤에 일어나는 문제로 분별되지 않으며, 두 사람이 모두 불신 가운데서 결혼한 후에 그중에 한 쪽이 주님을 믿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문제로 분별됩니다.
 
그 밖에 신명기 24:1-4절의 말씀을 - 사람들이 주님을 송사했던 - 보겠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더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나와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그 여자가 임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게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
 
여기서도 '음행한 증거'가 있을 때 이것을 근거로 이혼이 성립된다고 하는 점을 지적해 주시고 있는데 특별히 이혼증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어느 쪽에서나 오히려 상대방을 모함해서 이혼의 조건으로 삼고 학대하거나 괴롭힐 가능성과 또한 이런 일들이 감정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혼증서를 확실히 법정에서 서약을 해서 분명히 처리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22장에서는 '강제결혼의 경우에는 이혼할 수 없다'고 하는 예외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재 혼
 
성경에서는 어떻게 재혼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는가 보도록 하겠는데, 역시 고린도전서 7장이 재혼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 분별하게 될 때, 재혼을 할 수 있는 경우를 네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1. 결혼과 이혼이 '구원 이전에 이루어졌던 경우'에 재혼할 수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히10:17)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믿기 이전에 어두움 가운데서 일어났던 문제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실 것으로 분별합니다. 참고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이러한 일들을 결정하고 상담하는 형제들 간에 이견이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2. '일방이 계속 부도덕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회개치 아니하는 경우'에,이혼한 후 재혼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간음과 음행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구분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며, 음행이라는 것은 남편의 일회적인 사건이나 실수라거나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분별되지 않습니다. 음행이라고 했을 때에는 고린도전서 5장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부도덕한 가운데 계속 거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권면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로 분별을 하며 이와같은 상태에서는 이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믿는자들 가운데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자매는 결혼생활을 계속 할 수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형제 또는 어떤 배우자 중의 한사람이 다른 사람과 동거생활 또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서 이혼을 하게 된 다른 한 쪽은 재혼할 수 있는 것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마19:9)
 
여기서 '음행한 연고'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음행한 연고'로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은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이유는 선택적이며 강제적인 것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경륜가운데서 우리가 이미 본대로, 부부는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나뉘는 것이 의례적이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 다만 '선택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의도적이고 영구적으로 믿는 배우자를 버릴 때에', 재혼할 수 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고전7:15)
 
위의 말씀의 구속받을 것이 없다고 할 때의 '구속'이라고 하는 말은 '노예'라는 의미로 사용 되고 있고, 7장 39절-"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에서는 '매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바로 '종'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결혼생활을 '매여있는 것'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종살이와 같은 불가분의 관계에서 한쪽(불신배우자)이 배신을 했을 때에 이혼을 당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경우에는 재혼이 허락된다고 조심스럽게 분별합니다.
 
4. 가장 뚜렷한 경우로서 '사별의 경우'가 있다.
 
"남편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롬7:2)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7:39)
 
* 단 하나 재혼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 일단 이혼을 했다가 다른데 재혼을 했는데 그 후 상대방이 죽었다고 했을 때, 다시 전부(前夫)와 재혼하는 경우는 금하고 있습니다.
 
사별의 경우에는 재혼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옛날 한국에서는 동양적인 관습으로 인해서 -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 - 어떠한 경우에도 남자의 경우에는 재혼이 허락이 되었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결코 재혼이 허락되지를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허락하고 계시는 좋은 실례가 있습니다.
 
이 재혼의 문제는 한국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오늘날 이혼과 재혼의 추세는 점점 증가되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앞으로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를 상담하고 성경가운데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으로 세상이 너무 악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운데서 주님을 믿고 주안으로 들어오게 될 사람들의 경우도 우리가 고려해보아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혼자들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교회가 취해온 입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① 율법주의적인 태도
② 이상주의적인 태도
③ 구속적인 태도
; 주님께서 댓가를 치루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어느 한 쪽이 희생을 당하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입니다.
④ 치료적인 태도
; 오늘날 서구에서는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베를린에 4개월간 체류할 동안 그러한 문제들을 두서너번 보게 되었습니다. 서구에 있는 한국인들 사회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두드려 맞고 사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곳 베를린의 장로들은 주저할 것도 없이 그러한 아내들에게 "이혼해라! 어떻게 그렇게 맞으며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느냐?!" 라며 권고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사람들이 도대체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차라리 여자가 남자 뺨은 때릴지언정 남자가 여자를 때린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서구 사회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남자가 여전히 폭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 서구의 장로들은 이혼하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인생의 문제는 너무 미묘하고 복잡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성경을 적용하고자 할 때에도 지금 얘기한대로 율법주의적이냐 이상주의적이냐 구속적이냐 치료적이냐 하는 방법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는 점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고, 이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냐 하는 반문도 가질 수 있지만 고린도 전서 7장은 분명히 이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해 보고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들을 성경으로 정식으로 공부하는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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