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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신앙과 기독청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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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112회 작성일13-06-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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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과의 신비적인 체험, 성령의 은사라는 것도 굉장한 체험인데 그런 체험 들은 뭘로 표현 되어져야하냐 하면 이웃을 섬기고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랑 으로 표현되어질 때 비로소 값어치가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 사랑이 동반되지 않는 성령의 은사들, 사랑으로 열매맺지 못하는 성령의 은사들은 잘못된 은사 라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성 이것은 곧바로 다른 이웃과의 관계성으로, 이웃과의 삶 속에서 이웃과의 사랑으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
 
'여러분의 진정한 예배는 이제 여러분이 예배당 문을 나가는 그 순간부터 시작 됩니다. 오늘 한시간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린 예배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고 이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 나아가서 하나님앞에서 산 제사, 산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바라보면서 적어도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힘들고 괴롭다 하더라도 부활 영광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근거가 주어집니다."
 
▣ 생활신앙과 기독청년의 과제 ▣
 
여러분, 혹시 생활신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흔히 듣는 용어는 무엇입니까? 예. 신앙생활이라는 용어죠. 이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신앙이라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 가정, 직장, 학교에서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생활신앙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내용을 네가지로 살펴봅시다.
 
첫번째로, 생활신앙은 신앙과 생활, 생활과 신앙의 통합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삶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부분과 불가피적으로 얽혀있 어요. 그런 부분들과 초 연할 수 없고 도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을 행동한다. 믿음으로 산다 할때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부분을 신앙안에 통합하는 것이고 신앙은 그 부분들에 서 생활로 고백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두번째로, 수직적인 신비경험과 역사적 사랑의 조화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 에서 아주 신비적인 경험을 하게 되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모세와 엘리야를 그 곳에서 만 납니다. 예수님의 옷이 흰색으로 바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이 때 베드로가 정신없이 뭐라고 하냐하면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초막 셋 짓고 지냅시다. 여기가 좋습니다. '라고 고백해요. 그러니까, 신비적인 체험, 하나님과 영교, 이거면 다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말에 OK하지 않고 '우리가 저 산아래로 내려가자'하고 말씀하 시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김재준 목사님은 '산아래 신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비적 경험은 삶의 현장에서 사랑으로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변화 산아래서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느냐 하면은 어떤 간질병환자를 아들로 둔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님의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고쳐주질 못해요. 그러니까 그 때 제자들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삶의 자리. 병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삶의 자리속에 예수님은 내려오셔서 그들의 욕구를 대체해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들의 그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교, 하나님과의 관계성 이것은 곧바로 다른 이웃과의 관계성으로, 이웃과의 삶 속에서 이웃과의 사랑으로 표현되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 고린도전서 12장에 무어가 있는지 기억하세요? 성령의 아홉가지 은사가 소개돼있어요. 사도 바울이 마지막 절에서 뭐라고 하냐하면 '너희는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라. 가장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고린도전서 13장으로 이어집니다. 고린 도전서 13장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랑의 장'이죠. 그러면서, 너희가 예언을 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너희가 친구를 위해 자기몸을 불사른다고 할찌라도 사랑이없으면 그 모든 것 은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사랑을 정의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다시 말해서 하 나님과의 신비적인 체험, 성령의 은사라는 것도 굉장한 체험인데 그런 체험들은 뭘로 표현 되어져야하냐 하면은 이웃을 섬기고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질 때 비로소 값어치가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 사랑이 동반되지 않는 성령의 은사들, 사랑으로 열매맺지 못하는 성령의 은사들은 잘못된 은사라고 사도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성령과 하나님과의 교제만을 즐기려는 비역사적인 신비경험은 인간을 사랑 하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 없습니다. 역사적 사랑을 이탈한 신비경험은 선을 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악마의 도구이며 자기도취의아편입니다'라고 이야기 하셨어요.
 
세번째로, 생활신앙은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표현되는 일관성이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을 주일날 하루 교회안으로만 제한돨 수가 없다는 거죠. 우리의 신앙은 때 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떤 곳에서도 신앙인으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신앙의 삶을 늘 표현해 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선생님도 고린도 전서 10장 31절에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 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 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라는 것이지요. 나는 가끔 예배가 끝날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예배는 이제 여러분이 예배당 문을 나가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한시간의 예배가 하나님께 드린 예배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고 이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 나아가서 하나님앞에서 산 제사, 산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입니다.
 
네번째로, 고난과 부활의 변증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고난 후의 영광이었습니다. 고난 없는 부활은 있을 수도 없고 설사 있다하더 라도 값 싼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바라보면서 적 어도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힘들고 괴롭다 하더라도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근거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고난의 문제는 접어두고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또 한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축복, 부활의 영광 온갖 좋은 것은 다 독점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에 참여하는 그 부분은 없다 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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