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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773회 작성일13-06-2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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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눈가림만 하는 부하입니까 ?
 
생활 영성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예배, 큐티, 종교적 영역 그리고 모여서 찬양할 때만 하나님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습관이 많다. 그 외의 영역들 즉 사람들과 대화하고, 차를 타고, 가게에서 물건 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등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하면서도 하나님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생각은 하지만 가치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재까지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바른 신앙을 키워가려면 예배를 통해 공급받은 영적인 힘은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예배뿐 아니라 성, 텔레비전, 오락, 휴식 등도 하나님 나라의 일이며 주님을 섬기는 일과 긴밀히 관련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예배 형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는 순간이 지나서도 몸이 가는 곳곳마다 몸이 행하는 모든 곳에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따라서 일상생활의 영성은 예배를 포함하여 전생활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높이는 것과 긴밀한 연관 이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의 모임을 생각해보자. 우리의 신앙의식은 지나치게 예배당 모임 중심이 되어 있다. 모여서 찬양하고 헌신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흩어지고 나면 예배당이 중심이니까 나머지 생활은 부속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모임 자체가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선교터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렵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세상의 모든 곳곳이 선교터이다. 호떡장사를하면 그 리어카가 선교터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관심도 쏟지 않는다. 집사 선출도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기보다 교회에 잘 나오고 십일조 꼬박꼬박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크리스천 부하직원이 직장에서 어떤 태도로 일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22절에서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육신의 상전은 땅의 제도와 구조안에서 제한적으로 권세를 발휘하는 상전을 말한다. 즉 직장 상사에 대한 태도의 핵심은 ‘순종’이다. 그렇다면 어떤면에서 순종해야 할 것인가? 경쟁회사의 기밀문서를 훔쳐오라는 명령에도 순종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런 일에는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비윤리 적인 일을 제외한 모든일에는 구조안의 상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 수많은 질문들이 따르게 된다.
 
윤리적인 회색지대가 너무많기 때문이다. 구조와 관련된 악들, 더구나 신입사원 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들이 너무많다. 그래서 둘다 악일 때는 좀 덜한 악을 택하게 된다. 그렇다고 다 손 들고 나가면 세상에는 한 명의 크리스천도 남지 않게 된다. 따라서 결정권이 없는 구조적 위치에 있을 때는 딜레마에 빠지면서도 좀 덜한 악을 택하는 방법이 차선책이 된다. 또한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는 말씀 속에서 순종의 세 가지 스타일을 발견할수 있다.
 
첫째, 사람도 기쁘게 못하는 사람이다. 이런 스타일은 기독교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사람만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눈가림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고 기독교인들조차도 상사가 있을 때만 상사의 호의를 획득하는 일에 주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러한 태도 역시 기독교인 으로서 옳지 않다.
 
셋째는 사람 앞에서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앞에서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당시에 이 말씀을 들은 대부분의 대상자는 직업이 노예였다. 노예가하는 일은 사람들이 보기에 하잘것 없는 일이었다. 거룩하고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하듯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직업현장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분명히 명하시겠는가? 사실 사람들은 외부 동작밖에 보지 못한다. 우리의 동기나 내면의 이유를 통찰할수 없다. 사람들은 아부하는 사람밖에 보지 못하고 좋은 말에 눈과 귀가 멀어서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뇌물, 청탁금, 촌지에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우리 내면을 샅샅이 보신다.
 
주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신다. 아부하고 아첨해도 넘어 가지 않으신다. 우리의 직업 현장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의식이 우리를 사로잡아야 한다. 예배드릴 때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도 이런 의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무대체질이다. 누가 안 봐주면 안된다. 우리는 우리를 지켜보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행동이 크게 달라진다. 어떤 분이 나의 현재를 보고 계시다는 것 을 알 때우리는 제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런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직장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송인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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